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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산길에 서서... 산에서 찾은 작은 이야기
파르 티잔 2004-08-27 17:11:01 | 조회: 4152


산 길에 서서







<고요한 보길도 저녁바다>



< 내용이 아주 길어 졌네요.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읽어 주세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1 “



아침 바람이 시원하다.

가을이다.

입추가 지난지 벌써 며칠이 지났으니 가을 냄새가 날만도 하다.

유등천의 물도 가을이 되어서 그런지 더욱 맑아진 느낌이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130리 길을 달린 것이 어제 같은데 오늘은 또 여기 유등천을 달리고 있다.



지난 태백산 산행은 정말 뜻 깊은 산행이었다.

종주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과 함께 달리는 것이기도 했고 여러 번 길을 헤매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린 인생에서 자주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때로는 너무 확실해서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이 잘못된 정보일 경우 황당해 하기도 하고 허탈해서 잠시 하늘을 멍하니 보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도래기재를 출발 할 때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는 어느새 칼 바람과 억센 비로 바뀌어 뺨을 훌치며 쏟아지고 있었다.



겨우 첫 번째 봉우리에 비를 맞고 올랐을 때 임도를 만났다.

지나온 백두대간 구간에서는 한번도 임도 앞으로 바로 직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임도를 내려섰다.



위, 아래로 길을 살폈지만 길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아...”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이런 생각도 잠시 매서운 바람에 지도를 보기도 어렵고 GPS<위치확인장치>는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5시쯤이었으니 아직 새벽이었고 비가 거세게 내렸고 날이 세지 않았다.

우린 밑으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임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지만 200~300미터 마다 나타나던 방향 표시 리본이 없어 점점 불안해 졌다.



지원 팀에게 급하게 휴대전화를 걸어 보지만 산속이라 통화가 불가능 하다는 상냥한 아가씨의 답신 만 올뿐이다.



그렇게 20여분을 내려가니 계곡이 나온다.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라는 말을 확인 하는 순간이었다.

윤선생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다.

옳은 이야기다.

백두대간 어느 길에도 물이 산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다시 잰 거름으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리 저리 길을 살피는데 이게 웬일인가..

길은 우리가 빠져 나온 산길에서 바로 정면에 있었다.

그것도 나무 계단까지 만들어져 있어 밝은 낮이었다면 도저히 길을 잃을 수 없는 곳이었다.



너무 확실한 길이기 때문에 누구도 주의를 주지 않았고 나 역시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 확신이 가져다 준 실패였다.

하지만 길에 어디 실패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저 길이 있었고 잠시 그 많은 대간 꾼들도 가보지 않았을 임도 길을 산책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우리에겐 아직 힘이 넘쳐 있고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도 임도여서 체력이 소모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네.."

"그래도 길을 빨리 찾아서 다행입니다."

"지원대가 기다릴 테니 빨리 가시죠.."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실패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패는 빨리 잊는 것이 좋다.

단 그 교훈은 오래 오래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산을 좋아한다 #2



다시 달리고 걷고 오르기를 반복해서 태백산 부근에 도착했다.



태백산을 오르기 전 지원대의 정팀장의 충고가 있었다.

정팀장은 백두대간 전 구간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오랜 산행과 운동으로 다부진 채구에서 품어져 나오는 강열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태백산을 내려 오다 보면 넓은 길이 있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 귀에는 “넓은 길과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만 기억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둘러 산을 올랐고 정상에서 잠시 태백산의 정기를 느꼈다.

그 서늘하고 싸늘한 바람과 한 여름을 무색하게 하는 추위는 태백산을 더욱 경이롭게 기억하게 만드는 최고의 무대 효과였다.

그 무대 효과는 너무도 완벽해서 태백산 정상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는데 그 녀석까지 신령스럽게 보였다.

녀석의 당당한 모습을 보니 어째서 산 정상에서 고양이가 살 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혹 살쾡이는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 생각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 녀석은 가볍게 몸을 돌려 유유히 안개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산을 좋아한다.

나 역시 산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산을 보면 그 속에는 뭔가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아서 식물 도감에도 찾을 수없는 식물일수도 있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호랑이일 수도 있다.

그것은 때로는 인생의 새로운 지침일 수 도 있으며 헤어진 여인에 대한 매몰찬 자기 다짐일 수 도 있다.

그리고 인생의 외로움과 실패에서 찾고 싶은 위안일 수도 있다.

산은 그런 모든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산은 그저 산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산은 그 안에 광산이 있어서 캐어내 야할 개발의 대상만은 아닌것이다.



