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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여행자를 위한 여행기, 남도로의 길을 나서다^^
찬비 2005-09-25 21:26:26 | 조회: 5384
하동에 온지 며칠이면 꼭 한달이 된다..
한달이란 시간은 무언가에 익숙해지기에 적절한 시간인가보다..
하동에 오면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남도땅을 구석구석 다녀보리라..마음먹었었다.
어제 아침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
하동에서 순천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며칠동안 비를 머금고 희뿌였던 하늘이 맑게
개어있는 것을 보며 이제 막 낙엽이 지기 시작한 나무들을 보며
가을에 대한 설레임만큼이나 내가 가게 될 길들에 대한 설레임이 있었다.

나의 남도여행기 1탄 - 순천 조계산을 오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남도라 부르는지 모르겠으나 경상도땅에서 살다온 나에겐
전라도 남쪽의 땅들은 다 남도라 여겨진다. 그래서 첫여행지는 순천의 조계산..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는 굴맥이재를 넘기로 했다. 함께 일하는 으아리님께서
그곳은 10월말이 아름답다고 하셨는데도 그 한달이 너무나 길게 느껴져서...
오랫동안 벼러온 탓일 것이다.

송광사와 선암사라는 큰 두 고찰을 잇는 산길이 있다는걸 알았을때 난 참 신기했다.
그 옛날 어떤 사람들이 그 고갯길을 넘어갔을까 바랑을 매고 저벅저벅 산길을 걸었을
스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갯마루에 있다는 보리밥집에서 쉬어갈 생각도 하며
그렇게 난 굴맥이재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조계산은 참 편안한 산이었다. 그 무엇도 사람을 억누르지 않고 폭포도 바위도
다 고만고만한 산,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는 곳,
난 등산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산을 오른다는것보다는 산에 안겨들어간다는
느낌이 좋다.. 한걸음 한걸음씩 산의 품으로 안겨들어가는것, 그런 산행이 좋다.
조계산은 그렇게 타박타박 걸어가기에 걸맞는 산이었다.
그래도 막판의 오르막은 숨이 차고 등은 땀으로 젖었다.

그렇게 막판 오르막인듯 싶은 곳을 올라 다시 내려가자 보리밥집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였다.. 산위에 보리밥집이라니... 호기심반, 반가움반으로 찾아간 그곳은
정말이지 맘에 쏙 드는 곳이었다. 배추, 열무등이 자라고 있는 커다란 텃밭,
여기 저기 평상엔 등산객들이 아예 드러누워 편히 쉬고 있었고
마당엔 꽃들이 멋대로 피어있고... 아저씨가 혼자 왔느냐며 가까운 곳에 앉으라 하신다...
누워쉬고 있는 다른 등산객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보리밥을 시켰는데 무려 두상이나 들고 오신다..오..이것을 혼자먹어야 하나!!? ^^
갖가지 소담한 나물반찬이 무려 13가지, 텃밭에서 따온듯한 쌈채소, 된장국, 보리밥, 고추장..ㅋㅋ
생채소에 목이 말라있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진기가 있었으면 찍어두고 싶었던 밥상~!!)
혼자 밥을 먹는 등산객들이 한둘 눈에 띄어 벗을 만난듯 마음까지 든든하다...
아저씨께서 서비스로 주신 동동주 한사발까지 앞에 놓고 보니 정말이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였다. 가끔 이렇게 단순한 행복을 느낄때가 참 좋다...^.^

