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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일본사과 견문록 ---上
미루사과 2005-10-27 20:13:19 | 조회: 5909





프롤로그


훗날,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이다.
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이 모든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푸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장차 크면 글쓰는 걸 업으로 삼고 싶었던 소년시절,
헌 책방에서 일본 소설을 산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이었지요.
지금도 제 서재에 꽂혀 있는 이 오래된 책은 나의 유년시절만큼이나
몽롱하고 유니크한 에로스가 소년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에도 일본이란 존재는 비록 주입식 교육 뿐만이 아니라
어쨌든 정치적인 이유로도 썩 유쾌한 방문길은 아닙니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출장때문에 서너차례 다녀 올때도 그랬으나
일본의 사과 산업을 배우러 가는 이 비행기 안에서
멀어지는 내 조국의 바닷가를 카메라에 담으며 깊이있는 학문과 기술, 나만이
볼수 있는 2%를 찾아내길 희망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떠나며 동해의 어느 바닷가



나는 일본의 주력 사과 생산지인 아오모리현 히로사끼 시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지식 습득과 기술 발전이 있을까?
KAL의 내비게이션에 나타나는 항로가 아키타를 지나며 조금씩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제1장 기업형 - 소토가와 씨



농업이 모든 산업의 전부였을 오랜 옛날이라면...
소토가와씨 댁을 방문하면서 자본과 소유와 분배와, 그리고 한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그 어떤 이념을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언급치 않겠습니다.
무릇 자수성가한, 그래서 산전 수전 심지어 공중전까지 다 겪은 노련한 프로에게
기술이란 부차적으로 얻어지는 테크닉일 뿐, 그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소토가와 선생의 과원은 13.2 ha입니다.
규모가 엄청난 만큼 사장과 경리를 제외한 직원이 16명입니다.
이들 모두 연금 및 의료 보험 등 완전한 직업인으로써 사회적 권리와 의무가 함께 주어지지요.
작업시간이 거의 없는 한겨울 3개얼은 국가로부터 실업수당을 받는다고 합니다.


소토가와 선생



선생은 젊어 매우 방탕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 40이 되어서야 농업에 뜻을 두고 농지를 마련하여 본격적인 업으로 삼았는데 지금 65세입니다.
불과 25년만에 이엄청난 부를 이룩하였는데 선생의 강의에서 느껴지는 소신은
철저한 이익 창출을 위한 정밀한 계획과 목표의식입니다.
투자 대비 소득을 기업 수준으로 정확하게 하고 목표의식을 확실하게 하여
일정 수준의 샐산량과 품질을 유지시킵니다.
또 유기질 비료에 강한 소신을 나타내어 축분이나 유박은 사용하지 않고
유기산 칼슘과 유기질 비료를 년 5회 시용함으로써 강한 수세를 유지시킵니다.


유기질 비료.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달리 질소와 인산의 양이 동일함.

원래 강한 수세이기도 하나 심각한 냉해로 인하여 과번무함.



여담이지만 놀라우면서도 일본인다운 무서운 프로 정신이 깃든 후일담.
소토가와씨는 자신의 농장 후계자로 현재 아들이 사장이고 며느리는 경리입니다.
한데 사장이 40이 넘어서야 자식을 두어 이제 겨우 한살이랍니다.
그러니 기술전수는 물론이고 후계구도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하여 선생의 5촌 조카를 영입했습니다.
금년 28살인 이 청년은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중 하나인 소방서의 중간 간부였다고 하네요.
5촌 조카에게 넓은 땅을 물려주려는 선생과 아들이나, 촉망받는 공무원에서
이름없는 농부의 길을 자청한 조카나 모두 우리네 관습으로는 잘 이해 되지 않는
이같은 대물림이 지금의 일본의 농업을 만든 건 아닐까요?


1년생 유목원 관리 모습



제2장; 예술가형 - 시치노헤 선생



한때 프랑스의 연인으로 불렸던 샹송가수 "에디뜨 삐아프"를 아십니까?
2차 대전 중 나치에 협력했다고 해서 말년에 극심한 비난을 받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나
그녀가 부른 주옥같은 수많은 노래는 지금도 애창되고 있습니다.
그 중 "장미빛 인생(La Vi en Rose)"이란 명곡이 있는데 "오로지 한길을 걸어
인생의 절정을 지나고 보니 장미처럼 아름다운 삶이었음"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시치노헤 선생의 과원을 보고 선생 부부의 모습을 보며 난 내내 속으로 장미빛 인생을 흥얼거렸습니다.


