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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밥꽃수레..손모심기 현장을 다녀와서
一禪 2004-06-16 16:54:42 | 조회: 7181






토요일 오후, 뜨겁고. 눈이 부신 햇살속으로 ...열린 세상을 향하여 가족들과 길을 나섰읍니다.



민폐를 줄이기 위한 살림살이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토요일 일정은 꼭히 계획되어 정해진 것이 사실은 없었음으로... 어느 부분은 무작정으로 떠났읍니다.



엄격히 이야기 하면 토요일에도 중요한 일정은 있었읍니다.



사실, 손모심기의 전과정이 기계모를 심는 것과는 처음부터 다른 과정이 많았는데.. 볍씨를 모판에 뿌리고, 새가슴의 깃털 모양의 싹이 나면, 다시 논으로 옮겨 심고, 어느정도 자라나서, 분얼(벼의 한가지에서 다른 가지가 생겨나는 때..)이 시작되면 다시 이 모를 논에 붙어있는 흙을 한올한올 뜯어 일일이 잔뿌리에 뭉뚱그려 있는 흙 덩이를 떼어내는 일명 모찌기를 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읍니다.



기계모라면 모판에 심은 대로 기계에 한판씩 얹어 모를 심으면 되는 것 같은데.. 손모의 경우엔 이 작업이 필수적으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었읍니다.



어떻게 보면, 모를 심는 것보다.. 몇올씩 뜯어 일일이 뿌리가 다칠세라 흙덩어리를 문질러 가면 흔들어 흙을 씻어 내는 작업이 제법 많은 시간을 요했읍니다.



그래서, 토요일 서너명이 먼저 가서 그 작업을 하기로 했었는데.. 결국, 일정들이 허락되지를 않아서 걱정반 호기심반으로 무작정 늦은 시간이었지만, 무조건 출동을 하였더랬읍니다.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남지 IC에서 창녕 길곡면으로 찾아들어갔더니.. 얼추 오후 6시가 다 되었읍니다. 아직 논에서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딘 분량이었읍니다.



적어도 절반까지는 해 두어야 하는 분량이었는데... 말은 없었지만, 내심 다들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오늘은 그만 끝낸다는 말씀에 저희는 송용철님 댁으로 들어가 곧 저녁을 준비 해 먹었읍니다.



시원한 효소와 토마토를 갈아 만든 생쥬스에, 부침개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무공해 산야초로 꾸며진 식단으로 마당에 가마니를 깔고.. 저녁을 먹고, 삼겹살 한점도 먹었읍니다.



식사후, 서국장님과 일행 한 분은 먼저 부산으로 돌아가시고, 철마에서 농사를 하시는 태환선배랑 저희 가족은 집안으로 들어가 보이차로 담소를 나누었읍니다.



논을 제공하신 송용철님께서도 사실은 손모를 심지 않으신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부산귀농학교의 의욕적인 기획을 들으면서, 누군가는 동참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결단을 내리셔서 함께 해 주실 것을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이 사실은 세번째의 시도라고 하였읍니다.


일전에.. 다른 귀농학교에서도 시도를 했었다가 막상 참여자가 극히 저조하여 그만 중간에 좌절되곤 하였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도 손모심기는 이제 정말 어찌 해 볼 수 없는 지난 풍경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읍니다.


농촌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 현실을 감안해 볼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세드신 어르신들의 기억속에서도 "손모심기"가 몇십년씩을 묵힌 체험이고 보면.. 아뭏든 이번에 시도해 보는 프로그램은 참으로 진귀한 체험이 아닐 수 없읍니다.



더운 날씨라서인지,, 시골에서 맞이한 이른 아침, 7시 경 되어 먼저 천막을 쳐 놓고.. 모를 찌기 위하여 저희 가족과 송용철님, 태환 선배가 논으로 먼저 갔읍니다.



저는 무릎위로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남편과 아들은 맨발로 들어갔읍니다.


정말, 난생처음.. 물을 댄 논으로 제가 들어갔읍니다.



몇올씩 뿌리부분을 잡고 흙을 씻어나가면서 밭벼의 뿌리와 금방 다른 부분을 알게 되었읍니다.


