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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서울 사람들만 국민이고 농사꾼들은 노비야?"
오솔길 2005-10-31 18:23:46 | 조회: 5778



















"서울 사람들만 국민이고 농사꾼들은 노비야?"
넉넉해야 할 가을 들판, 우리동네 농부들의 한숨소리
이종득(dongdong2) 기자


















▲ 홍천농민회장 나종구씨는 군청 앞에서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혼자 있었다
ⓒ2005 이종득

첩첩산중인 우리 마을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푸르렀던 잎사귀들은 울긋불긋 변했고, 밤나무 밑에는 낙엽과 밤송이가 무더기로 쌓여 있고, 길가에 서있는 은행나무는 벌써 잎사귀를 다 떨어뜨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가랑비다. 쏟아지는 비도 아닌데 울긋불긋한 잎사귀들이 힘없이 떨어진다.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을 보니 왠지 몸이 움츠러든다. 아직은 춥다라고 말하기에는 이른 10월이 아니던가.

아내와 나는 딸아이 옷을 든든하게 입히고 집을 나섰다. 보건소에서 나와 독감 예방주사를 접종하는 날이다. 동네 사람들은 벌써 마을회관에 모여 있었다. 어른들은 마을회관에 들어가 계시고, 젊은 사람들(환갑 전은 젊은 사람 임)은 회관 앞에 있는 밤나무 밑에 모닥불을 지펴놓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쌀 수매에 관하여 이야기 중이었다. 정부 수매가가 형편없다고, 그냥 내다 팔려고 해도 값이 없다고.

"어제 방앗간에 줬는데 십삼만원씩 계산해서 내밀더라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돈을 내팽개쳐버렸다니까. 농사짓는 놈들 다 뒤지라고 지랄발광을 하는 거지 이게 뭐야."















ⓒ2005 이종득
이우영씨가 담뱃불을 불구덩이에 집어던지면서 말했다. 그는 어지간한 일에는 말참견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논농사 스무 마지기 정도에 밭농사 만여 평을 하는 농사꾼인데, 한여름에 풋고추 한 박스(10킬로그램) 값이 3천원 할 때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좋을 때도 있잖아, 하고 넘기는 사람이었다.

"다 집어치우고 노가다나 다니자구. 우리가 다함께 일년만 농사 집어치우면 똥줄 탈 거니까 말여. 감자 심으면 감자 값이 똥값이구, 배추 심으면 배추 값 똥값인데, 이제부턴 심어볼 게 없다니깐. 난 정말 올겨울에 나가서 안 들어올 작정이구만."

박남진씨가 참견했다. 그는 몇 해 전부터 논농사는 아예 작파하고 밭농사만 하는 사람이다. 더덕과 호박, 그리고 풋고추를 이만 여평에 나누어 심는데,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재미는커녕 마누라와 어머니 품값이나 겨우 했다는 것이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둘을 키우는 그는 정작 본인의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한 채 가을걷이를 포기하고 얼마 전부터 읍내로 나가 잡부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동네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비료 값이나 기름 값은 토끼 새끼처럼 깡충깡충 오르는데, 농산물은 거북이처럼 바닥에 기어다니니 죽으라는 소리지. 핸드폰이나 컴퓨터 다른 나라에 팔아먹는다고 농산물 사들여오는 거 보면 몰라. 농사꾼들이 봉이니까 그런 거라구. 핸드폰 팔아서, 컴퓨터 팔아서, 우리들에게 나누어주는 것 있나 다 서울사람들 잘 먹고 잘 살자는 데 목숨 걸고 하는 정치니까 그런 거라구. 아닌 말로 서울 사람들만 우리나라 국민이고, 농사꾼들은 노비나 뭐가 달라 막말로 머 빠지게 일해서 서울 사람들 밑 닦아주는 꼴 아녀."

우리 동네 새마을 지도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치하는 사람들 어쩌고저쩌고, 이 당 저 당 싸잡아 욕지거리를 섞어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거두절미하고 정치하는 XX들 다 잡아다가 농사꾼으로 살게 해야 된다니까. 그래야 농사꾼들 속 안다고."

지난해부터 농삿일 모두 작파하고 정말로 먹고 놀기만 하는 영수씨가 한마디 참견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논 천여 평, 밭 오천여 평에 풋고추 농사, 그리고 배추나 무를 도지 얻어 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몇년 동안 농사 지어 본전, 아니 진 빚만 수천만 원 된다고, 차라리 놀고먹는 게 낫다고 모든 일에 손을 놓고 올해를 보낸 것이다.

"허구한 날 하는 소리 입천장만 아프니까 들어가서 예방주사나 맞자고."















ⓒ2005 이종득
누군가가 말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농사꾼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생후 10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면서 농사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작년부터 줄곧 하는 생각이지만 늘 자신이 없다.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오늘도 여전하다. 기본적인 생활이 되어야 할텐데, 일 년 농사를 지어 천만원의 수입도 얻을 수 없다. 그 정도만 수입이 된다고 해도 나는 시골 생활을 절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난 몇년 동안 이곳에서 번 돈을 예금해본 기억이 없다면,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닐까. 있는 돈 다 투자하고 지금은 농협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개설해서 이천여 만원의 빚을 지고 있으니, 한두 해만 더 지나면 나도 억대의 빚쟁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IMF 이후 정부는 귀농 정책을 공공연하게 발표했다. 나 역시 그런 정책을 믿고 귀농을 결심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표고버섯 농사도 배워보고, 느타리버섯 재배도 배웠지만, 역시 자신이 없었다. 권장하는 사람보다 만류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도 내가 그 일에 얼른 뛰어들지 못하는 한 원인이고, 만류하는 사람 거의 다가 농사를 지어 재미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배추농사나 풋고추 농사도 시도했지만 현재까지 남은 것은 힘들었던 경험뿐이다.

회관 안에는 동네 어른들이 다 모여앉아 계셨다.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있는 한 가운데에는 내 딸이 엄마 품에 앉아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몇 년만에 본 갓난아이인 것이다. 할머니들은 내 딸을 안아보고 싶어 하시지만 낯을 가리기 시작한 아이는 제 엄마 품에 꼭 안겨있다.

군업1리에 미취학 아동이 2명뿐이고, 초등학생 역시 3명이 전부다. 중학생은 2명이고, 고등학생은 달랑 1명뿐이다. 앞으로 20년 후면 우리 동네의 논이나 밭에 곡식을 심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약에 그런 현상이 사실로 다가온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농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책으로 정치를 하는 지금의 현실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

한 나라에 농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리 모두(정치를 하는 사람이든 무역을 하는 사람이든)는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2005-10-28 19:38
ⓒ 2005 OhmyNews
2005-10-31 18: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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