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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경운기와 아버지..
파르 티잔 2004-07-29 22:04:41 | 조회: 5479
보길도에서 돌아왔다.
더 있고 싶었지만 벼 이삭거름을 주어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빨리 가자고 어제부터 채근이셨다.

보길도에서 김제까지는 4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래도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고 나서 많이 단축 되었다.
아침 먹고 섬을 나서서 집에 도착하니 12시 점심때가 되었다.

이삭거름을 주기 위해 4시쯤 오랜만에 경운기를 몰고 들판에 나섰다.
경운기를 타고 가다 보니 경운기에 묻어있는 옛추억들이 배기 통에서 품어내는 검은 연기마냥 피어 오른다.

시골에서 경운기 시동을 거는 것은 꽤 중요한 통과의례 중 하나였다.
경운기는 시동모터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손으로 플라이 휠을 돌려서 시동을 걸어야 한다.

엑셀레이터를 올려 놓고 힘차게 돌리다가 어느 순간 시동기를 놓아야 하는데 그 시점과 경운기의 특징인 거대한 플라이 휠을 돌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경운기 시동을 걸 수 있는 나이는 보통 초등학교 4-6학년 정도다.
나도 그때쯤 경운기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러면 조금 어른이 되는 것이다.

50키로 짜리 벼 가마를 혼자서 들 수 있으면 어른이라고도 했다.
그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그냥 힘만 가지고 해서는 들기 힘들다.
더구나 혼자서 드는 것이라면 더욱 요령이 필요한데 그냥 등짐을 지고 옮기는 것이면 중학교 1학년이며 가능하다.
나도 그 나이에 논바닥에서 많이 날랐다.
하지만 혼자서 들어서 어깨에 올리기 까지는 어깨나 등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고도 1-2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가장 힘든 것은 80키로 짜리 쌀 가마니다.
혼자서 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어깨에 올려 주면 옮기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이 보고 있으면 태연한 척 옮기곤 했다.
지금은 모두 40키 포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쉽다.

경운기는 말 그대로 경운을 하는 기계다.
경운은 땅을 파는 것을 말한다.
경운기의 초기 목적은 소를 대신할 기계장치를 원했기 때문에 경운기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처음 경운기의 경쟁 상대는 다름 아닌 논 갈고 짐 옮기는 소였을 것이다.
소와 경쟁해서 많이 팔기 위하여 경운기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의 1960년대부터 사용되었다는데 우리집에 리어카를 대신해 경운기가 들어온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 후로 논 갈고. 흙 분쇄하고(로터리치고), 평탄 작업 하고, 짐 옮기고, 그러니 벌써 이 놈이 우리집에서 동거동락 한 것이 16년 가까이 되었다.
16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멀쩡하다.
경운기는 요즘 승용 경운기도 나오고 트랙터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사양길이다.
그래도 시골에서 경운기 소리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시골에서 사용하는 기계장치 중 경운기 만큼 저렴하면서도 많은 일을 해내는 장비도 드물다.

논에서 아버지와 오랜만에 비료도 주고 이것 저것 일도 했다.
3시간 동안 일을 하고 나니 적당히 땀도 나고 몸도 풀린 것 같아서 법 먹기 전에 달리기를 했다.
나에게 달리기는 인도에서 하는 요가나 스님의 참선처럼 맘을 다스리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이미 삶의 많은 중요한 선택들을 달리면서 결정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역시 푸른 논만 가득한 김제 평야의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일몰은 장관이다.
노랗고 붉은 예쁜 노을도 지고....

시골길을 달리니 과거나 지금이나 농업천시 정책이 만든 이농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서 농민들의 사회적인 지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농촌에서 농부는 꼭 필요한 존재고 농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술자다.
그는 농촌에서 또는 어촌에서 살면서 오랜 기간 동안 농사기술을 습득하고 물려받은 숙련된 고급 기술자인 것이다.
더구나 그는 농촌공동체에서 나름의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존재"다.
하지만 그들이 도시로 가면 힘밖에 없는 하층 기술자가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들은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로써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은 농촌에서 농업기술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자기의 일자리에서 쫓겨나서 아무런 기술도 없는 무능, 또는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황당함과 어이 없음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그 쓸쓸함이 지평선으로 가라앉는 해마냥 서럽게 느껴진다.