꼭 그곳에 다시한번 들러야겠다 생각하며 선암사를 향해 출발했다.
굴맥이재를 어느 방향에서 넘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했었는데
내 경우엔 송광사에서 출발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암사로 내려가는길은 좀더 순탄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그리고 굴맥이재를 넘을땐 중간중간 설명이 담긴 표지판을 놓쳐서는 안된다.
조계산에 얽힌 사연들과 설화들이 정말 재미나게 적혔있다.
어떤 표지판을 읽다가는 혼자 실없이 한참을 웃기도 했다..
딱딱하기 쉽상인 글을 그렇게 편안하게 풀어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슨무슨 해양경찰 뭐뭐라고 적혀있는 그 사람이 괜히 정겹게 느껴졌다.
굴맥이재의 '굴'은 우리가 생각하는 '굴'이 아니라 골자기를 뜻하는 '골'을
이 지역사람들이 그렇게 발음한대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암사로 내려가는 막바지길에엔 하얗게 쭉쭉벗은 편백나무 숲이 있다.
송광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편백나무라고 적힌 나무를 신기하게 쳐다보았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키가 크고 하얀 나무가 있구나.. 하며
하산길엔 아예 편백나무를 숲으로 만나게 되다니!! ^^ 근데 옆에 지나가는 아저씨가
그걸 보고 삼나무라고 하신다..아니 뭐야..헷갈리잖아..?
어쨌거나 마치 대패로 나무줄기를 밀어놓은 것처럼 줄기가 하얗고 키가 훤칠했던 나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나무, 그렇게 키가 크고 곧은 나무를 올려다보는게 좋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겹겹의 담장과 문으로 쌓여있던 선암사,
대구에 있을때 곧잘 찾아갔었던 비구니 스님들이 계신 운문사도,
그리고 승보사찰인 송광사도 그리고 그 너머의 선암사도 학승이 많은 절에는 어떤 청청한 느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욕하기도 하고 또 실제 그런 모습들을 보이기도 하지만
겨우 내 나이또래일법한 스님들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웃으며 오가는 모습을 보면
저들 마음의 어떤 갈급함이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난 결코
함부로 보이지가 않는다...

이렇게 조계산산행으로 하루가 저물었다...
양쪽의 큰 절을 두어 정작 산이름은 가리워진 곳,
두 자녀를 훌륭히 키워내고 자신은 초라하게 물러나있는 어머니와도 같다던 조계산..
백두대간의 끝무렵은 그렇게 부드러웠다....

순천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오늘은 길을 거슬러 구례로 와 노고단을 올랐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과 앞으로 숱하게 오르게 될 지리산..
그 지리산을 그냥 한번 그렇게 내려다보고 싶었다.

이틀간의 여행이 끝나고 다시 악양으로 돌아오던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난 비로소 너무도 달라진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전에는 어디를 떠나든 돌아올때면 밤중에도 환하게 밝은 대구가 보이기 시작하면
여행의 끝을 느꼈다.
그렇게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며 묘한 혼돈감과 피로함을 느꼈던 때와는 달리,
이제 난 내가 다녀온 곳들과 별반 다르지않은 시골길에 내려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혼자떠나는 여행이라고는 하나 아직 나는 혼자가 아니다...
마음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일들, 떠오르는 사람들, 그들에게 건네는 혼잣말들,
그렇게 숱한 나아닌 나들과 함께 길을 가는 나.. 언젠가는 그 모든것들이
사라지고 정말 내 호흡과 내 발걸음만으로 가득 채워진 여행을 하고 싶다..

남도로의 여행이 그런 나를 도와줄꺼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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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여행기>
정류장에서 한두시간쯤은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며,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행자들, 그런 여행의 당연한 모습들이 자가용에 밀려가는 현실이 조금 서글프다. 그래서 그런 여행자를 위한 여행기를 앞으로 조금씩 적어볼까 한다.

- 송광사 -
순천역앞~송광사 : 06:00~18:40까지 하루 21회 운행, 50분정도 소요(시외버스터미널/고속버스터미널앞경유)

- 선암사 -
순천역앞~선암사 : 06:05~22:30까지 하루 32회 운행, 30분정도 소요 (")

-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가는 굴맥이재 -
송광사~배바우대피소~보리밥집 : 3.7km (1시간30분~2시간)
보리밥집~선암사 : 3.3km (1시간~1시간 30분)
여유롭게 산책하듯이 걷는다면 보리밥집에서 쉬어가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5시간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 굴맥이재 맹산골 보리밥집 :
보리밥집은 두군데가 있다 송광사쪽에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곳과 선암사쪽에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곳, 내가 간곳은 전자이며 내가 보기엔 이곳이 분위기가 더 좋았던듯 ^^, 민박도 하며 메뉴는 대부분이 5000원이다 061-753-8806