"길은 역사와 같다."#3



태백산은 걷기 아주 좋았다.

그 이유는 부엽토가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생태계가 잘 보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태백산은 산길에 부엽토를 파보니 약 2-3센티 미터 정도다.

부엽토가 1센치 쌓이기 위해서는 약 100년 정도가 걸린다.

그러니 그 부엽토는 이미 2-300년을 거기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오늘 푹신하게 밟고 가는 그 유명한 신밧드가 타고 다니던 달으는 양탄자보다 보드랍고 우주에서 떨어져도 옆 사람에게는 충격을 주지 않는 다는 광장된 시몬스 침대보다 폭신한 이 부엽토에는 5미리 파고 내려가면 빨치산의 발걸음에 흔적이 있을 것이며, 심마니의 발걸음과 호랑이의 발걸음 흔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 안에는 탐관오리의 학정을 피하여 산으로 도망 온 젊은 부부의 거친 발걸음이 있을 수 도 있으며 천제단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올랐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기억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서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지나간 길 위에 서있다.

그리고 그 길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길은 역사와 같다."

함께 했던 사람들, 뜻이 같아서 길을 만들었던 사람들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흔적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나는 교육이라는 것이 한 인간이 이 시대에 살아야 할 소명과 이유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서 자신의 위치와 자기 역할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본이 원하는 정형화된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즉 돈 버는 기술을 배우기 위한 과정으로써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태백산을 내려 오면서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주목의 군락을 막 빠져 나오면서 지원대 정팀장이 이야기 했던 그 길에 섰다.

바로 문제의 큰길이 나왔던 것이다.

표지판이 보이고 유일사 매표소 방향이 보인다.

“그러면 저 밑에 유일사가 있단 말이지……”



나는 큰 길로 내려갔다.

지도에는 유일사 방향으로 내려 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유일사 매표소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왼쪽으로 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왼쪽으로 가는 길이 반드시 있을 거야..”



그러나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도 잠시 울창한 전나무 숲길이 주는 아늑함이 좋았지기 시작했다.

진하게 풍기는 나무향기는 그 어떤 인공의 향수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 순간 나는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전나무 숲길을 달렸다.

하지만 나타나라는 길을 나타나지 않고 노루 한 마리만 급하게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한 참을 걷다 보니 유일사 방향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래서 다시 그 길을 치고 올라갔다.



뒤에 따라오는 윤선생님께서는 왠지 미덥지 않으신 모양이다.

하지만 앞장선 사람으로써 일단 능선으로 올라 확인해 볼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위로 올라 가는데 뒤에서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지고 하신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전원은 이미 꺼진 지 오래 되었다.

유일사로 가는 부부를 만나 길을 물으니 그 길로 올라가면 유일사가 나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믿고 능선까지 빠르게 올라가서 확인해서 길을 확인해 보니 대간 표시 리본이 보인다.

찾았구나……

아마도 그 갈림길에서 직진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또 길에서 헤 멨다.

벌써 2번째 길을 헤매고 나니 나 역시 나의 판단에 자꾸 의심이 간다.

이 길이 옳은 길일까..

하지만 옳았다.

2번 실수를 하게 되니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길은 옳은가..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 때 과거의 실패의 경험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그 실패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서 그만 돌아서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한 번의 실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는 교훈을 주지만 그 교훈이 이제 그만 도전하라는 것이라면 그 실패는 가장 큰 실패를 안겨준 진짜 실패인 것이다.

우리 발 거름을 재촉했다.



오래 오래 한 자리를 지키고 서서 세상과 대면하는 그 당당함에 주목에 멋이 있는 것이다. #4



여기 저기 주목이 있었다.

주목이 사랑 받는 이유는 그 영속성에 있다.

오래 오래 한 자리를 지키고 서서 세상과 대면하는 그 당당함에 주목에 멋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오랜 시간 동안 땅을 지키고 자손을 번성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시대는 그 멋스럽고 평화롭던 영속성의 삶을 거부하게 만든다.

우리는 부평초처럼 일자리를 찾아 떠돌면 유목민 생활을 한다.

한민족은 오래 시간 동안 농경 민족으로써 한 곳에서 오랫동안 영속적인 삶을 살면서 자손을 번식하고 땅을 지키며 살아왔다.

하지만 시대의 페러다임이 바뀌면서 우리는 유목민의 삶을 강요당한다.

현대의 유목민에게 땅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으로 인식된다.

