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부모님 전상서" 올립니다
젊은 아낙네 2005-08-09 21:28:10 | 조회: 6108
이번 전국 주부 글잔치에 입선한 부족한 글을 올립니다.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오늘에야 고쳤습니다.
아참.. 그리고
지리산 숨결님 .. 8월31일날 젊은 농부와 후배들 하동에 갑니다.
내일 전화 다시 한번 드리겠습니다.
조금 긴데... 부끄러운 글입니다



부모님 전상서
하수진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잡고 3월의 신부가 된 큰딸이 이젠 제법 농촌의 넉넉함을 닮은 아낙이 되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이름보다 채소마을 젊은 아낙네라는 명칭으로 더욱 알려져 버린 저의 모습이 가끔씩 부끄러워집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탓인지 몹시 지쳐있었는데 어제는 시아버님께서 가까운 완주로 새우 잡이를 가자고 하셔서 가족들이 오랜만에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답니다. 늦은 시간 찾아간 그곳에는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 붉은 노을이 여명을 드리우더니만 금새 어둠이 내리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자리를 잡고 개구리들이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하늘을 지붕으로 삼아 별을 이불로 덮고 개구리와 흐르는 물소리를 자장가로 삼아 누워있자니 아련한 꿈속에서처럼 부모님 계시는 친정 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부모님을 따라 전학을 갔던 그곳은 제법 큰 마을에 마을 공동 우물이 있고 키 큰 플라타너스가 당산 나무로 자리를 잡고 있어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고는 했었지요. 몇 되지 않은 학생들이 주말이면 모여 깡통차기 놀이며 자치기 놀이를 하곤 하던 기억들이 참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땐 몹시도 정정하시던 서동할아버지께서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서글퍼지기까지 하더군요.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4차선 도로가 들어서면서 수많은 다랑이 논들이 경지정리가 되고 이젠 하루에도 버스가 10번도 넘게 들어오는 마을이 되었는데 왜 자꾸 10년도 훨씬 넘어버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어찌된 마음일까요!

농부라는 직업을 가지신 부모님이 부끄러웠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제가 농부가 된 것은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가르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털털거리던 경운기 위에 계절마다 수확된 농산물들을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올 땐 기쁜 마음에 참으로 부자가 된 듯 했었고 가을이면 도로 가득 널린 벼를 발로 저으면서 특등을 맡기를 기도하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벼 수매가 끝나면 아버님은 선도자금이나 영농자금을 갚고 돈이 모자라면 1년 동안 애지중지 키우시던 송아지 한 마리 팔아 농협에 빚을 청산하고 오실 때마다 얼큰하게 술 한잔 걸치시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지요.
오늘 차 서방과 저도 농협에 비닐대금과 땅 구입자금 이자 500만원 정도를 갚고 돌아오는데 어느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이"1년 농사 죽게 지어 농협에다가 돈 다 바친다"고 하시며 혀를 차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기도 나아지고 총알피해 피난길 전전하던 6.25도 넘기고 동아줄 같이 질긴 목숨 연명하며 보릿고개마저 겪고 살아왔는데 왜 자꾸 옛날이 살기 좋았다고 말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터전을 일구고 있는 이곳도 좋지만 부모님 살고 계시는 그 골짜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직도 골짜기 논 옆 돌멩이 밑에 살던 가재와 다슬기들 논에서 바라보던 정겨운 풍경들이 남아 있는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제는 힘에 부치신다며 골짜기 논을 묵히고 감나무를 심으셨다고요. 비포장 길을 걸으며 국화를 따먹고 진달래 지천으로 나풀대는 그 곳에서 다시 제2의 농부로 거듭나게 될 그 날을 꿈꾸며 부모님의 사위와 딸 수진이는 오늘도 열심히 하우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답니다.