시치노헤 선생



일본에는 특유의 장인 정신이란게 있습니다.
라면 하나, 금붕어 한마리, 전정가위, 심지어 나무 젓가락하나를 만듦에도
그들은 장인으로써의 자부심과 혼을 함께 담아 만듭니다.
그 정신의 전형을 시치노헤 선생의 과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Y자형 밀식 재배원인데 도장지(발육지) 하나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연구 자세는 당신의 강의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 과원은 동경 148도 북위 40도에 위치하여-그 다음의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음- 평균 일조량이 몇시간이고
나무의 각도가 몇도를 유지하므로 나무의 수세는 어느 정도를 유지하여 탄수화물의 양이 어찌하여 이렇게 색을 냅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적확(的確)하게 통계를 내고 과학과 논리와 경험을 쏟아 부어 농사를 집니다.


적과하고 난 후 열매의 갯수를 적어 놓은 모습. 현재와 정확히 일치함.


환상 박피를 한 35년생 후지. 박피 넓이 약 25cm에 이르므로 도장지를 잘라
네군데에 접을 붙인 후 비닐로 쌓았다가 제거함. 풍뎅이류가 침투하자 약물 주사후 막아 놓음


부란병에 걸린 나무. 땅의 박테리아가 부란병 포자를 죽이므로
흙을 바른 후 비닐로 감쌌다. 100년전부터 해온 치료방법이라고 함.




생은 궤양과 같아라
만지면 헐은 자국에 상처가 덧나고
외면하면 더 깊이 곪아버리네
하루는 선비의 옷을 입고 자랑하지만
날이 지나면 그 옷이 헐은 자국울
감추고 있을 뿐임을 아네.
문자로 신을 삼아 걷고
경으로 안경을 만들어 걸치지만
발은 힘겨워서 소리를 지르고
눈은 한치의 앞에서도 허둥거리네
어느날 북산의 산수를 보고
거기 옛것이 사라졌음을.
- 미루사과 지음(원래는 한시로 지었으나 해석하여 옮김)




난 기본적으로 삶이 투쟁이라고 봅니다.
끊임없는 투쟁이 변증하여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통증하는 위궤양같은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난 시치노헤 선생의 과원을 보고 삶은 투쟁이로되 결코 궤양이 아님을 "通"하였습니다.
선생의 부인은 금년 68세인데 연신 웃으시며 우리에게 쥬스와 차를 대접합니다.
그리고 또 웃으며 통역과에게 말합니다.
"인생이 너무 즐거워요. 일이 너무 너무 즐거워 과원에서 나가기가 싫어요"
이런 삶이 어찌 궤양일리 있겠습니까?
축복이고 그야말로 La Vi en Rose 장미빛 인생이지요.


실은 선생의 과원으로 한달 전, 한국의 농부들이 견학을 왔었다고 합니다.
한데 이들이 몰래 가지를 꺽어 갔다는군요.
하여 화가난 선생은 다시는 한국인들을 과원에 들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저희들도 뒤늦게서야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요.
내가 비록 자격은 없으나 선생께 대신 깊이 사과 드리고 깨달음을 얻게 해준데 대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깨달음이란 농업도 예술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뽀너스 사진

막 구입한 ss기로 보이십니까 천만에요, 5년사용한 기계입니다.
잘 안보이지만 약통 뚜껑에 수건이 물려있습니다. 화학농약의 독성이 날라가라고....~,.~


다음편에 계속

2005-10-27 20: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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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하리 2005-10-29 17:25:48

    꼼꼼하고 치밀한 일본사람들의 사과재배 기사 감사합니다. ^^

    대를 이어서 물려주고 그일을 계속 발전시키는 모습이 참 부럽네요.
    일본사람들의 농부에 대한 인식은 어떨른지 궁금해지구요.
     

    • 노래하는별 2005-10-28 13:39:40

      미루사과님 좋은 견문록이네요 감사합니다
      어르신 삶의 모습에 배울점이 많네요
       

      • 미소애플 2005-10-28 13:31:01

        그 바쁜중에 언제 다녀오셨는지 부지런도 하시네 글구 산야로닉네임과
        연락해 보세요
        정보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 지리산숨결 2005-10-28 04:31:01

          미루사과님! 반갑습니다.
          매우 잘읽었구요. 다음편이 기다려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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