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에서 백두까지..
< 한라산 진달래 산장>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대간 힘~~~~
백록담에서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백록담 분화구 안에서 외침은 백두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분화구를 맴돌다 사라진다.
한라산에는 갈 수 있지만 백두산까지 우리는 달려갈 수 없다.
허리 잘린 분단 조국의 현실이 만든 한계다.
<1933미터 한라산 동쪽 >
성판악을 출발하여 1시간 50여분 만에 한라산 끝 단에 오른다.
안개가 휩싸여 백록담 분화구는 보이지 않고 분화구 가득 구름만 가득하다.
안개비가 내리고 달구어진 몸뚱이는 쉽게 식어 버렸다.
으스스 한기가 찾아온다.
방한복을 걸치고 한라산 정상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한라산 관리인이 와서 백록담은 자연휴식연제로 지금은 들어갈 수 없지만 WCO행사 때문에 특별히 허락한다는 말과 함께 인원수 제한을 요구한다.
한라산 정상에서 관음사로 하산하다가 백록담 휴식연제 안내판 있는 곳으로 진입하여 백록담에 다다른다.
<안개속의 백록담>
백록담은 지척에 다다를 때까지 그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백록담을 지키고 있었다.
가파른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니 수줍은 듯 백록담이 나타난다.
고라니의 컹컹거리는 소리가 딱 한번 분화구를 울렸을뿐 사방은 고요하다.
백록담엔 물이 거의 없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백록담 낮은 물에는 올챙이들이 있었다.
물은 어디서나 생명을 품고 있다.
함께한 대원들이 백록담에서 안개와 비가 옮겨온 물을 채취했다.
나는 대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이유로 흙은 채취했다.
백록담의 흙은 모두 모래알이었다.
모든 흙은 바위에서 잉태된다.
그러니 이 흙도 바위가 자갈이 되고 모래가 흙이 되는 지난한 역사를 품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절 한라산 백록담과 함께 했던 흙은 백록담과 한 순간에 이별을 고한다.
그것이 이 흙의 운명이다.
백록담 근처는 자주 물이 고이고 마르기 때문인지 물이 없는 곳은 진흙이 갈라져 틈이 보였지만 풀이 자라지는 않았다.
백록담과의 짧은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분화구를 빠져 나온다.
왕관릉을 지나서 관음사로 뛰고 걷고 하여 서둘러 내려왔다.
<산길을 걷는 사람들>
산은 새로운 세상을 보고 산이 품과 있는 역사와 만나게 해준다..
두 발로 달리고 걷는 것만큼 세상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도로를 주행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고 착각하지만 내 생각엔 그저 그런 행위는 출발과 도착이 있을 뿐 만남은 없다.
여행이란 걷는 것이다.
걷는 것은 새로운 길과 만나는 것이고 길과 이어진 또 다른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길은 걷는 사람에 따라 다른 역사를 보여준다.
한라산을 걷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노래였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때문에 한라산 여기 저기 잠들지 못하고 아직도 구천을 헤매는 슬픈 영혼들에 목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 슬픈 영혼들의 혼처럼 맑은 백록담의 야생화>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 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4.3 항쟁 당시 제주를 배경으로 부른 이 노래는 대학시절 새우깡에 먹던 쓴 소주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과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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