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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봉일기 - 이런 저런 옛이야기 (할아버지)
큰봉 2005-08-23 18:30:44 | 조회: 4818
3월에 쓴 일기가 생각 나 다시 한 번 적어 본다.

어제는 감자를 하우스에 심었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박스 정도 심어서 나누어 먹었는데 올해는 자리도 많고 해서
두 박스 넘게 씨를 준비 했다.

요리조리 눈을 살피면서 자르다 보니 씨를 자르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한가지 일 할 때마다 일 못하는 티가 나니 그래도 열심히 한다는 핑계로 얼렁뚱당
넘어간다.


어렸을 때 우리 할아버지는 양쪽발의 발가락이 6개였다.
그래서 항상 절둑거리며 다니셨다. 매일 시장통에 있는 복덕방에 가셨는데
지금 생각 해 보니 그곳에서 화투를 하신 거 같았다.

놀음이기보다는 즐기기 위함이였다는 생각이다.

옛날 우리가족은 열 한 식구였다.
우리 육남매와, 엄마, 아빠,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겨울 김장을 하기 위해 산꼭대기 집에서 부터 아래 시장통에까지 가서 배추를 나르려면
그 날은 온 힘을 다 빼야 했다.

중간 중간 자기 구역까지 갖다 놓으면 다음 사람이 더 위까지 그 다음 사람이
더 위, 그렇게 하다보면 집에까지 배추가 도착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푸대자루를 등에 짊어 지고 처음 시장에서 부터 나르셨다.
푸대자루에 배추를 1/3정도 넣고 천천히 힘에 겨워 산꼭대기 집을 향해 올라가시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힘이 들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서 천천히 내려오며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큰 앞니
두개만 있는 할아버지는 씩 웃으시며 나에게 기운을 주셨다.

산꼭대기집 바로 옆에는 계단식 밭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곳에 여러가지를
심어서 가꾸셨다.

변소에 있는 인분을 밭으로 옮겨서 거름을 주셨고, 밭에 올라 갔다가 내려 오실 때는
딸기 두세개, 진이 다 나오고 벌레가 많은 개복숭아 몇 개, 앵두 한 바가지 등등

식구 많은 우리들에게 다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항상 불만이었다.
막상 할아버지는 한 개도 못 드셨을 텐데도 말이다.

오늘 아침은 날이 궂다
비가 오락가락 하고 퍼뜩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더듬어 보게 됐다.

'에흠, 에흠' 복덕방에서 오실 때 방문을 열기 전에 하시는 기척소리와
지팡이로 우리들 신발 떨어 뜨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오늘이다.

할아버지 방문 앞에 정리 정돈이 되지 않은 신발이 있으면 마당으로 버렸던
그 모습에 괜한 미소를 지어 보며 오늘을 시작한다.
2005-08-23 18: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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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노래하는별 2005-08-24 11:36:11

    큰봉님 반갑습니다 자주 좀 오시지~~
    점점 일손이 바빠지시겠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큰봉님 얼굴 떠올리면 저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
     

    • 들꽃향기 2005-08-24 08:17:18

      큰봉님 오랜만이네요.
      그 글을 사뭇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토물님과 큰봉님을 못본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아 보고싶다...

      겨울에는 모습을 한번쯤 보여 주세요.
      암그럼 서운해요. 아셨죠~~
       

      • 하리 2005-08-23 23:21:15

        큰봉님 진짜 오랜만이네요 ^^*

        올려주신 글과 음악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듣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으실건데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으신지..

        2월 정모때 너무 밝게 웃으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겨울에 무농약 토론회 하면 꼭 오실거죠..?
         

        • 목사골 2005-08-23 20:27:37

          큰봉님 오랫만에 여기서 만나니 무지 반갑네요.
          토물님도 여름내 너무 바쁘게 사는지 소식 없드만
          그래서 무척 궁금도 했지요.
          계절이 벌써 처서를 지나고 있네요.
          올 농사 고생한 만큼 잘 되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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