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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녀님의 죽음.
늘푸른유성 2005-05-04 13:36:16 | 조회: 5774


4월 17일 일요일 오후 3시 15분 모든 것이 멈추었다.


현기증이 나면서 모든 것이 아련해지는가 싶더니 도대체 설명할 수 없는


눈물로 모든 것이 흥건해지면서 나의 숨도 멎는 것 같았다.


한낮이 그렇게 주저 앉아서 소리도 나지 않는 호곡이 되어 나왔다.





4월 11일 월요일 땀부(Ntambu)에서 후배하나가 체기인지 말라리아 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힘들어 해서 그래도 도시인 이곳 무풀리라(Mufulira)로


왔는데 괜찮아지는 듯 하더니 수요일 급기야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바로 퀴닌 주사를 맞고 예상 했던 대로 다음날 아침에는


눈이 흐려서 잘 보지도 못하고 말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자꾸 잠에 빠져들기는 했지만 금요일 까지는 그래도 이야기도 곧잘 하고


정신도 맑았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중환자 실로 옮겨지고 이미 혼수 상태에 빠져 들었다.


저녁에는 피가 모자란다 해서 혈액형이 맞는 후배 하나가 오백 미리 리터를


주었는데 그것도 모자란다 해서 또 다른 후배 하나가 나섰지만 마음만 앞섰지


워낙 약한 사람이다 보니 안간힘을 다해도 겨우 삼백 오십 미리 리터를


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안된다 해서 처음에 피를 준 후배가 일단 환자부터 살리고 보자고


다시 오백 미리 리터를 주었다. 의사들은 한꺼번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본인이 우기고 나도 그 쪽으로 모험을 걸었다.


나의 것은 사경을 헤매는 후배에게 한 방울도 소용이 없는 혈액형이니 애가 타서


입이 바싹바싹 말라 들어갔고 혈액원에 혈액이 조금 있다고는 했지만 AIDS 감염


우려가 커서 도저히 용납이 되지를 않았다.


어쨌든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질거라고 하던 의사들의 말과는 달리


이미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는 조금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의사들은 일요일 아침 5시 경까지도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했다가


7시에는 그때까지의 반 수동식 산소 호흡기를 완전히 바꾸었으니


괜찮아질거라고 했다가 11시 정도에는 신장과 간이 아주 나빠졌다고 했다가


오후 2시 45 분에는 심장과 폐가 완전히 기능을 못한다고 기적이 일어 나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고 그리고 이십 분 만에 모니터로 보이던 모든


움직임이 긴 한 숨 처럼 주저 앉았다.





밤 새 뜬 눈으로 환자 상태를 지켜 보면서 불안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서른 다섯 나이에 죽음이란 너무나 엄청난 일이어서 그런 일은 일어


날것 같지가 않았었다. 그리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세상을 흥건히 적시며 나오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다.





착하고 지극히 헌신적이고 검은 대륙의 사람들을 위해 사는 일에 열정이


대단했는데 그 모든 것도 거짓이었는지 이 낯선 곳에 온지 8개월 만에


이렇게도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해 놓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훌쩍


떠나 버렸다.





하느님께서 때가 되어서 불러가신 것이거니 생각을 해도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기억되어 와서 이런 식의 헤어짐을 도저히 용납하지를


않아 아무리 삼켜도 눈물이 천지를 아득하게 한다.





수억 만리 멀고 깊은 땅 속으로 관을 내리고 한줌의 흙을 뿌린 것이 봉분이


되어 오르면서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앉는 고요 속에 쉴 수 있겠다 싶어


적어도 이별이 가능할 것 같았는데 산사람의 마음이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후배가 살던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함께 땅에 묻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동안 한마디도 되어 나오지 않던 말을 지금 이렇게 애써 꺼내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남은 되어져야 하는 일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또 일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털고 다시 일어서야지. 그게 안되면 속으로만 슬퍼하는 법이라도 배워야지.


그 후배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 생각해야지.


그리고 내내 함께 살아야지.


해도 해도 안되면 소리 내서 다시 한번 엉엉 목놓아 울어야지.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있는


카톨릭 교회 수녀 해거름
















2005-05-04 13: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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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새벽형 2005-05-06 00:40:33

    그 수녀님의 죽음 생명이되고 복음의 선교지가 될것 입니다  

    • 이장집 2005-05-05 12:26:28

      명복을 빕니다.  

      • 손탈 2005-05-04 14:59:02

        말라리아도 무섭지만, 댕기열은 그 치사율이 더 높습니다. 모두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병입니다.
        저도 말라리아에 한번 걸려봐서 압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미얀마에 있으면서 정말 어려운 가운데서도 현지인들을 위해 헌신적을 봉사하는 분들을 만났었습니다.
        그분들의 숨은 봉사는 가난과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현지 사람들의 닫혀 있는 마음을 열게 했고, 서로 합심하여 마을 전체가 풍요로워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아프리카에는 풍토병, 말라리아 등 많은 질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시다 돌아가신 수녀님의 명복을 빕니다.
         

        • 늘푸른유성 2005-05-04 13:45:55

          이 글은 그리움의 행선지라는 까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이 분이 수녀인지는 저도 이 글을 읽는날 알았는데요. 누군가 아프다는 글을 올리고 며칠뒤에 이 글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이지만 이 글을 읽고 며칠동안 틈만 나면 생각이 나서 글을 옮겨봤습니다.저는 절에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분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세상을 뜬 걸로 압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이 수녀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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