- 노고단 -
구례버스터미널~노고단 : 04:20, 06:00, 08:20, 10:20, 12:20, 14:20, 16:20, 17:20 (버스비3200원 / 올라가는길에 공원입장료도 3000원가량 받는다..ㅠㅠ)
노고단 탐방시간 : 10:30, 13:00, 14:30, 16:00
(노고단 휴식년제 구간을 탐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5분전까지 선착순 접수를 받는다)



(사진퍼옴)
2005-09-25 21: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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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12
  • 으아리 2005-09-27 10:20:46

    11월에 보자하군 얌체로 먼저 갔다오셨네^^,
    담에 갈 땐 꼭 사진기자로 붙여주시구랴.
    그나저나 글이 계곡물 흘러가듯 단아하고
    담담한 것이 참 좋습니다.
     

    • 차(茶)사랑 2005-09-26 11:10:06

      인자 설설 산행을 헐때가 된모양이네요..

      가을산길에 아리따분 처녀가 혼자 산에오리다..

      캬캬캬 직입니다..

      그라고 우리도 어지깨 순천갔다가 보리밥집이들러서 보리밥 묵었지요.
      보리밥엔 역시 보리가 만터만요..
       

      • 찬비 2005-09-26 10:20:50

        보리밥값이요? ^^ 한 구석에 째맨하게 적힌 토종닭메뉴를 빼고는 모두 모두 5천원이지요..동동주 한잔은 돈도 안 받으신답니다!! 밥상을 앞에두니 문화센터 식구들 얼굴이 아른거리더군요..ㅎㅎ  

        • 문사철시서화 2005-09-26 09:52:31

          노는 날마다 이렇듯 호젓한 여행길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일이 몇 갑절은 단련되고, 초연해지고,
          풍성해지겠습니다.
          혼자 소박하게 떠나는 여행...
          어쩌면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가장 깊게 만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건 나이에 관계 없는 경험이니 제게도 기회는 있겠지요.ㅎㅎ
           

          • 지리산숨결 2005-09-26 09:32:33

            찬비님! 인기 짱이네~~~

            언젠가는 그 모든것들이
            사라지고 정말 내 호흡과 내 발걸음만으로 가득 채워진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날이 오려면
            외로움을 외로움대로 담는 가슴이 또 하나 열려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원래 인간은 멀티프랙스 영화관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하리 2005-09-26 09:26:43

              흠냥 혼자 여행을..  

              • 늘푸른유성 2005-09-26 09:23:51

                찬비님 그 보리밥 값이 얼마래요? 역시 아줌마는 다르죠 그렇게 멋진 보리밥값이 궁금해 집니다. 구미가 칵 당기는 남도 여행이군요. 언제 남편과 함께 떠나야 겠네요.  

                • 노래하는별 2005-09-26 09:23:13

                  음... 내가 꼭 하고싶은 소박한 여행을 하고 오셨네요
                  제가 하고싶은 것 중 하나가 이렇게 가볍게 돌고 소박하게 느끼고
                  담담하게 글올리는것이었는데...
                  항상 정갈한 찬비님 같은 정갈한 주말을 보내셨군요
                  저는 이번 주말에 의식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것을 느꼈습니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허영끼가 많이 있다는것을 다시 새삼느꼈답니다
                   

                  • 찬비 2005-09-26 08:05:59

                    오돌님! 하루차이로 어긋나버렸네요... 뜻하지않게 만났어도 좋았을텐데...^^ 선암사 물이 사람마음하나 못 담을까요... 저도 함께 일할 사람들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왔더랬지요...  

                    • 호두나무 2005-09-26 00:03:57

                      저도 조계산을 올라간....게 아니라 그 아래 있는 동네 월은마을을 다녀왔슴돠. 찬비님, 무드 좋고 그림 좋고...다음편 여행기가 기대됨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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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08 저도 땀흘려 일하는 농업인이 되고 싶어요... (2) - 2005-11-30 5999
                      3907 녹차 재배에 관하여 (1) - 2005-11-29 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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