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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목표가 정확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백두대간 산행기>
파르 티잔 2004-08-26 11:13:20 | 조회: 4687
아직도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 미시령에서 향로봉 마지막 구간만 남았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엔 도래기재에서 피재까지 달렸습니다.
태백산과 함백산이 있는 구간입니다.
태백산은 처음 가보았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더군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제단인데 그날 비가 엄청 많이 내렸고 당시 태백산 정상의 온도는 영상 7-8도로 비까지 내리니 체감 온도는 거의 영하 수준이었습니다.
정말 8월에 얼어 죽을 정도로 춥더군요.
그래서 서있기도 힘들어서 빨리 내려와야 했습니다.
하늘과 가까워 지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겠죠.
그런데 그 와중에서 어떤 여자분 두 명이 열심히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고 있더군요.
그 분들은 무슨 기도를 하고 있었을 까요?

가는 길에 길을 두 번이나 잃어서 여기 저기 헤매기도 하고, 멧돼지가 옆에서 으르렁 거려 겁에 질리기도 하고, 고라니가 눈 앞에서 달려가기도 하고, 멧돼지 새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고 하구요.

그렇게 함백산에 도착했는데 글세 함백산은 꽃 동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야생화의 최대 군락지라고 하더군요.
함백산에서 야생화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 카메라에 이상이 있어서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저 노랑, 빨강, 분홍, 연노랑 꽃들이 산마루 마루 마다 가득 가득 피어 있어서 누군가 일부로 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보인답니다.
구절초 하나를 빼고는 이름을 알 수 없구요.
그저 꽃들에게 이름을 몰라 주어서 미안했습니다.
너희들 참 이쁘게도 피어 있구나..
이 깊은 산중에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꽃을 피운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 져서 대대손손 이쁜 꽃들이 함백산을 가득 채우기만을 기원해야만 했습니다.

사진이 사라져서 다시 볼 수는 못하지만 아마 마음속으로만 그 꽃을 기억하라는 태백산 산신령님의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답니다.
저만 봐서 죄송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함백산에 가보세요.

그리고 함백산 넘어 마지막 종착점인 피재는 고랭지 채소밭이 있는 곳입니다.
광활한 산중에 배추가 가득하더군요.
안개가 가득해서 30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 배추냄새만 가득합니다.
그렇게 넓고 넓은 배추밭은 처음 봤습니다.
제 고향이 김제라서 넓은 들판은 많이 보았지만 산중에 펼쳐진 그 넓은 배추밭은 마치 바다처럼 보이기도 했고, 너무 넓어서 하루 종일 뛰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잔디 운동장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스산한 짙은 안개는 너무도 습해서 제가 곧 안개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죠.
아무도 모르게 말입니다.

그 순간에도 요즘 배추가 엄청 비싸다는 소리를 들어서 인지 저것이 도대체 얼마 치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는 여전히 속세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 메이다가 길가에서 택시를 만나 길을 물어 물어 피재까지 내려왔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밑에는 안개가 전혀 없더군요.
고작 고도로 보면 100미터 정도 차이인데...
안개가 가득한 곳과 안개가 없는 곳..
꽃이 가득 한 곳과 꽃이 없는 곳..
우리의 삶이 다양한 경계와 경계를 긋고 살아가듯이 자연도 다양한 경계를 긋고 이루어져 있더군요.
그리고 그 사이에 조화가 이겠죠.

이제 남은 구간은 미시령에서 향로봉 구간 16키로 입니다.
갔다 오면 또 글 남기겠습니다.

백두대간 종주는 백두대간 850여 키로 미터를 15구간으로 나누어서 릴레이 식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하루에 달리는 거리는 산길 50키에서 55키로 정도입니다.
보통 12시간에서 16시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긴 산행에서 저는 처음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더군요.
가야 할 목표가 너무 뚜렷해서 입니다.
목표가 정확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요.
자농 식구들은 모두 목표가 뚜렷한 분들이니 모두 행복한 사람 아닐까요……
2004-08-26 11: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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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6
  • 지리산숨결 2004-08-27 09:58:44

    눈꽃이 화려한 때
    태백산을 오른적있습니다.

    그 추위에 천제단에서 정성을 드리는 분들이 있었죠.
    얼어붇는 추위에 단에서 기도를 올리는 그분들...
     

    • 참다래 2004-08-27 08:08:28

      파르티잔님 백두대간 종주소식 고맙습니다.
      힘들어도 백두대간 곳곳을 구경하시니 꿩먹고 알먹고 하는것 같습니다.
      남은 구간도 건강하시고 존소식 기대 합니다.
       

      • 늘푸른유성 2004-08-27 07:19:04

        천국과 지옥을 오고간 느낌이겠군요. 야생동물과 야생화라 ...끝까지 화이팅 하세요.  

        • 구름나그네 2004-08-26 21:36:30

          함백산을 함 가봐야겠네요. 마지막 구간 잘 뛰시기를...  

          • 들꽃향기 2004-08-26 21:04:45

            파르 티잔님!!!
            건강 조심하시구 다음에 또 한번 뵙고 좋은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세요. 아셨죠...

            글 잘 읽었습니다.

            남은 구간도 화이팅 하십시요
             

            • 노래하는별 2004-08-26 18:46:05

              저도 태백산에 간적이 있습니다
              한겨울 엄청날리는 눈발을 헤치고 천제단에 가서
              기도했었던 기억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아있죠
              마지막 코스도 무사히 마치시고 올리는글 기다리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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