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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길게 봐야죠..
지리산숨결 2005-06-17 00:11:31 | 조회: 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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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 96세의 현역 수필가 皮千得(피천득)










70년 전 좋아했던 여인 만나러 上海(상해)에 가다






















『내가 그곳에서 살 때 좋아했던 메리 루란 여성을 찾고 싶었는데 내가 아는 주소지엔 살지 않더군요. 외국에라도 간 건지… 대개 여자들이 남자보다 오래 사니까 살아 있으리라 생각했거든』











兪仁卿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편집장

















수필가 皮千得(피천득) 선생은 올해 96세다. 남들은 시력·청력·관절 등 각 신체기관이 약해지고 정신도 흐려져 이승·저승이 별 차이가 없는 삶을 사는 연세에 그는 일곱 살 개구장이 같은 미소로 화창한 봄을 구가하고 있다.



근황이 궁금해 知人(지인)에게 물어보니 『중국 상해로 여행을 떠나셨는데 돌아오시면 약속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시차는 없는 곳이지만 해외 나들이를 다녀오면 피로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더니 곧바로 전화가 왔다. 아주 컨디션이 좋으시니 다음날 만나라고 해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로 찾아갔다.



『상해는 知人이 초청해서 갔다왔는데 목적 달성은 못 했어요. 70년 전에 그곳에서 살 때 내가 좋아했던 메리 루란 여성을 찾고 싶었는데 내가 아는 주소지엔 살지 않더군요. 외국에라도 간 건지… 대개 여자들이 남자보다 오래 사니까 살아 있으리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 「남자」가 이미 아흔여섯이니 메리란 여성 역시 아흔 살은 넘었을 텐데 선생은 전혀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메리 루란 이름도 밝히지 않으려다 계속 물어서야 스펠링을 알려줬다. 하지만 선생의 마지막 애인은 이미 고인이 된 잉그리드 버그만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을 사모한 선생은 데뷔 무렵의 청초한 사진과 전성기의 사진 두 장을 책장 위에 세워 두었다. 그 옆에는 바이런, 예이츠, 섈리 등 영문학자인 선생이 존경하는 문인들의 사진이 작은 액자에 담겨 함께 서있다.



『대개 여배우들을 사귀면 잠깐 좋아하다 말잖아요. 그런데 잉그리드 버그만은 나랑 사귀어서 호강하는 거예요. 저렇게 수십 년을 위대한 문인들과 함께 지내니 말이에요』



여배우 사진을 책장에 둔 노학자도 드물지만 인형놀이를 하는 노인은 더욱 드물 게다. 그는 딸 서영씨가 갖고 놀던 인형 난영이를 매일 머리 빗기고 옷도 갈아입혀 준다. 이젠 힘이 들어 목욕은 살림도우미 아줌마가 해준단다. 선물받은 곰인형 세 마리도 선생의 침실에서 함께 산다. 80쯤 되셔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노망의 증세로 봐야 하지만 선생은 딸 서영씨가 유학을 떠난 35년 전부터 딸을 그리며 인형놀이를 했으니 지순한 사랑이다.





그의 일상은 규칙적이다. 식사는 항상 야채 중심으로 小食(소식)하고 매일 산책을 한다. 브람스 등 고전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이 하도 오래되어 보여 눈여겨 살폈더니 『내가 어릴 때 헌책방에서 산 거니까 적어도 100년은 넘은 책이야』라며 방긋 웃었다. 제자들이 부르면 나들이를 한다. 아흔이 넘은 선생을 찾는 이유는 그가 스승이란 권위나 어르신다운 엄숙함을 보이지 않고 항상 유머러스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시골 할머니가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되었다니까, `「아유, 얼마나 똑똑하면 열여섯에 교황이 됐을까」라고 하더래요』



선생을 재미있게 해드리려고 우스갯소리를 하자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글쎄, 이번에 보니 교황이 대단한 존재고 엄청난 권력이더군요. 선출 과정도 그렇고. 그런데 예수님은 직업이 목수였고, 친구래야 고기잡는 어부인 베드로, 또 애인도 창녀라는 막달라 마리아인데 얼마나 온몸을 다 받쳐 우리를 구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를 떠받드는 종교인들은 구교건 신교건 너무 권위적이고 화려한 것 같아』



「여자」 이야기도 했다. 아직도 예쁜 여자를 보면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진단다. 어느 신문엔가 작가 최인호씨와 선생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어 「라이벌」이란 표현이 나왔기에 진짜냐고 물었다.



『아냐. 난 그냥 바라 보기만 하는 거구, 최인호씨는 만지기도 하는 거구』



아집과 노욕에 가득차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자꾸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노인들에게 익숙한 우리들에게 피천득 선생은 경이로운 존재다.



철제 프레임의 간이형 침대, 이웃집에 못박는 소리를 들려주는 게 미안해 대충 걸어둔 액자, 제자들에게 다 나눠줘서 몇 권 안 되는 책들. 그리고 5년 동안 치매로 고생하지만 도통한 듯 조용하게 누워 있는 아흔 살 아내와 함께 사는 그의 검박한 아파트는 그 어떤 호화빌라보다 더 기품 있고 평화롭게 보였다. ■




2005-06-17 00: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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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6
  • 새벽형 2005-06-19 22:49:30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필의 주인공 피천득선생님 모습
    새로운 소망이 솟아 남니다
     

    • 정도령복숭아 2005-06-17 23:19:08

      아버님뵙고 오시니 좋으시겠네요
      돌아가신 제부친도 살아계시면 회장님과 동갑내기죠..
      각박한 세사지만 그래도 따스함을 느낄수 있음은
      아름다움을 몸소 실천하시는 님들이 계시기에..
      숨결님이 부럽네요
       

      • 동천 2005-06-17 17:25:16

        우리들의 좋은 스승님인신 피천득선생을 다시봅니다. 저도 그분의 글을 좋아합니다.....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05-06-17 08:41:16

          숨결님의 마음이 ...
          숨결님의 머릿속에...

          73세 된 아버님...
           

          • 지리산숨결 2005-06-17 00:19:49

            제가 96세가 되려면
            아직 54년이 남았군요. ㅎㅎㅎㅎ
             

            • 지리산숨결 2005-06-17 00:18:27

              몇일전 지리산을 오르면서
              불현듯 전에 했던 생각이 다시 났습니다.
              '선의지이던 악의지이던 그 목표점을 빨리 이루려는 사람들 때문에
              지구가 병들어 간다구요'
              가만히 보면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제를 양산하는건 과속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자연의 품은 선이던 악이던 순응할 기회만 허락한다면
              별문제될것이 없는거죠.

              73세가 된 아버님을 뵙고 괴산에서 내려왔네요.
              그러다가 96세의 수필가 피천득 선생님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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