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들깨 터는 폼이 제법이네요!"
오솔길 2005-10-24 19:15:13 | 조회: 5310






















"들깨 터는 폼이 제법이네요!"
고되기는 하지만 수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갑남(jun5417) 기자




어느새 날씨가 차갑다.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가 몸을 움츠려들게 한다.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보는 듯싶다.

"급한 일부터 해야지!"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배추 잎을 묶어주어야 할 것 같다. 볏짚을 가지러 나서다 일 나온 이웃집 할머니를 만났다.

"선생님, 어디를 그렇게 부산스럽게 가시나?"
"배추 묶어주려고요."

내 말 끝에 눈을 흘기신다. 오며가며 일머리 모르고 허둥대는 우리 모습을 늘 보아온지라 우스꽝스럽다는 표정이다.















▲ 보름 전 베어 놓은 들깨. 털기에 알맞게 말랐다.
ⓒ2005 전갑남
"배추 묶는 것은 아직 급하지 않아! 지금 깨부터 털어요."
"며칠 있다가 털려고 했는데…."

"무슨 소리! 날짐승 잔치시킬 일 있어요 다 쪼아 먹기 전에 서두르셔."
"그래요?"

김장배추가 속이 차기 시작했다. 이때 배추를 묶어주면 겉잎이 속잎을 보호하면서 노랗게 속이 차올라 실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들깨부터 털라는 할머니의 채근에 일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아내가 나왔다.

"사모님, 날짐승들 오는 것 못 봤지?"
"네, 못 봤어요."

"깻대가 바짝 말랐으니, 두 분이 어서 털어요. 어레미나 키는 있남?"
"그런 것은 다 있어요."
"작년에 털어봐서 터는 법은 다 알지?"

해가 짧으니 빨리 서둘러야 일을 마칠 수 있다며 일러주고, 당신네 밭으로 잰걸음으로 간다. 이웃 할머니는 우리 집 대문 앞에 있는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일하러 올 때는 우리 텃밭도 둘러본다. 얼굴이라도 마주할 때는 요모조모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텃밭 가꾸는 데 있어 우리에게는 선생님이나 다름없다.

작은 한 톨에도 소중함이















▲ 여름부터 가꾼 우리 들깨 밭. 깻잎을 따서 유용하게 먹었다.
ⓒ2005 전갑남
우리는 3월말에 씨감자를 두 상자 심었다. 150평 남짓 심어 40상자 넘게 수확했다. 그리고 감자 캔 빈 자리에 들깨모를 심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 같다. 벌써 가을로 접어들어 들깨를 털게 되었으니 말이다.

들깨를 심어 깻잎을 따 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깻잎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인천에 사는 고모가 와서 장아찌를 담는다면서 넉넉히 따갔다. 곰삭은 깻잎장아찌는 한 겨울 밑반찬으로 좋은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 어레미와 키. 들깨 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다.
ⓒ2005 전갑남
아내와 나는 바닥 깔개를 깔았다. 창고에서 어레미와 키도 꺼내왔다. 아내가 친정에서 가져온 살림살이인데 텃밭을 가꾸다 보니까 아주 긴요하게 쓰인다. 두들겨 터는 데 필요한 낭창낭창한 막대기도 준비하였다.















▲ 들깨 더미를 두들기는 아내. 들깨 터는 첫 번째 작업이다.
ⓒ2005 전갑남
바짝 마른 들깨더미를 놓고 막대기로 두들기자 투두둑 투두둑 씨앗 털리는 소리가 듣기에 좋다. 작은 씨앗 하나가 수백 배로 늘려나오는 자연의 이치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 마주앉아 장단이라도 맞추듯이 투덕투덕 탁탁 들깨더미를 두드린다. 두드릴 때마다 털려나오는 작은 씨 한 알 한 알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 알이라도 깔게 밖으로 나갈까 조심스럽다. 애써 심고 가꾼 것들이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일게다.















▲ 키질하는 아내. 들깨 터는 두 번째 작업이다.
ⓒ2005 전갑남














▲ 어레미질하는 아내. 들깨 터는 세 번째 작업이다.
ⓒ2005 전갑남
깔판 바닥에 들깨와 함께 검부러기가 수북이 쌓였다. 아내는 능숙하게 키질을 한다. 키질로 검부러기가 바람에 날리고 씨알만 남는다. 아내가 키질한 것을 나는 어레미로 체질을 한다. 어레미 구멍 밖으로는 들깨가 쏟아져 나온다. 키질에서 남은 씨알들이 체질로 다시 걸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작년에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털어봐서 손발이 척척 맞아 일을 한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일을 마치고 가다 멈추어 서서 한마디 한다.