여기 저기 유목민의 집단 거주지인 도시가 생겨나지만 도시는 그들에게 영속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그들을 추방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구성원은 너무 자주 변화되어 X라는 도시에 살고 있으나 그 X에는 어떤 공동체 의식도 없는 공허한 집단 거주지가 탄생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웃이라는 단어는 가끔 이웃사촌이라는 비유를 사용 할 때는 꺼내는 말이 되어 버린 삶을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살아간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너무나 편하고 좋은 것이다.



우리는 5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나는 우리의 머릿속 어디엔가 영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잠재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때로는 귀농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을 지나면서 느끼는 평온함과 따뜻함에서 본능처럼 발현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농촌을 말살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여 올해는 최초로 경작지가 감소되기 시작했다.

농촌은 빠르게 붕괴되고 있고 자연사 직전에서 호흡기를 통해서 겨우 숨을 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촌은 단지 공업화를 위해 포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뿌리이며, 새로운 대안 사회이며, 환경오염과 세계화에 맞서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유일 한 대안이다.

제발 그 가치를 인정하기를 바란다.



주목나무 군락을 지나다 보니 주목들이 병들어 쓰러지고 있다.

인공의 보조 물을 장착하여 구멍 난 나무를 메우어 놓았지만 그것은 꼭 나무를 숨도 못 쉬게 막아 놓은 재갈처럼 보여 나무가 안쓰럽다.

왜 인간은 그 나무에게 1000년을 당당하게 산 주목처럼 멋지게 죽어갈 자유를 앗아가는 것인가.

여기 저기 스티로폼을 쏟아 부어서 나무를 메우어 보호 한다는 그 발상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편안하게 가족 앞에서 눈 감을 자유를 박탈하고 마지막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응급차에 실려 차가운 침대에서 생면 부지의 의사와 간호사들 앞에서 인공 호흡기를 통해 거친 숨을 몰아 쉬고 몇 시간에 생명을 연장하고 나서는 “죽었습니다”라는 의사의 선고와 함께 하얀 천에 덮여지는 죽음의 처리 방식과도 흡사하다.



나무가 죽어갈 때가 되었다면 죽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그들에게 편안 한 것이다.

인간이 만든 환경오염과 파괴로 여기 저기 지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식물들과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 대한 관심은 아주 미미 하면서 태백산에 있어 소중한 관광자원이라는 이유로 보존하려 하는 그 이기심이 공업화와 휴대폰 수출을 위해 농촌을 말살하는 정책과 너무도 흡사하여 쓴웃음이 나온다.



어떤 산업도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지 못한다.#5



나는 지금 함백산을 오르고 있다.

다행히 함백산 여기 저기 들꽃이 무성하다.

과거에 다른 산에도 이렇게 들꽃이 무성하고 철마다 고운 꽃들로 꽃동산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적어도 꽃동산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요즘은 들꽃에 대해 많이 알려지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제발 산에서 직접 채취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내가 얼마 전 대전 집에서 달개비를 꺽어 집에서 키운 적이 있었다.

다행인지 한 달 정도 잘 살았지만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함백산을 달리면서 여기 저기 달개비가 작고 귀여운 보라색 꽃을 피운 것을 보고 내 행동에 대해 얼마나 많이 뉘우쳤는지 모른다.

내가 꺾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저렇게 꽃을 피웠을 터인데 말이다.

달개비는 여기 저기 흔하디 흔하지만 그것도 어엿한 생명이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 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단 하나의 생명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생명은 그 만큼 위대하고 존경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가축도 그렇고 벼도 그렇고 감자도 그렇고 당근도 그렇고 모두 귀중한 생명들이다.

가축을 생명으로 보지 않고 고기를 생산하는 하나의 생산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 가축에 대한 학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잘 포장되어 소의 어는 부위인지도 모르는 먹는 붉은 고기는 처음부터 그렇게 찍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끼를 낳기도 하고, 대자연을 호흡하는 생명이었다는 생각을 해주기 바란다.

요즘 농약에 대해 말이 많다.

농사를 짓는 분들 중에도 90%이상이 농약을 뿌린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농약을 대처할 만한 농법이 없었고 식량 증산를 위한 농사법이다 보니 공업처럼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형태를 농업이 추구 하면서부터다.

유기질 퇴비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하도록 정부가 강제를 했고 과거의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

농약은 좋은 약이라도 되는 양 전원일기를 할 때마다 광고가 나왔고 농업 기술서에는 어느시기에 어느 농약을 주라고 친절하게 적혀있다.