그들의 쓸쓸함과 슬픔으로 우리는 성장했다.
그리고 요즘 분배를 이야기 한다.
성장과 분배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이제 되었으니 지금부터 분배하자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친구처럼 함께 가야 할 문제이며 이미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충분히 저임금과 쓸쓸함과 슬픔으로 부를 위하여 나누어 주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농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골에서 묵묵히 남아있었던 울 아버지는 시골에서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농업기술자다.

이미60년이 넘도록 시골에서 녹녹치 않은 삶을 살아온 아버지...
그가 시골을 떠나 도시에 간다면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할아버지가 된다.

나는 아버지가 언제나 시골에 있기를 바란다.
그는 거기 있을 때 가장 멋있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2004-07-29 22: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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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7
  • 구름나그네 2004-07-30 20:20:37

    파르 티잔님!
    거기 있을 사람은 거기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네요.
    잘 읽었습니다.
     

    • 로망스 2004-07-30 19:43:31

      파르티잔님~
      저 역시도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릴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논에서 김도 매어보고
      모내기도 해보고,,등 이것저것 논,밭일을 안해본게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도 나이도 많으시고해서,모든 논과밭을
      해결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가진게 없죠...
      아버님과 파르티잔님의 농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래도록 아름답게 시골 지켜주세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농업의 기술자 "아버님"
      홧팅입니다....

      그리고 파르티잔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두분 모두 항상 건강하세요...
       

      • 검지 2004-07-30 12:22:41

        파르티잔님이 김제에 사시는구나~
        가까우니 더욱 반갑습니다. 저는 익산~
        경운기와 쌀가마에는 인연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쌀밥 먹기가 힘들었지요
        대신 고구마 가마니 저울로 많이 달아봤어요
        고구마, 감자, 옥수수가 기호식품이 된 것이 희한하기도 합니다.
         

        • 가을파랑 2004-07-30 11:36:47

          아버님과 파르티잔님! 열심히 그 시골 지켜주세요^^
          지금 당장은 그 소중함이 무시되고 있지만 언젠간
          두분 같이 묵묵히 자기자리 지키는 분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정상적인 사회가 될거예요
           

          • 들꽃향기 2004-07-30 10:00:51

            자주뵙게되니 정말 마니 기쁜걸요.
            추억이 많은 분들을 보면 늘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농촌에서의 생활 그 추억은 평생을 안고 살아가는 생활의 활력소인듯합니다.

            저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지 참 상막하다는 느낌을 많이 안고 살거든요.

            그래서 저희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고 이 악양골에 내려온 동기 중에 하나입니다.

            방목된 아이들을 보면서 참 잘 내려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흐뭇합니다.

            성우란 막내 아들이 며칠전 그러더군요.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지을거라고....
            모든것을 아빠에게 배우면 된다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단한 것을 품고 산다고 생각이 들어서 였을까요. 깜짝 놀라는 우리들을 향해 씨익 웃으면서 공부 잘한다고 다 잘 사는것이 아니라는 그 아이...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습니다.
             

            • 노래하는별 2004-07-30 09:28:06

              제가 아는 친구중에 정말 도시적으로 생겼는데
              어렸을적부터 농사지은 경험담을 재미있게 얘기하는 친구가 있어요
              저는 완전 서울 출신이라 정말 재미있게 추억담을 듣곤 했지요
              그때 기분이 드네요 잘읽었습니다
               

              • 지리산숨결 2004-07-30 08:46:23

                음... 묵묵히 흙과 함께하는 분들을 보며
                항상 저 자신의 외소함을 보곤 합니다. 파르티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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