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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는 남자랑 사는 이야기-3] 결혼의 조건(1)
평화은어 2005-03-08 02:15:59 | 조회: 5397
백일 되던 해부터 서른일곱 해 인생의 반을
사람이 사는 동네는 서울이 제일인가보다 하고 살아온 내가
홀연히 지리산으로 옮겨와서 산다고 했을 때
걱정을 하던 후배가 있습니다.
이제 곧 결혼을 한다는데
갑자기 결혼이 무언가 하는 생각을 이밤에 하면서
한번 물어 보고 싶습니다.

한번 물어 볼게요.
어떤 남자랑 결혼하고 싶으세요?
어떤 여자랑 결혼하고 싶으세요?

저는 남자는 세가지중에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예전에는 생각했지요.
남자라면 모름지기 돈이 많아서 빵빵하게 쓰게 해주거나
명예가 있어서 누구 사모님 하면 껌뻑 숙여주거나
것도 아니면 아내를 죽어라고 사랑해주거나...

헌데요.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여자라면 미모가 출중해서 내 마누라다 하면 다른 놈들이 부러워하거나
음식 솜씨가 끝내줘서 모두들 와서 먹고 싶어 안달을 한다거나
새끼 교육을 잘 시켜 한 공부하게 하거나
상대도 뭐 이러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요즘처럼 다양한 사회에서
그게 뭐 남자여서 여자여서 그러냐 하고 따지면 더 할 말 없게 되지요.
여자도 능력 있고 돈 잘 벌고 남자도 요리 잘하고 애들 잘 키우는 세상이니까요.

제 얘기를 다시 해볼까요?
아무튼 저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지리산 골짜기 돈 없는 남자에게 급기야 시집을 오고 맙니다.

물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는 처음 만나 스무살 물올랐을 때,
세상 물정 모르고 결혼한 초년생이 아니라는 겁니다.

평생의 반을 꺾어 휘어진 나이에 산중에서 그이를 만났습니다.
두 번째이니 더 신중해야 한다, 라는 기준에서 보면 서로 완전히 꽝인 사이였답니다.

그이는 나이 마흔에 돈 한푼 없는 명색 시인이고
저는 서른 후반에 성질만 칼 같은 이혼녀였으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먼 사이였습니다.

그러면 인연이니 그리됐지, 하고 쉽게 말하겠지만
실은 인연이란 하늘에서 누군가 화살을 쏘아 맺어주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온전히, 서로가 자기 삶을 책임지려고 몸부림쳐야만 오는
실 같은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부단히 싸우고 나 참 원, 하는 소리를 수없이 해대며 기막혀 했던 시간을 지나서
이제 겨우 아귀가 맞아가는 것이 인연이고 부부라는 거,
한 십여년 애면글면 하며 사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얘기가 자꾸 옆으로 세는데요.
이리 인연이 맺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할 수 있는 게 혼인 아니던가요?
결혼이 어렵다고 하는 건 조건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거지 그것만 맞으면 쉽게 해치우잖아요.
허나 진정한 혼인은 참 드물다 싶습니다.
결혼의 조건은 앞서 떠든 것처럼
여럿일 수 있겠으나
인연을 맺어 해로 한다는 것은 한 가지,
부단히 싸우고 지극히 온전히 자기 삶을 책임지려고 해야 할 때
비로소 혼인을 했다 생각합니다.

이쯤하면 결혼의 조건이 무엇인지 머리 좋은 분들을 아시겠지요?
후배는 알까요?
결혼의 첫 번째 조건은 진정한 혼인을 원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이란 걸...


돈 없는 남자랑 사는 이야기 세번째 끝.

(제작년에 그런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는 일기를 써야겠다고
자농 사랑방에
그리고는 지난 일년 참 막막했습니다.
그때 숨결님도 옛날 일기 한토막을 꺼내 보여 주었지요.
그약속 이제 지키고 있습니다.
마구 거칠게...)
2005-03-08 02: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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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9
  • 평화은어 2005-03-10 05:05:24

    목사골님, 페미니스트들한테는 좀 혼날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남자란 모름지기 뻥 치면서도 자신감 있는게 여자들한테 먹히거든요.
    물론 살다보면
    '쳇 우스워' 하기도 하는게 부부이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깨에 힘주는 남편이 안스럽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힘 내세요!
    땅 한평 없고 통장에 돈 십만원 없는 제 남편도
    제게 큰 소리 다 치는데요 뭘...

    힘내라 힘!!

    목사골님, 어깨 팍 힘주고 소리 한번 뻐억 지르고
    아자! 아자!!!
     

    • 도적눔 2005-03-09 09:15:52

      처음엔 자기야! 조금 지나면 저기~~~~ 조금 더 지나면 야! 결혼후 우리집 호칭의 변천사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면 결혼 뭐 별거 있습니까? 너무 사랑만하면 심심하니까 가끔 싸우고 기왕에 싸울거면 대판 싸우고..기분 풀어지면 서로 보듬어 주고..우린 아직 싸움을 더해야하기에 조금더 살아볼랍니다.  

      • 마루 2005-03-09 07:54:35

        ㅎㅎㅎ 아.. 좋아라~
        평화은어님도 시인님과 늘~ 행복하세요~
        꼭이요~
         

        • 평화은어 2005-03-08 21:31:12

          마루님, 행복하세요.
          아니 행복해야 해요.
          꼭이요~
           

          • 평화은어 2005-03-08 21:30:02

            그래서 자신이 이러한 생활을 온전히 해 갈 수 있느냐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늘 물으며 사는 거지요.
            '절대 깰수 없어' 하면 일단 이어가다가
            죽을 때 '그래, 잘 버티며 살아 줬어'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이대로는 안돼, 이건 사는 게 아니야' 하면 다시 선택하고
            그러기도 하는 것이 결혼 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어떤 만남이든 하는 데 까지 하며 살겠다는 맘이 아니라면
            스스로에게만 충실하는 거지요.
            결혼 꼭 할 거 있나요? 뭐!
            그런데 전 지지고 볶아도 누군가 곁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실은 그게 제 영혼을 더 자유롭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 지리산숨결 2005-03-08 19:21:15

              결혼
              지금
              아무런 결론적인 얘기를 할수 없음.

              다만
              한번에 완성하고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느릿느릿 비벼나간다고 보면 ....

              처음의 느낌과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갈수 밖에 없는 것이 결혼
              채우려하지 말고 비벼맞추어나가기에 익숙해지다보면...
               

              • 마루 2005-03-08 09:12:44

                예전의 전 결혼의 조건으로 정확히 새겨두고 있었습니다.
                1.몸
                2.능력
                3.정신이였습니다.

                지금의 저는..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1.오래도록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인가?
                2.같이 삶으로써 그와 내가 엮어가는 삶이..
                더불어 풍요로울것인가?
                입니다.

                전..또한번의 결혼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번에 끝나기도 하는데..
                전 2번이나 할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보면 복도 많지요.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 목사골 2005-03-08 07:54:17

                  이제 몸은 쾌차 하신감요?
                  돈없는 남자 야그 나오면 웬지 기가 팍 죽네요.
                  불편없이 살려고 해도 부족한것도 많고
                  넉넉한것도 있긴 있네요.
                  땅은 넉넉하나 힘이 부족해서 밀리고 있읍니다.
                  요즘 능력도 떨어지니 마누라한테 많이 당하고 삽니다. ㅎㅎㅎ

                  멋진글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 노래하는별 2005-03-08 07:41:48

                    그렇군요 그렇네요
                    평화은어님 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년 일기를 올리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이후 쭈욱~
                    재미있고도 좋은 이야기들 차암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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