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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지금 나의 고향에선, 이런 일이...
강물처럼 2005-08-03 09:55:54 | 조회: 5318
지금 고향에선...


세벽엔 비가 참 많이 내렸습니다. 비가 주욱 내려, 한결 더위가 누그러졌습니다. 습기가 많아 후덥지근하긴 합니다만, 여름인걸 참아야죠.
그런데 참을 수 없는 짜증,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적 행태들로 부글거리는 고통을 어쩔 수 없어 참으로 짜증스럽습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지금 “개막이 체험 이벤트가 한창이랍니다.
개막이가 뭔가하면, 갯벌에 조수의 간만의 차를 이용해서 고기를 잡는 방법인데, 사리때 바닷물이 들면(썰물) 전 바다를 그물로 둘러 쳐서 막습니다. 그러면 물따라 올라온 고기들이, 물따라 다시 바다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그물에 걸려 잡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규모가 전바다적으로 커서 둘러친 그물의 길이만도 거의 10km에 이르고, 어족의 크기나 종류에 무차별 적용되며, 더구나 행사로 수천명이 모여 고기를 잡느라 갯벌을 밟아 짖이겨 바다와 자원을 황폐화시키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렷을 때 경험한 이 행사는 참 재밋었습니다. 특히 굵은 숭어가 물보다 많은 곳에서 꼼짝없이 잡혀서 우리는 신이 났으며, 팔뚝보다 더 큰 숭어를 수십 마리씩 잡아 가마솥에 가득 넣어 끓여먹는 맛은, 지금도 잊지 않고 간직한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내 고향 친구 이청준도 그때 경험을 아름다운 소설로 쓰기도 했지요.
그때는 고기를 잡는 어부 10여명에 불청객으로 참여한 동네사람들이 기껏 몇 십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홍보등으로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여, 몇 천 명씩
모인 행사로 한 달새 몇 차례씩 시행하고 있으니, 그 피해는
멀지 않아 자원고갈로 씨를 말릴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고향에선 발전을 위한 관광개발이라며, 지금 기를 쓰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년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며 신이 나서 들떠있는 내 고향을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황당할 뿐,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참다못해 지금 막 고향신문에 원고를 보냈습니다.조심스럽게, 그리고 여기에 옮겨봅니다.



자지포는 통곡한다.
내 동심의 속살이 짖밟힘을 보면서....

개발의 소용돌이는 드디어 깊숙이 꼭꼭 숨어있는 내 고향에까지 찿아 들었다.
무엇하나 내놓을 것 없는 너무 짜잔하고 볼잘 것 없는 주제라 겨우 작은 초등학교 하나 있음도 그렇게 자랑스럽더니, 마저도 폐교 딱지를 달고 덩그러니 건물만 서있는 꼴로 더욱 외로워진, 오지중의 오지 재너머 동네 내 어린시절의 신리마을이, 지금 외지인들 차량의 물결로 꽉메운 인파에 넘쳐 몸살이란다. 관광개발을 염두에 둔 특별행사로 “개막이 체험 행사”가 개설되면서 벌어진 이변인 것이다.

군에서 주최하고 마을에서 주관하여 시작한 행사로 벌써 몇 년째 진행되고 있어서, 금년에도 첫 모임이 7월에 있어 3차례의 일정들이 장흥신문에 크게 실려있다. 이 현실앞에 지금 나는 박수를 보내며 동참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설득하며 저지라도 해야 할련지, 심히 마음이 착잡하다 못해 애통한다.

교통도 불편한 오지에 의지할 것이란 자연뿐, 자원도 물산도 무엇 하나 기댈 것 없는 참으로 비참한 고장이,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며 어렵게 실행된 최초의 행사임을 생각하면, 차라리 대견함으로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아니 바쁜 일상도 젖혀놓고 달려가 이 행사에 동참하고도 싶다.

어린시절을 함께한 재너머동네 내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인 사방이 꽉막힌 곳에 손바닥만한 들판이 있고, 그 너머에 자지포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자지포의 멀리 잔잔한 푸른 바다엔 아름다운 섬들이 꿈을 가득 실은 풍선처럼 떠있고, 가끔은 기선과 돛배도 지나 갔었다. 봄이면 로맨스를 즐기며 해초를 뜯었던 섬이 있고, 진질도 케고 볼락 낚시에 해수욕도 즐겼던 바다엔, 가을이면 망둥어 낙시요 겨울엔 눈보라에도 아랑곳 없이 언 손을 호호 불며 김채취를 나섰던, 사계절이 바다와 더불어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내 삶의 터전이 자지포였던 것이다. 생각하면 그때 그곳에서의 추억과 애환이 지금도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다.