사방이 개발의 몸부림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신생아 수는 늘지 않는다는데 어디에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산이며 논밭을 몽땅 사들여 아파트만 지어대고 보이는 곳마다 고속도로며 포장도로를 짓느라 야단입니다. 농장이 있는 이곳도 일년에 한 두 차례 땅값이 뛰었다 올랐다합니다. 하지만 이 터전을 한탕주위와 황금 만능주위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우위이고 돈만이 살길이라고 하지만 농부인 저에게 땅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할머님께서 제 손을 꼭 잡으시고 낳아주신 은혜보다 길러주신 은혜가 더 크니 모든 것 다 가슴에 묻고 부모님께 잘하라고 하시던 할머님의 말씀을 못난 자식이 결혼을 하고서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열 달동안 배에 담아 저를 세상에 내놓으시지는 않았지만 한참 사춘기에 방황하던 철부지를 매로도 다스리시고 어르시기도 하던 지난날들이 한없이 후회됩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시던 부모님을 뒤로 한 채 제 멋대로 냈던 고등학교 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시던 아버지 모습. 행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는 않는지 그 걱정을 엄함으로 대신하셨던 회초리의 쓰라림까지도 가슴에 새겨있습니다.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한번도 오시지 않으셨던 부모님.. 농대로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머리를 싸 메고 누우셨던 어머니. 한동안은 친구들 모임에 나가지도 못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고백하지만 대학 졸업식 때 아버님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과 낡아빠진 가죽점퍼가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연세에 비해 늙어 보이시는 외모와 굵은 손마디와 아버님 이마에 세월의 흐름만큼 굴곡진 주름살이 창피하여 아버님이 오시지 않기를 바래기도 했었습니다. 대학 강당 조그마한 공간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졸업생 대표로 송사를 낭독할 때 몹시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가운데도 저 멀리 아버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서 울컥 눈물이 치밀어 그 먹먹함을 이겨내느라 몹시 힘들기도 했습니다. 꽃다발 한아름 안겨 집으로 돌아가시던 아버님..
기분이 좋으셔서 식사할 때 한없이 눈물 흘리셨다는 작은 숙부님의 말을 전해듣고 그 날 밤 이 못난 딸 밤을 지새우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부모님이 한번도 찾아주지 않았던 입학식이며 졸업식날 조금은 달랐던 부모 자식간의 인연이었기에 그 인연이 부담될까봐 나오지 못하셨던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시골집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 마을 어르신들 대학 공부 시켰더니 농사나 짖겠다고 들어왔느냐며 한 말씀씩 하실 때마다 어머님 행여 제가 볼까봐 부엌에서 몰래 흘리시던 눈물을 보고 안되겠구나 싶었지요. 내가 좋아하는 농사일지라도 부모님 힘드시는 것을 볼 수는 없어 신문사며 식당, 화원, 재활원등으로 떠돌이처럼 전전긍긍 할 때도" 부모 잘못 만난 탓이라며" 되려 탓을 돌리시던 부모님의 마음을 왜 몰랐을까요.

오랜 방황의 끝으로 부모님의 하나뿐인 사위인 남편을 만나 결혼 승낙을 받던 날. 부모님의 마음에 또 한번 꽂힌 비수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상견례 날 어머님 두 손에 들려오던 느타리버섯 상자에, 딸이 좋다고 하면 다 좋다고 농사지으면 어떠냐며 사람 좋으면 그만이지 참 착해 보인다고 남편을 칭찬 하셨을 때 전 속으로 울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 그 비수가 시간이 좀더 흐르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사위이고 딸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답니다.

제가 지금껏 가져본 몇 되지 않은 직업 중에 농부만큼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답답한 도시의 아파트와 아스팔트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고 , 꽉 막힌 지하철에서 씨름할 일도 없고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일도 없으니 이 얼마나 홀가분한 일이 아닐런지요
물론 제가 좋아 택한 농부이고 농부인 남편을 평생의 동반자로 택했기에 제 인생의 긴 여정에서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어렸을 적 제 꿈을 분명히 이루었으니까요. 비록 그 꿈이 부모님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는 못하였을 지라도 앞으로의 행복한 딸의 모습을 기대해 주세요.

저를 위해 흘리신 눈물만큼, 땀방울로 엮어진 부모님 인생의 여정을 이젠 이 어리석은 딸도 함께 하려 함입니다. 정성으로 자식을 기르는 마음처럼 작물을 대할 것이고 그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농부의 삶이야말로 제가 부모님의 깊으신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길에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껏 부모님이 일궈 놓으신 삶의 터전을 이어 받아 하나씩 배워가며 가꾸는 보람은 힘듦 뒤에 맛보는 값진 열매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마음에 언젠가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손주 손녀를 배에 품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학교를 보내고 시집 장가를 보내다 보면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겠지요

아버지 어머니..
새삼 알아가나 봅니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때묻은 옷차림에 새까맣게 탄 얼굴로 부모님을 찾아뵙지만 부모님 눈에 이 딸과 사위의 모습이 한없이 안타까우면서도 기특하실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농업의 힘든 길을 함께 가는 친구이자 선배로서 그리고 부모라는 책임과 의무로서 한 평생 어깨에 놓인 짐 지고 가실 부모님.

