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소녀
오늘 지리산에 비가 내리네요.
다른 곳에서도 비가 내리나요.
비가 내리면 생각나는 노래도 있고 생각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어떤 이는 동태찌개에 소주 한 잔이 그립기도 할 것이고
맨발로 검정 아스팔트 위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구요.
해물을 가득 넣은 파전에 막걸리 한 잔 생각나기도 합니다.
저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활동하던 모임이 있었답니다.
저는 고3이었고 그 아이는 고1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작은 키에 콜라에도 취하는 꽤 귀여운 여자아이였습니다.
그 애 아버지는 근동에서 유명한 술꾼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술을 먹고 구타를 일삼는 집 …
큰 딸이었답니다.
줄줄이 딸이 4명이었는데 아주머니께서 매일매일 구타에 힘들어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 아이와 함께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함께 길을 걷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오빠 내가 어떤 날을 가장 좋아하게..?
내가 어찌 알겠냐..웃음...
어떤 날이 좋은데..
오빤 난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이 너무 좋아..
그런 날은 그냥 그 비…
내가 다 맞고 걷고 싶어..
왜…
그냥 시원하잖아..
나 있잖아..
학교에서 수업 받다가도 비가 엄청 내리면 운동장으로 달려가고 싶어..
그냥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걷다 보면 속이 다 풀릴 것 같거든..
오빠! 이런 비가 내리면 가끔...
내 생각 해줄래……
그 애의 그 말 그때는 그냥 흘려 보냈는데..
세월이 가도 비가 오면 그때 그 거리와 그 아이 모습이 생각이 나네요.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초등학교 2층…
아마 그 아이가 창문으로 비 내리는 운동장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을
그 위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이는 지금 4년 전 결혼해서 3살쯤 된 딸아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술로 세상을 살던 그 애 아버지는 빛에 쪼들리다가 큰딸의 첫 아이가 태어나기 몇 일전 제초제를 먹고 자살했고요.
초상을 치루고 난 다음날 그 집 식구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고, 그 후로는 한번도 고향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지금 서울에도 비가 내리나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면 그 아이는 지금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 아이가 힘들었던 그 시절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닌 행복한 얼굴로 내리는 비를 보고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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