그러니 농민들은 정부와 언론과 자본이 원하는 대로 농약과 대형 기계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도 농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고 있다.

그래서 텃밭에 농민이 먹는 음식에는 농약을 주지 않는다.

농약과 비료를 뿌려서 만드는 농법에 내면에는 벼나 채소들이 생명이 아니라 돈으로 보는 생각이 담겨있다.

농산물 먹거리를 농촌을 돈으로만 계산하는 사람들에게는 농약이 잔뜩 묻어있는 보기만 좋은 먹거리가 알맞다.

그런 사람들이 유기농 농산물 운운하는 것이 나는 싫다.



농촌을 사라져야 할 철거 대상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 것은 아버지를 죽이고 성대한 제사를 지내는 사람과도 같다.

농촌과 농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농촌의 농민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농사를 짓게 될 것이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이 생산한 먹거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면 농약을 적게 줄 것 이고, 줄이게 될 것이며 결국은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떤 산업도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지 못한다.

단 하나 농민만이 생명을 연속적으로 키워낸다.

농민이 존경스러운 이유는 생명을 키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농사는 식물과 가축의 생명을 키워 사람의 생명도 키워내는 소중한 임무다.

부디 농부를 존경하기 바란다.



다시 검은 아스팔트 도로에 섰다.#6



함백산을 올라 다시 마지막 매봉산을 향한다.

매봉산은 고냉지 채소밭이 있다.

언제부터 이 곳에 채소밭이 있었을까..

여기 저기 채소밭에서 일을 하거나 밭을 지키기 위한 빈집들이 보인다.

싸늘하게 내리는 안개비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구간이고 GPS로 확인해 보니 고작 2키로가 남아 있다.

하지만 짙은 안개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힘들고 지쳐 있을 때이지만 나는 여전히 즐겁다.

안개가 가득한 채소밭은 걷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배추냄새만 가득하지만 공기는 신선하다.

배추는 그 특유의 하얗고 진한녹색을 품어낸다.

배추가 품어낸 향기가 안개에 녹아 붉은 대지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거기서 우린 또 길을 헤맸다.

매봉산이 어디있지……

안개 때문에 바로 지척에 있는 산이지만 보이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하고 초라한가?

하지만 그 자연을 이겨 내고 이 깊은 산중에 밭을 일군 것도 사람의 노동일 것이다.



터벅 터벅 밭 사이로 길게 난 길을 걷는다.

조금은 불안 하지만 길은 반드시 이어져 있고 그 길가엔 항상 사람이 있다.

잠시 망설이다 반갑게 지나는 택시기사에게 길을 물어 피재로 향했다.

지원대가 마중 나와 반가운 얼굴로 박수를 쳐준다.

남은 길이 아직도 1킬로쯤 되는 것 같다.

천천히 돌멩이 하나를 툭 툭 차면서 아래로 아래로 중력에 이끌려 내려간다.

다시 검은 아스팔트 도로에 섰다.



삼수령비가 있는 곳이다.

빗물이 떨어지면 각자의 운명에 따라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오십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빗물이 아무 곳이나 좋겠지만 인간만이 그 무한한 물의 윤회를 모르고 아빠는 낙동강 엄마는 한강 아들은 오십천강이라는 말을 적었다.

그 짤막한 문구에도 뿌리 깊은 남존여비가 보인다.

강의 길이에 따라 남녀를 구분하고 아들 딸도 아닌 아들이 오십천강이라니……

아들이 아니라 자식들 이라고 바꾸면 어떨까..

아니 그렇게 구분하고 싶다면 차라리 한 가족은 황해를 사랑해서 한강으로 한 가족은 남쪽을 좋아해서 낙동강으로 한 가족은 동해를 빨리 보고 싶어서 오십천강으로 하면 좋을 것을 말이다.



하루가 끝났다.

산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등산화나 배낭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느끼고 그것과 함께 호흡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
2004-08-27 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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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2
  • 들꽃향기 2004-08-27 21:35:48

    그러게요.
    제가 요즘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저도 부러버~~~
     

    • 지리산숨결 2004-08-27 21:28:31

      부러버, 다시 봐도..
      님의 가슴이, 님의 하늘이, 님의 속내가...

      아무나 멋진 사진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지요.
      사진이 어려운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마음이 사진을 찾아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마음의 감각이 사진에 우선이지요.

      그 감각이 심금을 울리는 것이면 그 감각으로 찍은 사진은 심금을 울리게 되고요. 표면적인 2차원의 색배열이지만 5차원적인 감흥을 만들어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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