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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탁발순례기 2 - 경향신문
지리산숨결 2004-03-22 18:00:19 | 조회: 9537


3월7일:구례군 마산면→상사마을(당몰샘)→토지면→간전교→수평마을(만수동콩된장)
→상만마을(15.5㎞)

강산은 느닷없는 폭설을 등에 진 채 악전고투 중이었다. 엄동의 눈을 말끔히 녹여냈
던 지리산 노고단은 또다시 때아닌 적설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산 아래 사람들의 근
심과는 상관없이 눈덮인 설경만은 장관이었다.

30년 도반으로 ‘생명평화’의 바랑을 걸머지고 순례길에 나선 도법(55)·수경(55)
스님과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42). 코가 쨍할 만큼 찬 바람에 휘청거리면서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아가고 있었다.

지리산 순례는 1주일째 순항 중이었다. 이날은 전남 구례군 마산면의 서시천과 냉천
리, 광평리를 지나 사도리 상사 장수마을에 있는 당몰샘에서 약수 한잔 마시고 용
두, 토지를 거쳐 간전으로 들어섰다. 도법 스님은 “장수의 원천인 당몰샘은 그대로
인데 샘물을 먹고 오래 살아야 할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며
“지리산 자락 농촌의 삶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무너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탄했다.



간전교를 통해 섬진강을 건너 수평리 만수동에 들어설 때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몇 년 전까지는 흙담, 돌담, 맑은 계곡을 끼고 휘돌아가던 산골마을 고샅
길. 지금은 길이 직선으로 곧게 펴지고, 말끔하게 아스팔트가 깔리고, 가로등이 매
달리고, 개울에는 높다란 축대가 쌓여 있다. 간전면은 지리산보다는 백운산 자락에
속한다. 지리산은 섬진강 건너편에 넓고 우람한 품을 펼치고 있다. ‘백운산에 올
라야 지리산을 본다’는 말이 실감난다. 10여 집의 상만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60대
를 훌쩍 넘긴 노인들이다.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의 젊은이가 있지만 뇌졸중, 알코
올중독에 걸려 마을 살림에 전혀 보탬이 못된다고 한다. 하만마을에는 10년 전 서울
에서 내려온 이성운(47)·안화자(47)씨 부부가 된장을 담그고, 천연비누를 만들며
살고 있다. 이집에서 백운산 첫물 고로쇠 약수를 대접받고 마을회관에 잠자리를 얻
었다.



음력 열이레여서 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달이 밤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실로 오
랜만에 그림자를 앞세워 산책을 했다. 온산과 온숲은 월광이 은은히 스며들어 은박
처럼 빛나고 있었다. 숲과 나무, 바위와 계곡, 물과 바람, 그 모든 이들이 생명과
평화의 선정(禪定)에 든 모습으로 다가왔다. 두 탁발승의 말처럼 이런 깊고 고요
생명평화에서 사람만 동떨어져 있었다. 밤새 잠은 오지 않고 머리는 물로 씻은 듯
이 맑았다.

3월8일:간전면 상만마을→석주관칠의사 전적지→구례군청→토지면→피아골 연곡사→
불락사(14㎞)



신새벽,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아침 공기는 차고도 상쾌했다. 나이 든 비구니 법
수 스님이 홀로 머무는 죽림사에서 아침 공양을 했다. 자리가 비좁아 두 스님은 시
래기국에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담아서 쪼그린 채 후딱 공양을 끝냈다. 도법 스님
의 손뼉 죽비를 신호로 시작된 결가부좌의 명상은 손뼉 죽비로 그쳤다. 이어 수경
스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생명평화의 경’을 읽어내려갔다. 생명평화의 경 독경
은 20분 넘게 이어졌다. 이런 의식은 하루도 빠짐없이, 약식(略式) 없이 치러진다
고 한다.

8시30분, 8일째의 탁발을 위해 길을 나섰다. 두 스님이 탁발을 택한 것은 밥보다는
마음을 빌기 위함이 라고 했다. 도법 스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와 상
관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나서 생명의 마음과 평화의 마음을 구걸할 것”이라
고 거듭 강조했다.



오전 10시쯤 순례단과 구례군수의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군수와 순례단은 앞으
로 뜻있는 대화의 자리를 갖기로 하고 헤어졌다.

순례단은 승합차를 타고 돌아나와 걸음이 중단됐던 송정리 석주관칠의사묘에서 다
시 출발했다. 순례는 한번 걸었던 길은 차로 이동하고 빼놓은 구간은 다음날 채워넣
는 식으로 진행된다. 행렬은 섬진강을 오른쪽에 두고 강을 따라 남하한다. 구례에
서 토지면을 거쳐 하동으로 향하는 국도 19번. 섬진강 물소리와 함께 코끝에 닿는
섬진강 바람이 달았다.