"들깨 터는 폼이 제법이네요! 두 분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요. 사모님은 어디서 많이 해본 솜씨야. 키질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선생님은 키질 못하지 예전에 부모님 일 도우면서 많이 해봤나 봐."

아내는 할머니의 공치사에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할머니께 음료수를 권하자 집에 할 일이 많다며 먹으나 진배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아내가 농사에서는 나보다 한수 위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 도회지에서 학교를 다녔다. 농사는 곁눈질이었지 실제로 해보기는 이곳에 와서 본격적이다. 그 전에도 건성으로 작은 텃밭을 가꾼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500여 평 가까이 가꾸어 보지는 못했다. 반면 아내는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였기에 일머리를 아는데 나보다 낫다. 오늘 들깨 털면서 예전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 같다.

수확의 기쁨 말로 할 수 없네!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다. 요즘은 오후 6시가 못되어 해거름이 된다. 한낮보다는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아내가 느닷없는 제안을 한다.

"여보, 우리 불 놓을까요?"
"당신 추워?"

"춥기도 하지만, 불 피우고 하면 훤하고 좋잖아."
"그럼, 모닥불에 고구마도 구워볼까?"
"그거 좋겠다!"















▲ 깻대에 불을 놓고 아내가 즐거워하고 있다. 모닥불 속에 고구마를 구웠다.
ⓒ2005 전갑남
우리는 깻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깻대가 부르르 타면서 풍기는 냄새가 너무 구수하다. 모닥불 속에다 우리가 거둔 고구마를 몇 개 넣었다. 따뜻한 불길에 아내는 등짝을 들이밀며 좋아한다.

"야! 작년에 비해 두 배는 넘을 듯싶네. 족히 두 말은 되지 않을까?"















▲ 우리가 수확한 들깨이다.
ⓒ2005 전갑남
내가 오늘 턴 수확량을 헤아리자 아내도 흐뭇한 표정이다. 지난번에 거둔 땅콩을 섞어 기름을 짜면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겠다며 즐거워한다.

모닥불을 허우적거려 본다. 까맣게 그을린 고구마가 나온다. 집게로 쟁반에 담고, 꺾어보는데 속이 노랗게 익어 먹음직스럽다. 호호 불며 먹는 따끈한 군고구마 맛이 꿀맛이다. 누가 이런 맛을 알까 싶은 생각이 든다.

들깨를 터느라 먼지를 뒤집어쓰고 한나절을 끙끙대며 일을 마쳤다. 힘이 들기는 하였지만 군고구마 맛과 같은 수확의 기쁨을 누린 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2005-10-24 09:22
ⓒ 2005 OhmyNews

2005-10-24 19:15:13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게시물 댓글과 답글 1
번호 제 목 닉네임 첨부 날짜 조회
공지 후원자 전용 카카오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습니다. - 2024-08-23 124289
공지 8월 20일 후원자님들 자닮농장 방문, 뜻깊은 자리였습니다.(사진있음) (54) 2024-05-27 583285
공지 후원자 분들과 매월 말 줌(ZOOM)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 2024-05-23 487732
공지 자닮농장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실시간 공개되고 있습니다. (13) 2023-05-19 1824212
3939 눈 내리는 아침 (5) 2005-12-07 6495
3938 기말고사 중입니다. (6) - 2005-12-07 6555
3937 강물처럼 님께 (2) - 2005-12-06 6251
3936 가마솥을 걸었어요 (8) - 2005-12-06 6454
3935 비금의 함초를 이용한 사업 아이디어 제안 (2) - 2005-12-06 6393
3934 아부지와 인터넷 (4) - 2005-12-06 6090
3933 너무나 안타가운 사연. (4) - 2005-12-05 6105
3932 섣달 초닷새, 악양 들판에 눈 내리고 (5) - 2005-12-05 6485
3931 화엄사의 첫눈 (3) - 2005-12-05 5888
3930 생애 첫 시험.. (5) - 2005-12-05 6468
3929 손, 발이 꽁꽁꽁... (9) - 2005-12-05 6332
3928 올 김장에 처음 등장한 풍경 (5) 2005-12-04 6316
3927 어제는.... (6) - 2005-12-04 6103
3926 김장 해쑤미다요... (6) - 2005-12-04 6227
3925 오늘 뭐하세요..? (4) 2005-12-04 6215
3924 밤새 조용히 니러와서... (8) 2005-12-04 6238
3923 혜림농원 안주인님 생일 축하 합네다아~~ (2) - 2005-12-04 6043
3922 외갓집에 가고 싶다 (3) 2005-12-03 6225
3921 사회를 감동시킨 유언장 (4) - 2005-12-02 6604
3920 폐암에 좋은 약초 알고 싶습니다 (1) - 2005-12-02 6709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