특히나 우리의 개막이 체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많은 사연과 낭만을 담고 있다. 개막이가 있는 날이면 우리는 동도 트기전 밤잠을 설치며 도구를 준비하여 자지포의 개맥이판에 나섰다. 숭어를 훔치고 도망치며 쫒기고 빼앗기는 짜릿한 스릴을 맛보며, 배꼽까지 찰랑한 넓은 바다강에 물보다 많은 팔뚝같은 숭어와 실랑이했던 경험은, 지금도 나의 전무후무 최상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개막이 행사가 이벤트로 되살아 우리곁에 다시 찿아왔으니 반갑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러나 상처로 몸살을 앓는 환경 파괴를 생각하고 매말라가는 자연자원의 고갈을 고려하면, 더구나 생계를 위한 경제적 자원이 거의 없는 고장임을 감안하면, 삶과 직결된 너무도 중대한 일이기에 결코 재미와 행사로만 받아드릴 수 없어 더욱 애통한 마음이다. 매일 달걀을 낳고 있는 암탉을 잡아 배를 갈라놓고 망연해 있는 촌노를 연상도 한다. 목돈이 필료해 배를 가르면 더 많은 달걀을 한꺼번에 얻으리란 생각이, 어찌 지나친 욕심이요 어리석음이라며 질책만 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목돈은 필요하고 방법은 없어 저지른 순박한 단순의 배려였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너무도 내세울 것이 없어 생각해 낸 “개막이 체험 행사”가 모여든 인파차파로 천지개벽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고, 그래서 고향은 지금 기대로 들떠 부풀어 있다. 전국이 개발이란 이름아래 온통 상처투성이지만, 보잘 것 없는 내고장은 남겨진 땅으로 아직도 건재하다. 미래를 생각하면 나는 이처럼 미개발로 남겨진 땅이 훨씬 더 희망적이요 기대를 갖게 한다. 모두가 파헤쳐 개발돼면 남겨놓은 땅은 점점 볼 수도 가꿀 수도 없는 귀한 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없어진 감태와 매생이가 지금 고향에서 생산되면서 얼마나 인기품으로 돈이 되는가를 보라. 지금 우리 근해의 어족은 날로 고갈되고 있다. 특히 자지포의 숭어는 그 맛이 무비의 일품이다. 그런데 전국의 떼거리들에 짖밟혀 씨를 말리는 행사가 진행되면서, 못된 기름때와 사나운 인심만 남기고 떠나는 고약한 그들의 뒷바라지나 하면서 얻는 돈은 그 얼마며, 이같은 희생을 무릅쓰고 일년에 두세번의 행사로 과연 충분한 보상과 개발을 기대해도 좋을 일인가!.

우리가 자연을 애끼고 사랑하며 좀더 자지포를 애착으로 아끼면, 반드시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의 큰 보답이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자지포의 넓은 갯벌은 우리의 밝은 희망이다. 결코 축복은 거저 오지 않는다. 목돈이 필요하여 성급하게 닭의 목을 틀어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엔 한숨과 절망이 있을 뿐, 단순하고 순박한 마음이라도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리도 구차하게 남에게 의지하며 얽메여 살았던가. 지금까지 우리는 그 무엇에 의지함 없이 우리만의 힘으로 잘 참고 지내왔다. 우리를 위해 겉살속살 다 내어준 자지포가 지금, 아수라의 개막이 행사로 아파하며 슬퍼 통곡하고 있다. 바라오니 누애는 뽕을 먹고 살아야 한다. 외지인을 위한 재밋는 놀이의 개막이 행사는 우리의 중요한 자원을 고갈시키는 일로 결코 막아야 할 우리의 밥줄이다. 내 고향이여, 좀더 참고 기다리자.

개맥이 행사가 아닌 환경을 보호하여 숭어와 같은 자원을 꼭꼭 덮어두고 아끼고 사랑하면, 자지포는 속살깊이 황금알을 오롯히 가꿔 우리에게 아낌없이 모두 내놓으리라 믿어도 좋다. 노오란 기름이 둥둥 뜨고 고소한 맛의 숭어매운탕을 두고두고 즐겨먹는 그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오늘을 참자, 그리고 기다리자. (05 8. 여강)
2005-08-03 09: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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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오렌지제주 2005-08-04 06:37:05

    지켜 보는 마음이 착잡하군요.
    개발이란 이름 앞에 무너지는 현실이.....
    20년 전보다 30배는 더 잘살고 있다고하는데 그때보다 지금 행복하느냐고 하시는 도법스님의 말씀이 들리는것 같습니다.
     

    • 정도령복숭아 2005-08-03 23:45:23

      이런일들
      흐르는 강물에
      모조리 흘려보내면 어떨런지요..
       

      • 산야로 2005-08-03 21:27:38

        돈이 된다면 뭐든 팔아 먹여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세상 어찌보면
        너무나 돈들만 밝히고 사는세상 너무나 삭막 하기만 합니다
        각 지역마다 행사다 축제다 벌이는걸 보면 뭘 하자는건지 궁금해요
        조금은 자연 사랑하고 지키며 살아가면 될텐데..
        우리 좋은님들은 조금은 마음 부자로 여유 가지고 살아가봅시다
         

        • 노래하는별 2005-08-03 20:17:23

          개발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자연이군요
          조금만 더 생각하면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알찬 행사도 있을건데
          작은 고기까지 마구잡는 행사를 축제처럼 벌이는것은 마음이 아프네요
          조금만 더 깊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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