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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마을>백칠십칠호 : 할머니의 마을
정풀 2005-08-06 15:39:15 | 조회: 4607
<방목마을 초입, 우리집 앞. 할머니가 '뭐 안가져오시나' 두리번 거리는 정풀홀氏.>

잡지<마을>백칠십칠호 : 할머니의 마을
이천오년팔월육일흙날, 오래된미래마을, 정풀홀氏


마을은 할머니들로 충만합니다. 얼핏 비슷한 모습으로 길마다 넘실댑니다. 희소한 할아버지들의 수효와 부재감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흥청거립니다. 사람으로서, 보고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저절로 고개숙여 인사드리게 됩니다. 어른스럽습니다.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다르게 생겼지만, 하나같이 선량합니다. 자세와 태도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몸은 늙고 옷은 낡았지만 품격이 우러납니다. 더운 여름날 천형같은 들일로 몸은 매일 기진맥진할터이지만, 표정만은 한결같이 고단해보지 않습니다. 고단한 척 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굳어져 복스러운 관상이 되었습니다.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선량한 이 나라 백성의 표본입니다. 표본은 마을 사람의 대부분을 이룹니다.




할머니들이 우리를 먹여살리는 셈입니다. 틈나는대로 아침마다 고추며, 호박이며, 감자며, 토마토 따위를 담벼락에 소복하게 올려놓고 가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것도 한분이 아니고, 두어분쯤 되는 듯합니다. 그중 빈도가 잦은 할머니는 먹거리를 두고가는 습관을 몇 번 겪어보니 누구인줄 눈치챘습니디. 그렇게 얻어먹기만 하려니 손이 미안해져 친구는 헌 옷가지라도 몇벌 챙겨주려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나보다 가난한 사람한테는 아무 것도 안 받아. 나는 충분히 많이 가졌어.” 할머니가 오늘날 그토록 꼬부라진 노파가 되도록, 세상을 살아온 원칙이자, 세상사람들을 대하는 입장임을 바로 알겠습니다. 할머니야말로 탐욕으로 늘 허기진 이 세상의 대학(큰 학교)이자, 지혜와 도덕이 턱없이 모자란 사람들의 선생(먼저 나서 깨달은 웃어른)입니다.




할머니는 볼 때마다 한마디 당부를 늘 잊지 않습니다. “잘 살아. 잘 살아야 해.” 할머니의 신신당부때문에 우리는 이렇게‘잘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오늘 아침에는 웃음까지 선물하고 갔습니다. 친구가‘호박이 덩굴만 뻗지 열리지 않는다’고 했더니, 경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땅을 작대기로 세 번쯤 두드리면서 이렇게 호박을 위협하면 주렁주렁 열린다고 했습니다.




“이놈의 호박아. 우리 반찬거리 없다. 어서 열려라.”친구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신성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호박은 기어이 열리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게 합리적인데다가, 간절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주문을 듣고도 만일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한 호박이 아니라 호박의 탈을 쓴 금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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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6 15: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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