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꿈을 꾸었다. 내 작고 초라한 흙집에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들러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소박한 밥 한끼 대접한, 그야말로 황송한 꿈이었다.
오전에 밭에서 일하면서, 그 꿈을 생각하며 베실베실 웃었다. 우연히 알게 된 한 스님께서는 몇달전 나를 보시더니, '올해 안에 출가하겠는 걸, 늦어도 7월안에 가겠어...' 그러셨다. 물론 농담섞인 말씀이셨고, 출가란 인연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입맛만 다시다가 가볍게 흘려 버리고 말았다.
13일, 악양에서 열린 생명평화의 밤. 수경스님 뒷자석에 앉았던 나는 유독 스님의 눈주위에 있던 눈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보일듯말듯한 눈꼽이, 나중엔 점점 커져서 눈앞에서 아른 거리는데.. 손을 뻗어 그 눈꼽을 떼어드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느라 아주 혼이 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눈꼽이 불쑥불쑥 떠올라서 당장이라도 탁발순례단 가는길에 달려가서 함께 동무도 해드리고 눈꼽도 떼어 드리면서 환한 웃음 건네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애물단지 컴퓨터 할부값도 내야하고.. 쌀도 사야하고.. 옷도 사야하고.. 그럴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저녁에 딸기 다듬으면서 함께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푸념을 한참이나 했다. 그것은 색깔이 분명치 못한 내 자신에 대한 푸념이기도 했다.
<비노바 바베는 위대한 순결함을 갖춘 인물이다> 토지헌납운동으로 인도 일대를 걸었던 비노바 바베, 그의 이야기를 쓴 책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위대한 순결함... 위대한 순결함. 수경스님,도법스님,이원규 시인, 박남준 시인,그리고 함께 하는 많은 분들. 비노바 바베처럼 그분들이 가는 길, 위대하고 순결한 길. 언젠가는, 훌쩍 소리도 없이 그 길을 따라 나설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꿈 처럼 내 작고 소박한 집에서 밥 한끼 대접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농담처럼 내게 말씀해주신 출가의 길. 그것은 혹여, 생명평화를 향한 순례의 길이였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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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피가 많이 예뻐졌네요...개편 아주 좋습니다~! 서너줄 끄적거리다.. 오랫만에 스무줄이 넘는 글 썼습니다. 하루종일 노동으로 몸은 고되어도 마음이 평화로운 봄밤입니다. 살아 있어서 오늘도 역시 좋은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