확실히, 물이 없는 밭에 뿌린 벼의 뿌리는 그 싹에 비하여 뿌리가 엄청 굵고 크고 잔털도 진짜 많거든요.. 뭐랄까, 꼭, 굵은 뿌리에 잘게 돋아난 잔털의 형식들을 갖추고 있었는데.. 물을 댄 논에 뿌려진 벼의 뿌리는 그냥 잔 수염처럼.. 싹에 비하면 뿌리의 크기가 짧고 비슷한 크기의 털들이 나 있었읍니다.



생각보다 일이 더디고.. 엉덩이를 물에 담글 수도 없고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허벅지 근육이 혹사하는 시간이었읍니다.



그래도, 저의 가장 취약점인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아닌 고로..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보니, 쉽게 몰입이 된 탓에 송용철님으로 부터 어제 팀보다 훨~ 낫다.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남편과 나 , 큰 아들이 맡아서 한 파트를 하고, 두분이서 다른 파트를 맡았는데. 웬일인지, 생각보다 잘 했던거예요..



보이지 않던 부피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자.. 자신감까지 생겼죠.



작은아이는 엉덩이 뒤에서 철퍽거리며 놀이에 전념을 하였는데, 진흙을 미꾸리처럼 파헤치며 온 몸에 칠갑을 하면서 이미 옷 버린지는 오래고.. 이젠 머드 팩에 머리까지. 흙을 묻히고.. 뛰어다니며 놀기에 정신이 없었답니다.



첨으로 말로만 듣던 새참을 먹었어요.


막걸리와 부침개, 충무김밥과 떡, 정말 맛이 기가 막힌 열무김치...그리고 후식으로 토마토까지..(일을 했다고 새참맛도 별미더군요 ^^)



부산에서 단체로, 개인으로 속속 사람들이 도착하였읍니다.


여장을 채 풀기도 전에 옷을 갈아 입고 논으로 들어왓읍니다.


혹시, 옷을 버릴까 두려워 하는 맘을 없애 주려고 서로 흙을 던지며 옷을 더럽혀 주며 신고식을 했답니다.


역시, 서른명의 인원들이 늘어나자, 일은 삽시간에 줄어들었읍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일이. 두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 끝났읍니다.



묶어둔 벼를 다시 트럭에 싣고 심을 논으로 옮겼읍니다.


아이들만 열명 가까웠는데.. 난리났죠.


저는 단한번도 체험 하지 못한 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하루종일 잘도 놀았어요. 천국이 따로 없었고.. 흙을 진창으로 묻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천사의 모습 그대로였답니다.



아이들이, 그 곳에서.... 저렇게 자유롭게.. 자연속에서 막, 뛰어놀고 있었던 거예요.


마음 가득, 밀려오는 깊은 안정감으로 ....발을 담근채..손을 담근채 ... 생.명.평.화의 기운을 양껏 느꼈읍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손모를 심는 순간...


다들, 가슴 설레어 하며 일렬로 줄을 섰읍니다. 정말 저희가 생각해도 장관이었을 것 같아요.



양 쪽 끝에서 두사람이 못줄을 잡았읍니다.


"어이"하는 소리에 다들 한 걸을 뒤로 물러섭니다.


못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논물 가까이에 깔리면, 빨간 꽃이 있는 표식 부분에 모를 서너개씩 잡고 논에 심습니다. 하지만, 거의 논 흙에 꽂아 주는 수준입니다.


한줄, 한 줄 뒤로 물러설 때 마다. 눈앞의 빈 논이 파란 모로 바뀌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채 다 심지도 않았는데,, "어이"하는 소리가 들리면 더욱 허둥대어지며 맘도 몸도 바빠졌읍니다.



그렇게 쩔쩔매면서 모를 심던중, 육순이 다 되신 신용태 부회장님께서 뒤늦게 합류하셔서 모를 심는 방법이 틀렸다고 하십니다.



즉, 두사람씩 짝을 지어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어깨가 부딪히고 헤어지고 하면서 공간을..논을 움직이면서 모를 심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손이 닿는 부분까지만 모를 심었읍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여백에서 비어진 못자리는 먼저 답답한 사람이 낑낑거리면서 심어야 했읍니다.


