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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윤선생님과 북어국..
연지 2004-03-22 22:20:40 | 조회: 9344
밭에서 일할때
누군가와 함께 일하면 즐겁다.
그러나 가끔은 묵묵히 혼자 일하는 즐거움 또한 크다.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고,
사물을 잘 관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때의 노동은 어찌보면 명상과도 같다.
혼자 일할때면 나는 주로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사람을 집중해서 생각할 때도 있고,
여러명을 동시에 연결지어 생각할 때도 있다.

어제 오늘, 변산실험학교와 윤구병 선생님을 생각했다.
96년이니까... 참 오래전이다.
변산 운산리,무작정 거길 갔었다.
그때 나는 공동체적 삶에 푸욱 빠져 있을 때였다.
삼일정도 생각하고 간 변산행이 열흘이 되어 버렸었다.
함께 일도하고 밥도 먹고 지내던 나날들 중
한번은 내가 밥 당번이 되어 북어국을 끓이게 되었는데
그 북어가 오래오래 푸욱 삭혀진 것이었나,
숟가락을 들고 달겨드니 국에 벌레가 둥둥, 무지리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민망해진 나는 '다시 끓일께요..' 그랬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되었다고 하시면서 묵묵히 그 국을 다 드셨다.
당연히 조무래기 우리들도 찍소리 한번 못내고 먹을 수 밖에.
국을 드시면서, 아주 심오한 이야기를 하셨던거 같은데...
머리가 나빠서 잘 생각안나고.
그저 그 국을 다들 무사히 먹었다는 것, 그것만 기억에 남는다.

거길 다녀온 후.. 일년에 한두번씩은 꼭 안부전화를 드렸었는데
최근들어 사는것이 부산스럽다보니 그것마저도 잘 못하고 있다.
쪽풀 무성했던 밭둑길, 달빛 아래 메밀밭,
마을사람들과 함께했던 산행길, 산정상에서 바라보던 바다,
그 많던 흰 고무신, 그리고 자연의 아이들...
그때 풍경들이 생생하게 일 하고 있는 밭위로 그대로 겹쳐지는데..
에고..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싶다.

그 세월동안 어디에도 진정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달 가듯이 한량처럼 살고있다.
그곳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
또 그곳을 찾아들던 수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떤 모습일지,
그들과 나의 마지막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지...
언제쯤이면 나는 맑고 고요하게 늙어서,
그런 북어국 아무런 사심없이 묵묵히 먹을 수 있는 날이 올런지...
2004-03-22 22: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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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3
  • 연지 2004-03-23 19:17:25

    응??? ^^, 지리산 숨결님..늘 수고가 많으시네요...
    오늘은 날이 흐려요..
    피곤도하고, 몸살기도 있고.. 조금 일찍 집에 왔어요..
    요즘 바빠서 밤 9시쯤이나 되어야 대문에 들어서는데...
    몸 아픈덕에 저녁풍경을 보게 되었네요.
    집에 들어서자 마자,마당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배추,쑥갓,감자에 다정한 눈맞춤 했지요.
    씩씩한 내일을 위해서..감기약 먹고.. 이제 몇시간쯤 잘려고요...
     

    • 지리산숨결 2004-03-23 09:51:29

      응????  

      • 지리산숨결 2004-03-22 22:35:25

        저도 그런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북어국을 사심없이 ...

        그러나 당장 현실적인 문제가 걸립니다.

        정말 컴퓨터 다루는 노동이 명상같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건 명상이 될 수 없겠죠?? 그럴까요?

        밤길을 걸어 평사리 벌판을 종횡으로..
        이제는 조금 나아졌는데.. 이 어깨가 너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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