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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글터님의 한가위 인사, 뜻깊은 한가위가 되시길....
지리산숨결 2005-09-16 08:33:35 | 조회: 5104




칡꽃

곽재구


지리산 아래 토지면에서는
지금쯤 칡꽃이 미치게 피어나고 있지





배꼽에 땟물 습한 산그늘 내린 채로
우리들은 칡 한 뿌리를 물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로 달렸지





생각나거든





보리밥알 같은 초가빛들이 황토 위에 묻어 있고





호박마름 꼬챙이가 흙벽 위에 붙어 있고





동구에 들어서면 보리떡 들쑥 냄새가
고픈 배를 적셔놓았지





참숯 같은 얼굴로 동네를 떠난 누님들은 알까





써레질 헛간 깊숙이 팽개친 형님들은 알까





칡물이 검게 오른 입술로
담루 빠진 수숫대를 꼭꼭 씹으며
우리들이 울컥 삼키던 어지러움





칡꽃이 하늘 끝까지 피었는데
달리고 달려 꿈속까지 환하게 피었는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일가 형님들을 기다리며
버스가 돌아오는 장터까지
우리들은 달리기 시작했지





횟배 앓은 가슴께로 칡꽃들은 날아들고
헛구역질 가쁜 숨으로 수수밭에 쓰러지곤 했지





미칠 듯 기다리는 우리들마저
칡꽃 눈물나는 산그늘을 배반하고





지금은 십장녀석이 주장하는
작업량을 어림으로 계산하며
공사장 십이층 난간에서
쓴담배를 피운다





입술에 칡물이 배어들도록
꺼멓게 꺼멓게 속을 태운다.




....................................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작가 김훈은,
몇 년 전 쉰둘의 나이에
세 바퀴 자전거 '풍륜(風輪)'에 몸을 싣고
길을 나섰습니다.

풍륜에 밟히기도
함께 굴러가기도 했을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연필 한 자루로 끄적이는 그의 손끝에서
밥뜸내 폴폴 일어나듯 되살아난 것이 아닐까,
그 줄기는 다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 첫 문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그저 짐작하고 또 짐작해 봅니다.





유난히 지리하고 무더웠던 여름...
매미는 이미 제풀에 지쳐 떠났고,
달거리하듯 보름달
어김없이 드리우더니
훌쩍 들어선 가을의 문턱에서
주섬주섬 책 몇 권 주워듭니다.





독서의 계절을 핑계삼기에는
긴 시간 책에 마음 붙이지 못한 게으름이 민망할 뿐.
여행 이야기에 온통 눈길이 머무느니
올가을엔 여행이 잦을 듯합니다.





; 작년 이맘때 9월의 노래와 끄적임입니다.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을 보러 나선 길,
선운사 입구부터 도솔암 이르는 길까지
퐁신퐁신 빠알간 융단 깔리어
그대로 스러져 푸른 하늘과 벗하여도 좋았을...
그 길을 자분자분 걸었던 기억이
9월의 한가운데 머물며 마치 어제인 양
화사한 그림으로 떠오릅니다.

오늘, 쌍계사 뜨락 서성이며 이리도 행복했으니
몸살을 앓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






비껴가는 그리움, 9월입니다...


한가위 인사 이렇게 남깁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운 가족들과
따뜻하고 풍성한 한가위 맞으시길...^^
...^(^
2005-09-16 08: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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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후투티 2005-09-16 20:48:14

    꽃무릇만이 갖고있는 애닮은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져
    아름다운 자태에 취해봅니다.

    꽃무릇 축제도 있던데 함 가보고 싶네요.
    좋은사진 감사 합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싶시요.....
     

    • 호두나무 2005-09-16 11:05:37

      기리니끼니 요고이 글터님 사진이란 말입니꺄, 대단함돠. 어떻게 그렇게 아픈데만 꼬집어내듯이 꼭꼭 찍었나여? 비결이 뭡니꺄? 따고 들어가면 됩니꺄? 음냐...그나저나 글터님, 추석 명절 잘 보내시기를 바람돠. (아흐 모자 사야 하는데...)  

      • 하리 2005-09-16 09:05:26

        우워어어어어어~~~~

        마지막 사진 압권이요.
        글터뉨은 진정한 챔피온 -_-)=b
         

        • 동천 2005-09-16 08:56:17

          상사화꽃이 이쁘네요.........지리산 숨결님 한가위 잘 보내세요........자농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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