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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지리산 탁발 순례기 1
지리산숨결 2004-03-05 09:56:00 | 조회: 9762

    좌로부터 이원규시인(피아산방), 도법스님, 수경스님


    생명평화 탁발순례. 도법, 수경스님은 왜 생명평화를 화두로 앞세우고 산을 내려왔는가 다
    른 사람들은 구도를 위해 산속으로 드는데 왜 두 스님은 마을로 내려왔는가 절집에서 바라
    본 세상은 살기(殺氣)가 가득했다. 한데 어느날 보니 절집도 세상 한가운데서 그저 그렇게
    서있었다. 도대체 저 살기는 무엇이고 저 자욱한 미움의 안개는 무엇이란 말인가 두 스님
    은 길에서 길을 찾기로 했다. 평생을 길에 머물렀던 부처의 흉내를 내기로 했다. 목숨을 발
    우(밥그릇)에 기탁했다. 탁발은 끊임없이 빌어먹어 교만과 아집을 없애고, 보시하는 사람에
    게는 복덕을 길러준다. 이는 나눔이며 소통이다. 만남이 끊기면 감옥이고, 흐름이 끊기면
    죽음이다. 나눔과 소통을 통해 생명평화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생명평화가 어디에 있는지, 진정한 생명평화가 무엇인지 두 스님도 모른다. 길에서
    묻기로 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부처이다. 그래서 걷고 또 걸으며 만나고 또 만
    나기로 했다. 더러운 물이라도 모이면 세상을 쓸어버리지만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조롱박
    에 담겨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도법).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를 마쳤지
    만 변한 것은 없었다(수경).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그 무엇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산에 있지 않았다. 낮은 곳에 있었다. 두 스님은 그 무엇을 찾아내 흩어진 맑은 물들
    을 모으고자 한다. 그래서 탁발순례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돈, 밥, 땅도 얻겠지만 궁극적으
    로는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 마음들을 움직여 밝힌 평화의 등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잠못이룬 도법과 수경스님-


    3월1일 새벽, 지리산 실상사는 고요했다. 천년을 넘게 서있는 탑들이 언제나처럼 조용히 아
    침을 부르고 있었다. 도법과 수경스님은 잠을 설쳤다. 떠남에 익숙했지만 오늘만은 그래도
    각별하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부처님께 인사를 드렸다. 10년 넘게 그들의 인사를 말없
    이 받아왔던 부처님, 오늘도 그저 빙긋 웃을 뿐이다. 보내는 사람도 뭔가 복받쳐 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도 어둠 속에 섞여 있는 침묵을 걷어내지 못했다. 햇살이 경내를 비추자
    도법스님이 산문을 나섰다. 실상사 스님들이 뒤따랐고 보살 몇은 멀리서 눈물을 훔쳤다.



    휘적휘적 걷던 도법스님이 “언제 돌아오시겠습니까 인사 한마디는 남기시지요”라는 말에 돌
    아섰다. “12년을 살았습니다. 부처님도, 마당의 탑도, 기와와 나무도 다 정들었습니다. 다
    시 왔을 때 서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절 잘 지키십시오.” 수경스님은 묵묵히 듣고만
    있다. 원불교 이선종 교무가 “생명평화의 길을 못찾으면 어쩌시려고…”라며 도법스님의 손
    을 잡았다. “젠장, 그럼 죽어야지.” 도법스님이 껄껄 웃는다. 수경스님은 여전히 말이 없다.
    이윽고 두 스님이 길을 나섰다. 언제 멈출지, 가다가 병들어 쓰러질지, 정말 길 위에서 죽
    을지도 모른다. 스님들은 당당했지만 그 뒷모습은 안쓰럽기만 했다. 실상사의 아침은 그렇
    게 허허로웠다.


    -남은 사람은 흐느꼈다-


    오전 10시 지리산 노고단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시작하는 기도를 올렸다. 100명이 좀 넘
    게 모였다. 이병철 운영위원장은 “하늘의 질서 아래 지구의 모든 생명이 함께 사는 길을 우
    리는 찾고 있습니다. 된다, 안된다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길이 옳은가, 아닌가를 생각하
    면서 한걸음 한걸음 가고자 합니다”라며 하늘에 고했다. 이어서 수경스님의 독송이 노고단
    에 퍼져나갔다. “소유의 논리, 독점의 논리, 힘의 논리, 공격의 논리, 승리의 논리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뼈아프게 참회합니다.”