답답해 하시는 신부회장님과 저하고 둘이서만 먼저 왔다갓다 하면서 모를 심었읍니다.


제가 겨우 대여섯개의 모를 심을 동안 신부회장님은 열다섯개정도의 모를 심으셨읍니다.



신부회장님께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하면서 심는 모양대로, 저도 따라 해 보았읍니다.


훨씬, 일이 수월하게 느껴졌읍니다.


제자리에서 고정되어 빈자리가 날때, 마치 남의 것을 대신 해 준다는 손해 보는 것 같던 마음이 전혀 없었읍니다.


왜, 이자리가 비어있을까, 하며 좀 땡겨오지하는 원망스런 맘도 없어집니다.



비록 발이 잘 빠지지 않는 논 바닥에서였지만, 그래도 발을 빼서 한걸음씩 움직이면서 곁의 사람과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심으니까, 힘드는 줄을 모르고 일이 진행 되는 거였읍니다.


가끔씩, 신부회장님은 "어이,"하는 큰 소리를 내시면서 힘을 돋우어내기도 하였읍니다.


말인즉슨,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모를 심는 양이 다르다 이겁니다.


그런고로, 잘하는 사람과 만날때는 좀 이익을 보고, 좀 못하는 사람을 만날때는 내가 도와준다 이겁니다.


단지, 몇걸음 움직이며 모를 심는 것 뿐이었는데.. 삶의 방식마저 차이가 나는 것이었읍니다.


좀 더 잘하는 사람이 좀더 몇걸음 먼저 달려와서 나의 짐을 덜어주는 배려를 받으니까, 나역시 좀더 빨리 해서 옆의 사람에게 더 빨리 가서 하나라도 더 심어주어야겠다하는 맘이 절로 생기는 것이었읍니다.


모를 그렇게 심는 것인지 모를때는 그런 맘도 생기지 않았던거죠.


그래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원리가 딱 맞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죠..




그런데도, 절대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한다, 그렇게 해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별로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서있는 자리에서 팔 길이가 닿는 만큼 심고 ..신호가 떨어지면 한 걸음 뒤로 빼고...



바로 습관의 차이였읍니다.


삶의 양식의 차이..


알면서도, 이야기를 들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먼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안되는... 도시와 시골이란 삶의 양식에서 오는 차이...



뒤늦었지만, 신부회장님과 저, 그리고 저 옆의 옥선언니와 귀농학교를 차기수에 다닐 처자 미애씨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했는데.. 정말 귀한 공부를 하였읍니다.



드디어, 두마지기의 논을 100% 손모심기로 다 채우는 역사적인 순간이 돌아왔읍니다.


눈 앞에 파랗게 듬성듬성 심겨진 모가.. 생명의 밥줄이.. 그 밥꽃수레가 있었읍니다.


시간은 저녁 7시..


아직 밝은 저녁.. 얼마나 뿌듯하고 꽉찬 기쁨이 밀려왔던지...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읍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발갛게 익었읍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로 많았읍니다.


하지만, 같은 맘으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것이었지요..



귀농 공부를 하면서 가장, 보람있고, 가장 의미있었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밥을 주식으로 하면서도 쌀이 어떻게 생긴건지, 도대체 쌀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지조차 모르던 과거의 저는 아닙니다.



이젠, 논을 지날때면, 적어도 농부의 참 수고로운 몸과 맘을 이해할 수 있을테지요...40년 묵은 마음의 빚을 덜어낸 느낌입니다.



앞으로 김매기와 추수의 남은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을테지요..



하지만, 오늘처럼 했으니까, 잘 할 수 있겠지요.^^



가족들과 함께 한 너무도 소중한 경험과 추억들이 제 평생, 가슴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귀한 이때, 서른명이라는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면서 영글어낸 작업이야말로 이 세상을 지켜 갈 수 있는 희망의 메세지, 바로 위대한 에너지가 아니겠읍니까









2004-06-16 16: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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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1
  • 토물 2004-06-18 20:58:42

    성년이 되면서 농사일을 계속해온 사람입니다.
    님의 경험이 옛일을 그대로 예기해 주내요.
    좋은 추억 깊이 나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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