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눈앞에 보이고 섬진강에 함께하는 가을 산길에서
산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곳은 남해바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
가을이라는 단어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낙엽이 떨어진 산길을 혼자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깊은 명상에 빠지고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다.
아마 그것이 한 해의 마지막 절기를 남겨둔 가을이 주는 선물일 것이다.
백운산으로 떠나는 내 마음도 그랬다.
악양에서 백운산까지 40여분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섬진강을 바라보는 것도 다른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악양에서 섬진강은 맘만 먹으면 언제나 볼 수 있는 강이지만 백운산에서 바라볼 섬진강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달아올랐던 모양이다.
드디어 광양 시내를 빠져 나와 백운산 안내 판이 보이고 동동 마을을 지나 산동마을에 주차를 하고 산 길을 오르기 시작하다.
산동마을 등산로는 요즘은 많이 찾지 않는 등산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은 것도 꽤 어렵다.
겨우 물어서 입구를 찾아 산을 오른다.
백운산 가는 길 중턱에서..
산을 오르기 20여분 마을을 넘어 임도를 따라서 산으로 향한다.
넓은 임도를 따라 점점 높은 곳으로 향한다.
어느새 산은 중턱을 넘어 서고 뒤돌아 보니 멀리 광양제철소와 남해바다가 눈앞에 보인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만 그만한 산들이 정겹게 포옹하듯 겹쳐 있다.
그 지역의 풍토가 사람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우리민족의 서글서글한 눈매는 아마도 저 산들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
요즘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이웃하지 않고 도시의 회색빌딩에서 빌딩으로 옮겨 다니고 지하철에 버스에 흙을 가까이 하지 않으니 그들의 모습도 자연을 닮지 않고 인공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만 같다.
산에 사는 사람들이 산을 닮고
들판의 사는 사람들이 들판의 모습을 닮아가며
바다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닮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무엇을 닮았는지 궁금해진다.
아마 태어난 얼굴은 부모님을 닮았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면 분명 자신이 살고 있는 풍토와 풍경이 얼굴에 들어 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남은 단풍...
산 여기 저기 이미 단풍이 들고 또 이미 저버렸다.
아직 남은 단풍은 도드라져 더욱 고와 보이고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 참나무들은 또 그대로 고적한 멋이 있다.
오르기 좋았던 임도가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사람이 찾지 않은 길이라서 그런가..
참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여서 걷기도 힘이 든다.
함박눈이 펑펑 쌓인 눈길처럼 나뭇잎에 발이 빠져 산길을 헤쳐나가기 조차 힘이 든다.
하지만 이런 낙엽에 빠지는 길을 어디서 맛 볼 것인가.
푹 빠지는 길이 오히려 반갑다.
사그락 사그락 거리는 참나무 잎 길을 지나 40여분 올라가니 드디어 백운산 정상 능선이다.
멀리 천왕봉이 너무나 선명하다.
천왕봉 촛대봉 그리고 세석으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백운산 정상에 지척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백운산 정상이 지척에 있지만 발길을 돌려 억불봉으로 향한다.
멀리 백운산 정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가려고 한다면 못 갈 것은 없지만 굳지 꼭 정상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산행에 목적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늘 산행의 목적은 그저 행복하게 산과 가까워 지는 것이니까….
억불봉으로 향하는 길에서면 절로 노래가 나온다.
나지막한 능선 길을 기분 좋게 걸어본다.
발로 느껴지는 부드러움…
길길 마다 나타나는 나무들…
섬진강이 길을 따라 함께 친구가 되어주고
지리산은 산행 길의 넉넉함을 더해준다.
걷는 길 능선 길 여기 저기 진달래와 철쭉이 흔한 것을 보니 봄의 백운산의 경치가 눈에 선하다.
봄이 오면 여기 저기 초록으로 분홍으로 물들어갈 산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른 가지에서 초록이 툭 툭 터져 나올 것 같다.
억불봉 가는 길 억새밭
억불봉에 가까워지니 넓은 억새 밭이 나온다.
산 정상에 우거진 억새 밭은 멀리서 보면 푹신한 침대처럼 보여서 마치 커다란 새의 둥지처럼 보인다.
억색의 보드라움과 살가움..
억새처럼 모질다는 말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늦가을 억새의 모습은 모질기 보다는 보드랍고 따뜻했다.
억불봉을 코앞에 두고 하산을 하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백운산 장상을 앞에 두고 뒤돌아 억불봉으로 향하고 억불봉을 앞에 두고 또 다시 하산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나는 행복했는지 묻는다.
만약 이 대답에 행복했다고 한다면 오늘 하루를 참으로 산 것이다.
"신은 인간을 행복하게 살라고 만들었다"는 말처럼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뚜렷한 목표는 행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행복 인류의 행복 자연의 행복.. 이 모든 행복들이 섬진강 물결처럼 가득 하기를 ....
지리산 악양에서 파르티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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