    원불교 이선종 교무에게 ‘보내는 말’을 하라고 하자 대뜸 흐느꼈다. “저는 어젯밤 한숨도 못
    잤습니다.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이것이 나만의 아픔은 아니겠지요. 생각과 길과 꿈이 같
    은 사람들이 그렇듯 일했는데도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또 저분들이 길을 떠난다니… 떠나지
    않으면 안됩니까?”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그러자 도법스님이 나섰다. “웃읍시다, 웃어
    요. 웃어야 웃는 세상이 옵니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나섰는데 자꾸 이러니 점점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세상을 의미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힘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가는 길은 편
    하고 기쁠 것입니다. 밥도 주고, 돈도 주고, 평화를 가꿀 수 있는 땅도 좀 주십시오. 우리 웃
    으며 길에서 만납시다.”


    무리는 기도회를 마치고 노고단을 내려왔다. 수경스님과 삼보일배를 함께했던 문규현 신부가
    찾아왔다. 수경스님을 보자 “우리가 가는 길이 왜 이리 고단하냐”며 껴안는다. 그리고는
    왜 “나를 빼느냐”고 투정이다. 수경스님이 “당신 만나면 고달프기만 하다”고 핀잔을 준다.
    성삼재에서 주먹밥을 먹고 순례단은 구례쪽으로 길을 잡았다. 여기서도 남는 사람과 떠나
    는 사람으로 갈렸다. 공식 직함이 총괄진행자인 이원규 시인은 모든 일을 도맡는다. 길잡
    이, 행선지 안내, 외부와의 연락, 탁발 관리 등을 챙겨야 한다.


    -“사람 다닐 길은 없더군”-


    순례단은 천은사에 몸을 부렸다. 종고 전 천은사 주지가 요사채로 들어와 큰절을 올린다.
    수경스님에게 “어떻게 걸으시려고 이렇게 나섰습니까” 하고 두손을 모은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수경스님은 “중이 할 게 뭐 있는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발톱을 깎
    고 있는 도법스님에게 첫날 걸어보니 어떻더냐고 물었다. “길이 없어. 차만 다니지 사람이
    다닐 길이 없더라고.” 곧이어 실상사에서 사람이 왔다. “오늘 작은학교(실상사 곁에 있는
    대안학교)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한데 주지스님이 두분이 떠나셨다고 축사를 하면서 얼마나
    슬피 울던지… 끝내 마치지 못했지요.” 도법스님은 “저런 저런….” 수경스님은 “울기는
    왜 울어.”


    교회에 들어 헌금를 하시는 수경스님.

    밤이 되자 지리산 반달곰 방사팀이 찾아왔다. “지리산 하나라도 야생동물 터로 지켜야 합니
    다.” “풀어놓은 곰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얘깁니다.” “지리산이란 정신
    적 성산에 케이블카를 놓는다면 정신유산을 잃는 것이 됩니다.” “정부는 나라를 바둑판처
    럼 만들려고 합니다. 무엄한 일이지요.” “스님과 사찰도 달라져야 합니다.” “생태계를 지켜
    야 할 환경부는 건설부 환경과에 불과합니다. 도대체 힘이 없어요.” “구례에 케이블카를 설
    치하는 건 절대 안됩니다. 모두가 손해고 모두가 죽어요.” 밤이 깊어갔다. “탁발 첫날인데
    너무 호사하는구먼.” 도법스님 말에 수경스님은 “맞아, 나는 실상사가 제일 크고 좋은 줄
    알았네” 하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십자가에 세번 절하다-


    이튿날 아침공양을 마치고 다시 걸었다. 길가에 산수유가 노랗게 웃었다. 바람이 찼다. 수
    경스님의 무릎이 아무래도 염려스럽다. 삼보일배의 후유증이다. 재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 순례에 빠질까봐 수술을 무기한 연기했다. 스님은 “괜찮다”고 했다.


    구례군 광의면 수한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은 조용했다. 젊은이나 아이들은 볼 수 없었다.
    세찬 바람에 마을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빈 집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아무도
    일행을 반기지 않았다. 수령 520년이 되었다는 느티나무 아래서 쉬었다. 스님들의 합장에
    도 일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마을. 충절의 선비, 매천 황현 선생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교회
    가 나타났다.

