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과 걷다] “행복한가 아니다, 그래서 씨를 뿌리지"
6월의 남도는 푸르렀다. 아스라한 수평선을 향해 달리던 산맥이 한숨을 돌리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곳에 푸른 들녘이 누워 있었다.
산과 들 모두 짙은 초록색 천지였다. 봄바람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생명에 싹을 틔웠고, 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강렬한 몸짓은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도시의 일상에 빠져 있는 사이 자연은 생명의 수레바퀴를 한 바퀴 돌려놓았다.
그 푸른 들녘을 밀짚모자를 눌러쓴 도법스님과 그와 함께 길을 가는 7명의 도반들이 걷고 있었다. 지난해 3월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된 생명평화 탁발 행진. 계절을 한 바퀴 휘돌아 1년여가 지났지만 생명을 향한 존중과 평화를 향한 행진은 15개월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1년여 동안 그들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명평화의 염원을 뿌렸을까.
지난 17일 도법스님은 ‘한국농민운동의 발상지’ 전남 함평을 걷고 있었다. 군유산(群遊山)이 뻗쳐 내려와 늙은 스님산(老僧山)을 이루고, 그곳에 피어난 물연꽃(水蓮峰) 마을.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손불(孫佛)의 옥토 위를 그들은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노스님과 수련, 부처. 모두가 자비와 지혜의 불을 인류에게 시현하고 떠난 부처와의 인연을 말하는 듯 6월의 함평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 속에는 생명을 이어가려는 몸짓이 분주했다. 함평은 무안과 함께 우리나라 양파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산지. 논·밭 할 것 없이 모두 양파 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부지깽이도 나댄다는 수확의 계절이 이곳에는 벌써 와 있었다. 대부분 2모작을 하는 이곳은 또 지금이 한창 모내기철이다. 다른 지방은 이미 모내기를 끝내고 한숨을 돌리는 시간이지만 이곳은 양파걷이와 모내기로 바빴다.
“아침에 낸 모가 벌써 뿌리를 내렸네. 생명의 힘은 역시 대단하구먼.” 벌써 뿌리를 내려 잘 떨어지지 않는 모판을 들썩이며 스님이 말했다.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하나의 과정이죠.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 역시 생명평화의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쌀이, 양파가, 그리고 음식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윤회작용을 말함이 아닐까. 오늘 울력의 의미를 스님 나름대로 한 정리인 셈이다.
그러면서 스님은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말머리를 돌렸다. 일부 찬성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스님. “결국 그 연구 자체도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현대과학 연구의 산물이 인간의 삶에 유익하다고 해서 모두 괜찮다는 인식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배아줄기 연구도 결국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근거해서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현대과학이 작용하는 것이 인간 삶의 건강성을 해결하는 원초적인 해답이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스님은 “과연 그럼 불치병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들의 삶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육체적 불구보다는 인간적인 소외, 모멸감 등이 그들을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한다.
스님은 “불치병보다 불신, 갈등, 대립, 힘과 경쟁, 승부, 독점, 지배라는 것들로 황폐해지는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며 “이는 결코 현대과학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교수의 업적을 높이 사지만 마치 그것으로 인간의 고통이 사라질 것처럼 착각하는 분위기도 문제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것보다 더 가치있고 원초적인 일이 남아있고, 그것에는 그리 많은 연구비도, 시간도 들지 않는다면서, “그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모내기에 이어 양파농장을 찾아 바쁜 수확일을 거들었다. 허리 한번 펴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스님은 내내 양파를 망태기에 담고 비닐 조각들을 걷어냈다.
1년여의 생명평화 탁발이 지금 어떤 울림으로 번져가고 있을까. 스님은 “단기간에 성과를 바랐다면 나서지도 않았다”며 “물론 힘이 있으면 효과가 빨리 나타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장기간 해야할 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씨를 뿌리는 걸음이, 좀더 나아가 그 씨앗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님은 “강의 한번 하고 행사 한번 한다고 이것은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결국 걸음걸음을 통해 다져진 마음들이 거대한 물줄기로, 큰 울림으로 자라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 가능하다”며 “그 움직임들이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뜸 스님은 말했다. “우리를 한번 돌아봅시다. 경제논리로 부자가 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려온 것이 지난 20세기의 삶이었는데 과거에 비해 엄청난 물질적 풍요로움을 쟁취(?)했지만 과연 행복한가?”. 스님의 대답은 명쾌했다.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면 물질로서 인류의 행복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과거를 통해 얻어진 결론이다. 30배 불어난 물질로 30배 행복해졌는가. 아니라면 앞으로 100배 물질이 불어나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왜 그 길로 못 가서 안달인가. 아니라는 답이 나와있는데도 왜 가려하는가. 어리석음이다. 그 어리석음을 깨치는 것이 이 순례가 가는 길이며 자신의 걸음걸음 역시 이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저녁공양을 들면서도 화두를 던졌다. “음식은 곧 생명입니다. 음식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으면서 그 음식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생명경시’라는 천박한 우리네 삶을 여실히 볼 수 있다”며 “자기 생명을 다루듯 음식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이 탁발순례의 목적은 이런 생명경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 나아가 인간의 지난 삶에 대한 성찰, 반성,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도법스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생명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깨우치기 위해 부처가 걸었던 고행의 길을 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스님의 물음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함평을 떠나오면서 내내 머리에 맴돌았던 말이다.
〈함평|배병문기자〉
최종 편집: 2005년 06월 24일 19: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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