이제야 고백 드립니다.
농부인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농부의 길로 걸어감을 받아들여 주심에 그리고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삶 속에 주어진 부모 자식의 인연 가운데 저의 부모님이 되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드리겠습니다..
2005-08-09 21:28:10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게시물 댓글과 답글 13
  • 늘푸른유성 2005-08-13 10:12:32

    너무나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새삼 글 솜씨도 감상 하구요.  

    • 오렌지제주 2005-08-12 06:39:58

      절절이 마음에 와 닿는군요,귀농할 때의 부모님 말씀이.....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섶다리 2005-08-11 05:09:42

        글을 읽고서 딱 한가지 생각을 합니다.

        귀하 같은 생각을 가지신 아낙들이 많앗으면하고요.

        그리고 욕심을 부린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같은 생각을 가지신 젊은 여성이 있다.라고 하면 이곳 섶다리를 맡기고 싶다.라고요.

        이 아침에 좋은 글 읽게됨을 감사드림니다.
         

        • 하리 2005-08-10 12:50:24

          현실은 어찌보면 팍팍한데 글이 너무 아름답구만요.
          절믄농부 복도 많아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
           

          • 이영국 2005-08-10 12:42:05

            제가 시골에 들오올때 우리 장인 장모님 마음을 한번 더 떠올리게
            하는군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수상 축하도 드리구요, 언제나 아름다운 농업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배꽃뜰 2005-08-10 10:49:14

              젊은 아낙네님, 반갑습니다.

              농협중앙회 시상식장에서 인상이 깊어서 기억 합니다.
              해볕에 그을린 조그맣고 야무진 여인이
              다른 종목의 시상자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 오더군요.
              자농에서의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더 시선이 가지 않았나 합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반갑게
              축하 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늦게나마 축하 합니다.
              진실 된 삶을 그린 글 잘보았읍니다.
               

              • 강물처럼 2005-08-10 10:07:44

                축하드립니다. 늦었지만 결혼을 축하합니다.
                전국 주부 글자랑에 입선을 축하합니다.

                남이 가기를 망설이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사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보람된 삶에 늘 기쁜일 좋은 일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 들꽃향기 2005-08-10 07:46:10

                  정말 멋집니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감동입니다.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가세요~~~
                   

                  • 파아란 2005-08-10 00:24:21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자연을 닮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날마다 좋은날만 있으시길....
                     

                    • 정도령복숭아 2005-08-10 00:14:38

                      젊은 아낙네님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부모님과 자식과의 연
                      모두의 바램이 아닐런지요..
                      가족모두 행복하세요.
                       

                      번호 제 목 닉네임 첨부 날짜 조회
                      공지 후원자 전용 카카오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습니다. - 2024-08-23 124287
                      공지 8월 20일 후원자님들 자닮농장 방문, 뜻깊은 자리였습니다.(사진있음) (54) 2024-05-27 583277
                      공지 후원자 분들과 매월 말 줌(ZOOM)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 2024-05-23 487721
                      공지 자닮농장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실시간 공개되고 있습니다. (13) 2023-05-19 1824196
                      3460 너무 오랫만입니다. (1) - 2005-10-03 5821
                      3459 "곧은터 사람들" 정모에서 본 곧은터 사람들 (3) - 2005-10-03 6250
                      3458 아~~~ 가을입니다. ㅎㅎ (2) - 2005-10-03 5607
                      3457 첨 봤어요 (2) 2005-10-02 5317
                      3456 촌놈들도 많이들 구경 가셔요~^^*-유등축제 시작 (2) - 2005-10-02 5344
                      3455 유등제 구경~ (2) - 2005-10-04 5274
                      3454 동천의 산골 통신 (5) - 2005-10-01 5145
                      3453 깜짝놀랐습니다>ㅁ (4) - 2005-10-01 4804
                      3452 언덕위에서 바라본 쌍폭. (2) 2005-10-01 4974
                      3451 본격 가을,,, 10월은 (3) - 2005-10-01 5439
                      3450 자농의 위대함을 함께 하고파 (5) 2005-09-30 5108
                      3449 (5) 2005-09-30 4752
                      3448 허술한 농산물 위생검사 - 2005-09-30 4841
                      3447 방아잎의 편안한 오후.. (5) 2005-09-30 5554
                      3446 구월의 마지막 날,,,, (4) - 2005-09-30 6064
                      3445 이제는 설탕도 안사써도 되겠네예? (7) 2005-09-29 5792
                      3444 길이 열리질 않습니다.. (3) - 2005-09-29 5476
                      3443 삽시간의 황홀 (9) - 2005-09-29 5657
                      3442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 (7) - 2005-09-29 11055
                      3441 생태공원에 놀러오세요~~~~ (3) 2005-09-27 5158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