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다녀오던 중 멋진 절을 하나 봤슴돠.
금둔사(金屯寺)임돠. 낙안읍성에서 지방도 817호를 타고
승주읍 쪽으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길 오른편에 있더군여.
백제시대 절이라고 함돠. 오래 됐지여. 아무렴~
여러 절을 다녀봤지만 금둔사 보고 가무작 놀랐슴돠.
아담하고, 예쁘고, 소박하고, 그림같고, 고즈넉하고...
내소사 보고 감탄한 적 있지만 개인적으로 금둔사가 맘에 듦돠.
특히 대웅전 돌계단을 거미줄처럼 덮고 있는 덩쿨이 예술임돠.
그만큼 사람 발자국을 타지 않았다는 증거임돠.
아무도 없었고 호두나무 외 하동에서 온 젊은 부부 뿐이었슴돠.
주말에 절에 가면 사람들 많아서리...딱 질색임돠.
가장 매력있는 점은 입장료가 없다는 사실임돠. 쿵야~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석교와 약수터, 절 앞마당에서 바라본 낙안읍성 전경,
보물 유적으로 향하는 기와 계단. 특히 대웅전 기왓장들을 눈앞에서 보는 맛,
담장길에 떨어진 은행잎, 탐스런 꽃 등 고개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악소리 남돠.
꼭 한번 들러보십쇼. 아래의 사진들은 금둔사를 돌아보며 대충 찍은 것임돠.
허심탄회하게 감상하시기를 바람돠. 쓸데없는 상상하지 마시고요.
나무아미타부르르르렁부르렁골골칠십조카핼애비니주구리말죽거리X탱구리...
금둔사 입구. 지방도에서 10m도 안떨어져 있슴돠.그게 매력임돠.
대웅전으로 향하는 돌다리. 유럽풍의 엔티크한 멋이 풍김돠.
위에서 본 돌다리임돠. 넝쿨이 돌들을 덮고 있슴돠. 베리굿임돠.
대웅전 돌계단의 넝쿨들. 사람이 찾지 않았다는 증거이네여.
금둔사 대웅전. 사람이 없으니까 넘 좋더군여. 입장료도 없고.
일주문. 여느 절의 일주문과 다른, 묘한 데가 있슴돠.
대웅전 기와. 상투적인 사진이라 죄송함돠. 담부터 잘하겠슴돠.
요사채인가여 절 안에 있슴돠.
약수터임돠. 이것도 야술임돠.
요거이 보물임돠. 탑과 부처상임돠. 몇호더라????
보물 보러 올라가는 돌계단. 작은 기와가 앙증맞슴돠.
이건 뭐...그냥 보시기 바람돠.
요거이 무시기 꽃인지 무자게 이쁨돠.
보물 부처상 앞 제단. 분위기 팍팍 살아남돠.
금둔사 종각. 보물은 아님돠.
금둔사에서 바라본 산임돠. 금전산이라고 하네여.
낙안읍성 전경임돠. 사진이 흔들렸네여.
낙안에서 승주읍 가는 길에 있는 상사호임돠.
다음은 금둔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임돠. 참고하시기 바람돠.
금둔사는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3-2번지 금전산(金錢山) 기슭에
자리한 백제고찰이다. 낙안민속마을에서 선암사와 서울순천 간
호남고속도로 승주 IC쪽으로 2km 지점의 지방도에 인접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한 산중 사찰이다.
금둔사를 맨 처음 창건한 스님은 백제 위덕왕(威德王) 30년(서기 583)
담혜화상(曇惠和尙)이었고, 신라 때 의상대사를 거쳐 구산선문 가운데
사자산문의 철감국사(澈鑒禪師)와 그의 제자 징효대사(澄曉大師)가
주석하여 종지를 펴던 선종가람이다.
그 전통과 사상은 보물로 지정된 경내의 3층석탑(보물 제 945)과
석불비상(보물 제 946)을 비롯하여 1999-2002년 까지 국립순천대학교
발굴팀에 의하여 8-9세기의 아름답고 정교한 무늬의 암ㆍ수막새 등
다량의 유구가 발굴된 것만 보아도 그 당시 금둔사의 사풍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금둔사는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낙안성이 함락되면서
전소되었으나, 숭유억불정책의 불리한 당시의 현실 속에서도
오롯한 선맥을 유지하여 오다가 17세기 후반에 와서 완전폐사가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83년 선암사 칠전선원에 주석하던 수행승
지허대선사(指墟大禪師)가 종단을 초월한 태고선원(太古禪院)을 개설하고,
고려말 임제 18대 적손 석옥청공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은
해동초조 태고보우조사의 전통한국불교의 특유한 조사선풍을
재현하려는 원력을 세우고 복원불사를 시작하여 현재 웅대한 대웅전과
태고선원 등 10여동의 전각을 세웠다.
금둔사의 1월 홍매는 우리나라에서 야생 매화꽃이 가장 일찍 피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금둔사가 위치한 금전산은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릴 정도로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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