-세속이 청산에 범한 무례-

순례단의 진행을 총괄하는 이원규씨가 선두에 서고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 그리고
몇몇 동행들이 한 줄로 뒤를 따랐다. 2차선 도로에서 차들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인
도는 위험할 정도로 비좁았다. 선두에 선 이원규씨가 연신 경광봉을 흔들어대며 안
전 신호를 보냈다. 수경 스님은 “지리산의 거의 모든 길이 사람이 아니라 차가 주
인이 되어버렸다”면서 “속도제일주의로 사람의 길이 없어지면서 사람과 자연이 서
로 상처를 입히고 생명이 함께 병들었다”고 말했다.

물질과 탐욕과 쾌락의 시대. 산천이 병들었다기에 병문안을 떠난 사람들. 그들의 발
걸음은 몸과 마음이 아픈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처방전’이기도 하
다. 그러나 부처의 말처럼 처방전만으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거기에 의지하여
약을 지어먹어야 병이 낫는다.

오후가 되면서 지리산 날씨는 완연한 봄빛을 되찾았다. 봄볕이 이르는 곳에 꽃이 피
지 않는 곳이 없다. 화창한 봄날씨에 지리산 산수유와 섬진강 매화꽃은 사태처럼 피
어날 것이다. 오늘따라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순천에서 농기계를 제작한다
는 김용환씨는 차를 멈추고 고생하신다며, 뜻 이루시길 바란다며 마음을 건넸다.
외곡리에서는 고향에서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는 청년을 만났다.
스님들은 “뜻을 꺾지 말고 고향에서 함께 희망을 찾아보자. 농촌을 사람 냄새나
는,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어 가자”고 거듭거듭 타일렀다.



-황량해진 농촌 안타까워-

얼마전 지리산에 내려와 터잡은 여성 산악인 남난희씨 일행은 맛있는 김밥과 귤을
새참으로 가져왔다.
어제는 지나는 길에 참외장수 아저씨가 순례단을 불러세워 참외를 푸짐하게 안겨줬
다고 한다. 자연은 예전만 못해도 시골 인심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결국은 인심이
생명 평화의 불씨를 살리는 부싯돌이 될 것이다.



탁발 도보 순례는 섬진강을 버리고 토지면 피아골로 꺾어든다. 드디어 지리산 품속
으로 드는 길. 집채만 한 냇돌들이 이루어내던 피아골의 계곡미는 벌써 옛날 얘기
가 됐다. 몇 년 전 물난리 후 제방을 쌓았고, 지난해 또다시 폭우가 덮쳐 벌거숭이
바위들이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다. 세속이 청산에 저지르는 무례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했다.

외곡마을 건너편에는 왕시루봉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피아골의 계단식 논과 비
탈에는 싱싱한 야생차가 자란다. 봄나물을 캐러 나오신 할머니 모습도 보인다.
중터에서 다랑이논에 차나무를 심고 있는 팔순 노부부를 만났다. 2남2녀가 모두 도
시로 떠나고 이젠 힘이 부쳐 논농사를 포기했단다. “우리는 이 차를 못따먹어도 나
중에 자식들이 돌아와 따먹겄지”. 그러나 자식의 귀향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소망
이 왠지 공허해보였다.

순례단은 연곡사를 돌아나와 불락사에서 짐을 풀었다. 저녁 늦게 구례농민회 청년들
이 불락사로 찾아왔다. 도법 스님은 지리산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땅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살리는 길이기에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두 탁발승에게도 뜻은 무겁고 길은 아득하다. 백척간두에서 한발짝 내딛는 심정으
로 ‘생명 평화’를 향한 정진(精進)을 계속할 뿐. 하지만 이들이 가는 길은 혼자가
는 길이 아니다.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모아 걷는 길이다.

이 세상 그대로가 도량이거니와 길은 그들의 은사요, 스승이다. 길은 그들의 청산이
요, 길이 그들의 법당이며, 길을 오가는 속인들은 그들이 모시는 생불들이었다.
순례단은 지금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면서 지리산 남쪽 자락을 따라 이제 경상
도 하동땅을 지나고 있다.

<지리산·구례/김석종 생활레저부장>



지리산생명평화결사
2004-03-22 18: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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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3
  • 평화은어 2004-03-23 02:29:52

    얼굴이 너무 검게 탔어요.
    잠자리가 늘 바뀌니 술 한잔은 해야 잠이 드는 것 같고
    모두들 얻어먹는 밥이지만 정성스럽게 해주셔서 그런지 몸은 좋아진듯 해요.
    제 눈에는 이원규 시인만 안 좋아 보여요.
    누구는 잘 안씻어 그런거라고 놀리지만

    밤에는 글을 안써야겠어요.
    실은 이시간 아니면 시간도 안나는데,
    자구 가라앉아 지는듯 해서....
     

    • 햇살초원 2004-03-22 22:56:19

      힘내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 아줌마 2004-03-22 18:22:23

        어제밤 비가내려 오늘은 집안에있서도 쌀쌀한데 님들은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차분히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례를 하시는군요
        말로는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힘네세요 님들과 동행할수는없지만 마음은 그곳에서 함께하는
        님들이 많이게시다는것 오렌순례기간동안 건강하서야해요
        건강도 보살피면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쉽네요
        순례하시는 님들에게 잔잔한 마음띄움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님들에게 자연이함께하면서 안전하실길 바랍니다
        힘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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