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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인'이 뱉는 말 "난, 짐승 이오"
평화은어 2004-12-08 12:34:25 | 조회: 5330
http://pdf.segye.com/pdf/SGT/2004/12/07/SGT2004120710032.pdf
(신문을 직접 보시려면 위를 클릭해 보세요!)


[전원속의 작가들]지리산 문수골서 사는 이원규 시인

'길 위의 시인'이 뱉는 말 "난, 짐승 이오"

◇‘길을 지우며 길을 가는’ 시인 이원규. 지리산 문수골 집 앞 길 위에 서있다.



이원규(42) 시인은 지금 정확하게 규정하자면 ‘전원 속의 작가’가 아니라
‘길 위의 시인’이다.
그가 돌아갈 집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 문수골에 있지만, 그는 올 봄부터 내내 도보순례를 하는 중이다. 지리산 실상사 도법·수경 스님이 조직한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의 팀장을 맡아 지리산 주변과 제주도, 부산, 거제를 거쳐
진주를 지나 남해 쪽으로 나아가는 칠천리 길을 걸어왔다.
금수강산이 삼천리라니, 그는 벌써 한반도를 두 번이나 종주하고 다시 천리길을 더 걸어온 셈이다.
그가 진주 외곽의 길 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을 때
하루의 걷기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침묵 명상을 하고 있었다.
명상이 끝나자 그들은 생명 평화를 위한 서약문을 합창하듯 읽어나갔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어야 함을 압니다. 내 마음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가 둘이 아님은 세상이 곧 나의 반영인 까닭입니다. 평화는 모심과 살림이며, 섬김과 나눔의 다른 이름이요, 함께 어울림이며, 깊이 사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평화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넘어 모든 생명, 모든 존재 사이의 대립과 갈등, 억압과 차별을 씻어내고,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정하게 어울려 사는 길이며, 저마다 생명의 기운을 가득 채워 스스로를 아름답고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날의 숙식 탁발은 진주 여성민우회 회원들이 맡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다감하게 마당에 둘러앉아 사천에서 회원들이 직접 잡아온 조개를 구워놓고 일행은 정담을 나누었다.
이원규는 오랜 햇볕 속의 도보로 인해 얼굴은 검붉었고, 수염도 거칠었다.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조개구이 화덕을 둘러싼 둥그런 자리 한쪽을 내주었다.
하지만 순례단과 그리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모악산에 살다가 지난해 가을 지리산 자락 악양으로 이사온
박남준 시인(그 역시 이 순례단의 일원이다)과,
이원규가 지리산에 와서 만난 부인 신희지(지리산 생명평화결사 총무부장·36)씨와
더불어 지리산 문수골 시인의 집으로 밤길을 달렸다.

구례에 이르러 문수골로 들어가기 전에 지리산 식구들이 꼭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구례읍의 포장마차 ‘어부의 집’. 이 포장마차의 주인 박전기(43)씨가
서울에서 여관업을 하다 인연을 맺은 태국 노동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병에 걸려 죽어가는 그를 공장측 사람들이 여관 앞에 버려놓은 채 줄행랑을 놓았고,
박씨는 병원으로 그를 데려가 수술 보증을 섰다가
거액의 빚을 뒤집어쓴 채 고향으로 내려와 포장마차를 꾸려가며
최근에서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았다.
그 태국 노동자는 박씨가 애쓴 보람도 없이 귀국한 뒤 죽었다.
포장마차 벽에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를 만나러 왔던 한창훈 유용주 이정록 등
문인들이 어부의 집을 글들로 온통 도배해 놓았다.
나무 난로가 쌀쌀한 밤을 덥히는 가운데 이원규가 살아온 내력을 무심하게
툭툭 털어 놓았다.

경북 문경이 고향인 그는 아버지를 딱 한 번,
여섯 살 무렵 희미하게 본 적밖에 없다.
지주의 아들이었고 별로 용감하지도 못했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좌익에 연루됐다가 전쟁이 끝난 후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어쩌다 밤에 고향집으로 스며들어 만든 아이가 이원규였다.
그는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화냥년’이라고 욕하며 똥물을 퍼부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한 번 집에 들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려고 들렀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옆 동네에서 죽었고 그곳에서 화장을 해 가묘를 만들었다.
그제야 어머니는 화냥년이라는 멍에를 벗었다.

“그믐께마다/ 밤마실 나가더니/ 저 년,/ 애 밴 년// 무서리 이부자리에/ 초경의 단풍잎만 지더니// 차마 지아비도 밝힐 수 없는/ 저 년,/ 저 만삭의 보름달// 당산나무 아래/ 우우우 피가 도는/ 돌벅수 하나”(‘월하미인’ 전문)

지리산에 들어와 썼던 이 시편의 저변에 깃든 정서가 그의 성장기 내력을 듣고 나니 확연하게 이해된다.
1998년 그가 지리산에 내려오던 해 신동엽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됐을 때 썼던 소감도 이러한 정서와 무관치 않다.

