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해오름 그리고 평화
아침이다.
이른 아침 나는 보길도의 해 오름을 보고 싶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나는 오랜 만에 어머니와 보길도까지 찾아왔다.
보길도는 누이가 사는 곳이다.
스무 살이 갓 넘던 어린 나이에 섬으로 시집을 가버린 누이였다.
어머니 아버지 가족 모두 반대 했지만 결국 결혼했고, 이미 큰 아이는 중학생이다.
섬 생활이 익숙한 누이의 얼굴엔 같은 또래의 도시 아줌마와는 다른 분위기와 검은
얼굴과 주름이 있다.
그저 섬에 산다는 이유로 누이를 생각하면 가슴 한 편이 항상 아려 오곤 했다.
그것은 아마 섬이라는 닫친 공간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살아갈 누이의 외롭고
소외된 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섬은 도시보다 아늑했다.
너무 넓어서 10만이나 백만 정도는 작은 마을로 보이는 넓은 도시는 누이가 10년을
살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겠지만 지금 누이는 이 작은 섬마을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몰라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섬은 그녀를 고립하고 외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던 것이
다.
어머니..
그 이름은 언제 불러도 서럽고 따뜻하다.
19살에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와서 다섯 아이들을 키워낸 어머니는 나이보다 서너 살을 더 늙어
보이신다.
주름진 얼굴에서 피어나는 환한 웃음이 때로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나이도 이제
곧 환갑이다.
국민학교도 구경 못해봤다는 어머니는 겨우 집에서 한글과 셈하는 방법을 알 정도 밖에 되지 않
지만 그 순한 마음씨와 무엇이든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가르침으로 아이들을
길러냈다.
아마 내가 조금이라도 사람 구실 하면서 이렇게 자란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간섭하지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고 가르켜서 그런지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문제, 회사 문제
그리고 그 어떤 문제든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결정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잘했다.
네가 했다면 옳은 일이겠지.. 이정도 말씀만 하셨다.
또한 그녀는 가난한 자의 소박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셨고, 가난한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다.
그녀가 봄철 모심을 때나 품파는 일을 나가서 간식으로 주는 빵을 먹지 않고 챙겨와서 주시던
그 투박하고 배고픈 손에서……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기대신 사온 돼지비계살로 만든 음식에 베어 있던 슬픔에서……
“맛이지?” 라고 그녀는 묻고 있었지만 내 맘속엔 눈물만 흘렀다.
그 비계살과 살코기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가 느낀 가난한 자의 슬픔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방학이면 보충수업을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공부하기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보충수업비를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해서
이었음을 그녀는 알 고 있을까?
대학교를 다니는 자식에게 집을 떠날 때마다 용돈을 챙겨 주시면서 받지 않겠다던 나와 실랑이
끝에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 주던 만 원짜리 한 장에 흘렸던 눈물만큼 내 마음도 커 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것이 싫어 집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멀어져 가는 버스를 멀리서 바라보던 그 눈빛이 자취방에 들어설 때까지 나의 온 맘을 감싸고
휘감고 요동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용돈을 받지 않게 되고 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그 녀의 힘든 노동의 대가를 내가 가져 가지 안아
도 됨을 얼마나 감사 했는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
대학4년 내내 학생운동에 몰두 하던 나에게 그녀가 해준 한마디의 말 “사람은 나 보다는 타인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와 손을 잡고 걷는 보길도의 아침 바닷가 방파제에서 온갖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빠져 나간다.
아침이다.
나는 지금 그녀와 둘이서 보길도의 아침 바다를 보기 위해 나와 있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작고 비참한 것인가..
바다 속에서 방금 솟아난듯한 말쑥한 섬 위로 은은하게 퍼지는 햇살의 아름다움에
나는 넋을 잃는다.
나는 지금 그녀의 두툼하고 꺼칠한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녀도 좋은지 내 손을 놓지 않는다.
마주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내 가슴에 하나 하나 깊이 뿌리내리고있다.
나는 이제 그녀와 함께 했던 세월 보다 앞으로 살아야 세월이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항상 삶에서 이별을 강요 당하다.
그녀는 머지 않아 세상의 곁은 떠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죽는다고 해도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그녀가 살아 있을 것이다.
아마 그녀도 그런 생각을 하겠지...
스케치북에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본 적이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 그녀의 모습을 수없이 그려 보았다.
눈을 감고 그녀를 떠 올리면 그녀는 항상 내 눈앞에 나타나서 나에게 살포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떨리듯 보드랍게 잡는다.
그녀의 손에서 전해오는 온기에 나는 평화를 느낀다.
아마 그녀가 나를 떠나게 된다면 나는 그녀를 좀더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내 가슴속에 언제나 남아 있어서 내가 조용히 눈을 감고 그녀를 떠올리기만
한다면 그녀가 내 앞에서 언제나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해가 나온다.
소안도 위로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바닷를 주홍과 노랑 크레파스로 색칠한다..
아침 일을 나가는 고깃배 하나가 주홍색 노란색으로 치장한 바다를 흔들며 추자도로 향한다.
요동치던 색색의 파도가 서서히 방파제로 몰려온다.
떠오른 태양이 기섬 위로 올라온다.
안개 하나 없는 바다를 가로질러 붉은 해살 뭉치 하나가 어머니의 앞으로 달려온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끄러미 태양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처럼 순박하다면 세상이 좀더 아름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처럼 세상을 대한다면 세상은 좀더 평화로울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 훌륭한 모성을 보여준 스승들이 있는데 우린 왜 그런 것을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일까?
합리적 또는 이성적이라는 말 속에 따뜻한 감성이 흐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증발 시켜 아무것도 살지 않는 증류수처럼 평화와 생명을 품을 수 없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자식을 낳지 않겠다던 한 선배의 말처럼 우린 이제 아이도
돈으로 환산하여 한 아이에 얼마라는 식으로 사고 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녀가 4째 자식인 나를 돈으로 생각했다면 나는 지금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 생명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그녀의 주름진 이마와 볼에 두툼한 노동의 손에 존경과 감사를 가슴속에 세긴다.
2004년 7월
여름 보길도에서 파르티잔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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