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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이 시를 김선일 씨의 영전에 바칩니다. (모셔온글)
푸른숲 2004-06-24 22:58:28 | 조회: 7499
김창오


삼가 김선일 씨의 영전에 바칩니다.


끝내 우리 곁을 떠나셨군요,
살고 싶다는 그 소박하면서도 절박한 외마디 절규만
우리의 가슴속에, 귓가에 송곳처럼 후비어 남긴 채.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당신의 조국에 호소하던
그 처절한 몸짓만 우리의 망막 속에 헛되이 남긴 채.

당신이 죽으면,
저 월출산 너머 새벽 동녘 하늘은
이제 다시는 빨갛게 물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암흑을 이 세상도 느낄 줄 알았습니다.
하늘은 어둠의 장막을 펼치고,
세상은 다시 태초의 시간 이전으로 되돌아가
적막한 어둠 속으로 몸을 움츠린 채
이 무의미한 일상의 활동을 중단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기어코 얄미우리 만치 뻔뻔스런 태양은
천황봉 위로 얼굴을 내밀고야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분노와 통곡을 비웃기나 하듯이
맑은 햇살을 대지 위로 드리우며 구름 속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건장하던 한 청년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세상은 어찌하여 이렇게 천연덕스러울 수가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참수 당하는 바로 그 순간,
이 땅의 모든 슬퍼할 줄 아는 사람들 역시 참수 당했습니다.
당신의 피가 저 열사의 나라 이라크의 사막에 뿌려지던 그 순간,
이 세상은 모든 순결함을 잃고 분노와 증오와 원한으로 더렵혀졌습니다.

우리는 누가 당신의 그 고결한 정신을 훼손했고,
우주만큼이나 거룩하고 소중한 당신의 생명을 앗아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믿고 의지했었을 당신의 조국은
당신이 납치되어 수모를 당하고 있던 치욕의 순간에도,
당신이 저 잔인한 납치범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원통하게 죽임을 당한 후에도,
앵무새처럼 파병, 파병, 파병을 반복하고만 있답니다.

김형!
칠순의 부모님도 못보고, 저 어여쁜 누이들도 보지 못한 채
어찌 이승을 떠날려오

김형!
당신은 본의 아닌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부모님의 칠순 잔치를 앞두고 어찌 부모보다 앞 서
세상을 뜰 수 있단 말입니까
온 동네 사람들 다 모인 아버지 칠순 잔칫날
오직 그대 하나 바라보고 살아오신 어머니, 아버지
등에 엎고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쳤어야하지 않았겠습니까?

김형!
당신은 아쉽고도 야속한 사람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목회자가 되어
나처럼 속세의 욕망에 찌들어 죽어 가는 가엾은 영혼들을 구해주고,
부모님의 임종도 지켜보며 기도를 올렸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도대체 뭐 하러 저주와 기만의 땅 이라크를 가셨습니까?
억울하게 죽어간 부녀자들과 어린 아이들의 영혼이 흐느끼며 우는 곳,
그 가족들이 눈을 부릅떠 잠 못 이루고,
밤낮으로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원한과 증오가 사무쳐 강을 이루는 곳,
온갖 고문과 학대와 잔악 행위가 난무하고 거짓 정보가 진실로 둔갑하는 곳,
그곳에 도대체 뭐 하러 가셨습니까

김형!
오월 하얀 목련처럼 순결한 영혼을 가지고 왔다가
잠깐 우리 곁을 스치고 서둘러 밤하늘로 가버린 사람이여!
당신은 한없이 허약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어찌할 수 없이 마주치게 했습니다.
천년동안 우리의 핏줄 속에 세습되어온 사대근성과 굴종의 본성을
새삼 까무러치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힘 센 자의 불의에 항거하지 못합니다.
보복이 두렵고 홀로 서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새들도 둥지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거늘,
우리 단군의 자손들은 연개소문 이래로 힘 센 자의 그늘에
몸을 웅크리고 날개를 접었습니다.

김형!
당신의 비통한 죽음으로 우리는 한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못다 이룬 꿈을 안고 원통하게 이승을 떠난 그대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원한을 접고 이제는 편히 쉬라는 작별인사를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직은 구천에 남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제대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사랑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 순종하는 법과 저항하는 법, 싸우는 법과 지는 법, 명예롭게 사는 법을.

그러나, 당신을 위한 기도는 하게 해 주십시오.
당장 힘없는 우리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당신이 천상에서 편히 쉬게 될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김창오 (2004-06-24 16:30:20)

또 농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타박할 분이 계실 지 몰라 미리 양해말씀 올립니다.
어제 아침에 살해 소식을 듣고 속이 울렁거려 혼났습니다.
텃밭에서 캔 감자와 아욱을 넣고 제일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였는데도 입맛이 없더군요.
그리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저도 울었습니다.
그래서 조문하는 마음으로 엉성하지만 조시 한 편 써서 여러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것은 제가 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식 가진 사람으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슬픕니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이렇게 올렸으니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서 빨리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화니문 (2004-06-24 16:44:29)

▶◀ 삼가, 고 김선일 님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장상림 (2004-06-24 18:15:42)

감사합니다

님의 조시를 읽고 또 읽고
눈시울이 촉촉해져 글자가 춤을 추건만
그럴수록 자꾸만 더 읽고 싶네요

이젠 촉촉하든 눈 가장자리가 따갑습니다
눈물에서 강한 독성이 배어 나오나 봅니다
깊은 가슴의 지독한 독이...

남이 모르게
자신도 모르게
이젠 확실했든 원인마져도 희미해진 체
계속해서 흐릅니다
정신마져 혼미해 졌나 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자유인 (2004-06-24 22:15:41)

뉴스소식을 접하며 갑자기 구토가 밀려오더군요
참수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었는데, 이젠 이 단어가 너무나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지니...
인간의 잔학성에,그걸 즐기는 엽기사이트같은 악마들을 보면서 더이상
기가막혀 할말을 잃습니다
제발 고인의 영혼이라도 아름답고 평화로운곳에서 영원히 쉴수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4-06-24 22: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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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2
  • 차사랑 2004-06-24 23:32:54

    하늘도 슬픔의 비를 내리고...
    .................................
     

    • 지리산숨결 2004-06-24 23:08:21

      서울 친구하고 내내 통화를 했습니다.
      울분을 토하면서 .......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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