“어린 기억 속 아버지의 부재는 더 많은 아버지를 낳았습니다. 어릴 적 한때는 광부였던 친구의 아버지를 저의 아버지로 삼았고 그때는 당연히 저의 꿈도 막장 선부였으며, 목수였던 친구 아버지를 저의 아버지로 삼았을 때는 또 목수를 꿈꾸었고, 트럭운전사를 아버지로 삼았을 때는 또 트럭 운전사가 저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다 겨우 철이 들 무렵부터는 책 속에서 수많은 아버지를 만났고, 그때부터 문학도 시도 저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원규는 어머니에게 기별도 없이 인근 백화산 만득사로 들어가
2년여 동안 행자 생활을 한다.
노스님은 콩밭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콩을 팔러 산 아래에 내려갔다 오더니
바깥 세상에 난리가 났다고 전했다. 광주항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들이 만득사로 들이닥쳐 그들을 잡아갔다.
신군부가 사찰에 숨어든 ‘불량청년’들을 잡아내기 위한 명분으로 벌였던 이른바 ‘10·27 법난’이었다.
어쨌든 군인들 덕분에 다시 어머니를 만났고,
검정고시를 거쳐 계명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처음으로 문예지를 접했고 시를 만났다.
행자 시절, 외로움과 그리움을 메모 수준으로 끼적거렸던 그는
새로운 문화적 충격 속에서 생산한 시들을 1984년 ‘월간문학’에 투고했고
‘유배지의 풀꽃’이 당선됐다.
다시 5년 후 ‘실천문학’에 ‘빨치산 아내의 편지’ 연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90년대 들어 7년 동안 그는 중앙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환멸에 화상을 입고 모든 인연을 팽개친 채 지리산으로 떠났다.
아내와 자식과 직장과 문단 친구들을 모두 버리고. 구체적인 계기는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사실 그의 바람 타는 운명은 그를 잡아둘 수 없었을 것이다.
지리산 빈집으로 들어가 3년 동안 울면서, 놀면서 살았다.
실상사 수경 스님을 만나 생명평화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지리산 외로움을 담아 시집을 펴냈고 산문집도 냈다.
새 아내도 이곳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 걷고 또 걷는 중이다.

시인의 집에서 아침을 맞았을 때,
지난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주변 풍경이 환하게 들어왔다.
눈높이에서 흘러가는 지리산 능선들과 발 아래 저수지와 집 주변의 무덤들이
겨울비 속에서 시인의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지난밤 숙취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서둘러 행장을 꾸렸다.
어젯밤 함께 왔던 아내가 죽을 담아와 내민 컵을 훌쩍 들이켜고
그는 다시 빗길로 나섰다.

지난밤 문수골로 올라오던 차 안에서 그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도시를 떠날 수 있었느냐고.
그의 답변 대신 그가 쓴 시 한편을 옮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부는/ 애시당초 모르는 사이였다”(‘사과나무의 이혼’에서).
그가 지난해 솔출판사에서 펴낸 시집 ‘옛 애인의 집’ 자서(自序) 한 대목을 다시 덧붙인다.
“지리산에 얼굴 묻고 생의 한철 잘 놀았다. ……돌아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간지옥이자 백척간두 진일보였다.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 나는 여전히 안면몰수, 후안무치의 산짐승이다.”

구례=글·사진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

2004.12.06 (월) 17:00

***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그이보다 먼저 일어나 죽을 끓이면서 그런 생각했습니다.
'내게 남편은 도반이구나.
이제 나도 내 사랑을 말할 수 있겠구나'
긁적긁적,
내년에는 무언가 그렇게 긁적여보려고 합니다.
올해 했던 지키지 못한 약속,
(일기를 써보겠다는...)
내년에도 아직은 이지만
긁적긁적......
2004-12-08 12: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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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8
  • 평화은어 2004-12-09 02:29:25

    글터님,난초향님,늘푸른유성님,사랑방마을님,
    파르티잔님,목사골님,강변연가님,
    언제한번 짠하고 뭉쳐야 할텐데요.
    자농식구들
    참 보고 싶네요.

    그리고
    훌쩍,
    실은 그런건 없지요.

    마치 아침에 일어나 짐을싸서 나오듯 그런건 없지요.
    이제 그만 떠나야한다는
    절박한 괴로움의 시간이 없고서
    어찌 떠나왔겠습니까.

    그 아픔의 시간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견뎌준 그 사람을 보면서
    세월의 새살을 더듬어 봅니다.
     

    • 강변연가 2004-12-09 00:35:25

      정독.......어떻게 그렇게 훌쩍 떠날 수가 있는건가요  

      • 목사골 2004-12-08 22:27:16

        참 오랫만에 피아산방님과 은어님을 글속에서 만나보네요.
        반갑기는 어디서나 마찬가지 입니다.가끔씩 구례를 지나면서
        그길을 다니지만 새로움을 알겠군요.
        어부의집도 가보고 싶어지네..
        건강 하셔야지여~~
         

        • 파르 티잔 2004-12-08 19:33:10

          지난 가을 어부의 집에서 기울이던 술잔이 생각나는군요.
          사람마다 이야기도 많고 사연도 많죠..
          이 세상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 사랑방 마을 2004-12-08 19:15:35

            평화은어님 간만에 뵙습니다,,
            추운데 감기는 안걸리 셨는지여~~

            글이 너무 좋내여,,,행복을 그리며~
             

            • 늘푸른유성 2004-12-08 16:13:58

              평화은어님 글을 읽다보면 딴 세상 사람들 이야기 같습니다. 시를 쓰시는 분들은 가만 보면 평범하신 분이 별로 없죠. 하다못해 생각이라도 다르게 하시더군요.  

              • 난초향 2004-12-08 15:13:02

                평화은어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시인님과 평화은어님 보고싶습니다.
                 

                • 글터 2004-12-08 13:44:30

                  순례에 나선 분들의
                  순한 발걸음이 그려집니다.

                  여행길 어느 길섶에서든
                  님들의 따스한 손 마주잡아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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