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 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다하여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데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방긋이 눈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나는 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사무실 앞 교회에 서있는 풍성하고 잘 생긴 은행나무가 얼마전에 갑자기 잘리더니 주차장이 되어 지금 그 자리엔 대형 차 “브익”이 서있다.
해질녁이면 출출한 기분에 한잔 생각나면 들리던, 탁자 두개를 겨우 갖춰 놓고 틉틉한 막걸리 한 사발에 풋풋한 열무김치를 내놓은, 나의 시골 이모같고 누님도 같은 등굽은 아줌마가, 얼마전에 말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인사동 대로변, 허름하지만 꼭 갖출 고서만을 진열해 두고, (비좁은 공간 탓) 모처럼 일 보려 외출한 선비들의 보따리나 맏아주며 독서로 시간을 보내다, 해질녁쯤 소지품을 찿는 자 “한잔 하지” 문을 닫고 나섰던 김씨. 그의 책방은, 인사동이 변하면서, 수 십 년을 함께했던 정든 그 자리를 떠난지는 이미 오래 전이었다.
청계천 육교밑에 아무렇게나 산더미처럼 헌책을 쌓아두고, 오백원 천원씩에 팔고 있었던 술도 좋와했던, 그 마음씨 좋고 키작은 주인아저씨의 서점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그 자리엔 시골 아줌마들이 즐겨찿을 화려한 옷가게로 변해 있다.
테니스를 한 주일만 걸러도 못 살 것 같았던 우리 여덟 멤버들이었다. 그런데 제일 건강했던 인섭형이 정년 마지막 한학기를 남겨두고 입원 보름만에 우리 곁을 떠났고, 잇따라 희석이 기탁이 친구도 그놈의 위암,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으며, 그래서 테니스가 두려워 한사코 약속을 외면하려드는 멤버들 모습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산이 좋와 일년에 50번은 꼭 산에 있어야 하는(주말만 쉬야하는 자영업으로), 그래서 산악회장직도 맡고 있었던 일도친구도 건강한 채 입원하더니, 대장암으로 지금은 말없이 고향 영주의 산자락에 묻혀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또 흥이친구가 고향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인 채 경희병원에 입원해 있음이, 벌써 삼 개월도 더 되었단다. 가족들의 비밀로 인제야 알려졌다는 전갈이다.
서글픈 사연들이 이처럼 줄줄이 이어짐을 보면서, 지금 나는 참담으로 비통하다. 가능한 긍정적 삶이요, 좋지 않는 일은 머리에서 빨리 지운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수긍이 가는 말로, 나는 가능한 이와같이 좋은 일이라면 지키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결심이 결코 쉽지 않아 속상하다.
불쑥 떠오른 비통한 생각들로, 어쩐지 내 자신이 버려진 것 같은 쓸쓸함으로 허허로워, 세상이 텅 빈 느낌이다. 이런 일 저런일들을 생각해 보려니 공허로 비통한 생각들이 전혀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래 전 읽었던 “함석헌”옹의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를 다시 떠올려 본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런 사람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 남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며, 나는 남을 위해서 전혀 관심도 배려도 없는, 오직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그러면서 이 세상을 원망하고 비관하며 살아온 내가 진정한 지기를 찿고 있음은, 말도 안되는 황당무계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짖이다. 내가 그런 지기를 가질 수 있으리란 기대는 결코 허황으로 넌센스이다.
만일 나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면,아니 차 한 잔을 놓고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친구가 있다면, 나는 지금처럼 주위가 바뀌고 텅빈 자리로 더욱 쓸쓸하더라도, 결코 허무함으로 비통치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가까운 지기가 있는가? 있다면 그는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선뜩 다가온 지기지우知己之友가 없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를 다시 읽으며,“나는 왜 남이 바라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해 본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나에게 참다운 지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나 자격은 결코 없으리라. 나의 삶과 처세에 대한 깊은 배려의 기회로 기필코 명심할 일이다. (05 8. 여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