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방에 왔는데 usb가 안되네요.
밤 바다와 내설악 단풍을 보여주고 싶은데....
욕심이 많아 박박하게 세운 취재 계획이 회원님 댁을 찾아가면 무너지고 맙니다.
늘 회원님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이 왜 이리도 미안한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줌 눌 시간도 없이 서너시간이 훌떡 지나갑니다.
다음 약속 때문에, "시간 넉넉히 가지고 다시 올게요." 말을 하고,
등을 보이는 일은 너무나 죄스럽습니다.
선교활동(천주교) 때문에 홍천군 화천면 장평리에 내려오신 안셀모님,
자연농업을 접하고는,
"내 올 때 교리 책 잔득 가지고 왔어. 자연농업 배우고 교리책 모조리 치웠어.
자연농업으로 흙을 살리는 게 선교야."
짬만 나면 배낭을 메고 부엽토를 끍으러 산에 올라가신다.
안셀모님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던 마을 사람들도 한 두분씩 따라 하신다고 한다.
선교를 자연농업으로 하시는 안셀모님,
두 자식이 대학을 다니는데, 모두 휴학 중이란다.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 복학 준비를 한단다.
"아버지 하시는 일이 옳아요.
저희들 등록금 걱정 마시고 열심히 하세요."
군을 제대하고 복학을 위해 돈을 버는 아들의 말을 전하는 안셀모님의 눈엔
눈물보다 맑은 행복의 이슬이 맺혀 있다.
한쪽 눈은 고아원에 봉사를 가셨다고 실명을 하셨단다.
그 눈에 자주 눈물이 맺힌다.
자신의 고통마저 고맙게 여기는 안셀모님,
"올해는 땅이 많이 좋아졌어. 근데 두더지가 너무 많아 문제가 됐어.
힘들 땐 회장님(자연농업 조한규 회장)께 문의 할까 생각도 했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흙과 사겨가는 이 과정도 소중하다고 여겨.
(귀농)칠년동안 가져 온 군자금도 다 떨어졌어.
내년부턴 수입이 되어야 할텐데.
걱정은 안 해. 내가 비워져야 채워주겠지.
나는 작물의 조력자 잖아. 작물이 농사 짓지.
아직 비우지 않은 욕심이 많아 그러겠지."
제게 줄게 없어 못내 미안해 하는 안셀모님을 등 뒤에 두고 나서니
몸만 화천을 떠나고 마음은 그 곳에 남겨두고 말았다.
두시에 약속을 했는데, 마음이 급해 액세레다를 밟는다.
인제 가는 46번 국도를 달리다 좌회전을 해 다리를 건너니 농로가 나온다.
조금 더 가니 비포장도로, 차체가 낮은 내차 밑바닥이 돌에 씻기며 산길을 오르니
박민서님의 집이 나온다.
강원도 갈 때는 마빡 큰 카메라보다 바퀴 높은 차를 가져 와야지...
검게 그을린 얼굴, 너무 바쁘다.
오만평의 산을 배나무 밭으로 바꾸느라 정신이 없다.
귀농 3년차.
"자연농업 배운 데로 할려는데, 나 같은 도시 놈은 너무 힘들어.
낫질 한 번 해 본적이 있나."
서울에서 꽤 큰 돈을 버는 사업을 하다 농사를 짓고 싶어 내려온지 3년.
"도시 사람들 귀농해서 열 가운데 여덜은 포기하고 돌아가잖아.
서울 생활을 청산을 안 해서 그래. 다 털어 넣고 들어 와야지.
난 이제 돌아가지 못해. 여기서 죽어도 농사 지으며 살아야지."
고집스럽게 지은 집이나 이제 모양새를 나타내는 배나무밭도
박민서님의 고집스런 얼굴 그대로다.
박민서님은 자연농업 연찬을 부부가 함께 받았다고 한다.
안셀모님도 마찬가지고.
그러고 보니, 어제 오늘 내가 만난 네 분 모두 가족들의 적극적인 도움이나 힘으로
자연농업을 하고 있다.
또 하나 공통점은 아직 가정의 주된 수입이 농사가 아니라
벌어 둔 돈 까먹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
모두 자연농업을 신앙처럼 여기며 생을 바치며 농사를 짓고 계신다.
취재를 하러 떠난 길
취조를 당한 범죄자의 몰골이다.
보지 말아야 할 것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기분이다.
너무 어깨가 무거워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할지 두렵다.
어두워져 미시령을 넘는다.
중간 중간 바위 봉오리가 전조등 불빛에 드러나면
덜컹 겁이 난다.
고성 달홀님 댁에 가는 게 목표인데
또 시간을 놓쳤다.
한두시간 만나 기사꺼리만 얻어 오려는
내 얕은 머리가 미워진다.
낙산 밤바다,
낼은 고성에 먼저 가야하나
강릉에 가야 하나.
솔직히 악양에 가고 싶다.
내 무거운 맘을 어찌 털어내야 할지.
하얀 파도만 보이는 밤바다에
먹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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