    이원규 시인이 순례 중 첫번째 만난 교회이니 들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문은 열려 있었지
    만 아무도 없었다. 주인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수경스님이 “진짜 이집 주인은 예
    수님 아니냐”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두 스님은 제단 위의 십자가를 향해 세번 큰절을 올렸
    다.


    산동면으로 가는 2차선 도로에는 바람이 어지럽게 불었다. 수경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현실에 발을 깊숙이 담가 선승의 이미지가 구겨진 것 아닙니까?” 그러자 앞서 가던 도법스
    님이 대신 대답했다. “아닙니다. 수경은 이제 허상을 깨고 나온 것이지요. 소위 한국 사찰에
    서 총림이란 게 무엇입니까 무얼 했나요 신비주의나 부추겼을 뿐이지요. 큰절이, 또 신비
    주의가 곧 부요, 명예요, 권력 아니겠소 일생 검정고무신만 신은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지
    요. 선승, 선승 하지만 자랑할 게 아니지요. 이제 이 시대 선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진지하
    게 물을 때가 됐어요. 수경의 길이 진정한 선승의 길이에요.” 그러자 수경스님이 “어이 도법
    이, 해찰 말고 똑바로 걸어” 하고 소리친다. 따지고 보면 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는 세상
    을 바꾸지 못했다.


    -살아있는 부처를 맞다-


    순례단은 산동면 내온리 마을회관에 짐을 풀었다. 60대가 젊은 축에 속한다는 이 마을에서
    두 스님은 노인들을 초청했다. 아랫목에 모시고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스님에게 그들
    은 부처였다. 진행요원들은 멈춰 있는 마을회관 벽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건전지를 교
    체한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시간이 흘렀다. 두 아들을 잃고 혼자 사는 8순 할머니에게는 생
    활비를 드렸다. 도법스님이 얘기했다. “모두들 농촌을 우습게 아는데, 대통령까지 혼내줄
    방법이 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입만 쳐다본다. “자식이나 다른 사람과 인연을 끊고 1년
    간 여기 계신 분들이 자신이 드실 만큼만 농사를 지으십시오. 그리고 땅을 놀리세요. 그래
    서 혼을 내주세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빙그레 웃기만 했다. 떠나올 때 뵈었던 실
    상사 부처님이 그랬듯이.

    〈지리산·구례/김택근 편집부국장〉

    *경향신문에서는 칼럼필진들이 일주일씩 교대로 탁발순례에 참여하면서 동행기를 쓰고 있
    습니다. 그 첫번째 동행기입니다.


    - Sarah McLachlan - Angel -



    지리산생명평화결사
2004-03-05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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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6
  • 지리산숨결 2004-03-05 22:11:55

    ㅎㅎㅎㅎㅎㅎㅎㅎ  

    • 지리산숨결 2004-03-05 22:11:18

      “아닙니다. 수경은 이제 허상을 깨고 나온 것이지요. 소위 한국 사찰에
      서 총림이란 게 무엇입니까? 무얼 했나요? 신비주의나 부추겼을 뿐이지요. 큰절이, 또 신비
      주의가 곧 부요, 명예요, 권력 아니겠소? 일생 검정고무신만 신은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지
      요. 선승, 선승 하지만 자랑할 게 아니지요. 이제 이 시대 선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진지하
      게 물을 때가 됐어요. 수경의 길이 진정한 선승의 길이에요.” 그러자 수경스님이 “어이 도법
      이, 해찰 말고 똑바로 걸어” 하고 소리친다. 따지고 보면 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는 세상
      을 바꾸지 못했다.
       

      • 평화은어 2004-03-05 17:11:38

        오십니다.
        자농에...
        13일에,
        오세요.
        저요?
        저 당근으로 가지요....
         

        • 백두대간 2004-03-05 16:16:14

          건강하시고 오시면 큰 가르침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소세마리 2004-03-05 12:39:42

            길길길질질질~~~~  

            • 문사철시서화 2004-03-05 10:28:04

              구도자란 무소유의 삶을 사는 나그네가 아닌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보살행자라 할 수 있으랴.
              내일을 걱정한 나머지 오늘의 현실에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구법의 삶이라고 하겠는가.
              자신의 문제를 염려하여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자비의 실천자라 하랴!

              지금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선 도의 완성이 불가능한 것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소유하고 집착하는 중생 업의 뿌리가
              이렇게도 깊은가 보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시간,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가장 훌륭한 일은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
              이라고 하신 옛사람의 간절하심을 되새겨 본다.

              -도법 스님의 <길 그리고 길>에서 옮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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