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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나 장작에 구운 군고구마 먹고 싶어"
오솔길 2005-11-22 19:07:36 | 조회: 6478




















"자기야~ 나 장작에 구운 군고구마 먹고 싶어"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겨울밤 간식들
이경운(eco7317) 기자






찬바람 불고, 밤이 무척 길어졌다. 날씨로 보면 조금 억지를 써서 초겨울이라고 우겨도 될 듯하다. 그리고 겨울이 가까이 오면서 밤이 길어졌다. 이제 곧 세상이 어둠에 갇혀 낮이 올 것 같지 않은 겨울밤이 다가오리라. 긴긴 밤, 여름내 짧은 밤과 열대야로 설친 잠을 맘껏 자도 좋으련만 우리의 잠을 방해하는 것이 있으니 찬바람 부는 겨울밤의 출출함이다. 이놈의 위장은 밤낮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긴긴 겨울밤 동안 무엇으로 위장을 달래야 하나?















▲ 집에서 가스레인지 그릴에 구운 것인데, 장작불에 구운 것 만은 못해도 맛있습니다.
ⓒ 이경운
군고구마. 아,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노란 속살에서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며 풍기는 달콤한 고구마향. 밤 늦은 시간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저녁을 많이 먹어 위장이 비워지지 않았더라도 이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군고구마 얘기를 하다 보니 아내의 첫 임신 때가 생각난다. 11월 초에 회사로 걸려온 전화 한 통.

"자기야~ 나 장작에 구운 군고구마 먹고 싶어."

헉, 11월 초에 어디서 장작에 구운 군고구마를 산단 말인가 모처럼 뭔가 먹고 싶다며 한 전화였는데, 집에 가서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모퉁이 한 편에 서 있는 군고구마 굽는 통이 어찌나 반갑던지. 2000원을 주고 군고구마 4개를 사갔다. 그리고 난 그날 군고구마 네 개에 행복해 하던 아내의 얼굴을 보며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 호빵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있는 겨울 간식 입니다.
ⓒ 이경운
호빵. 이것을 빼놓으면 겨울철 간식을 말할 수 없다. 찬바람 부는 겨울 밤, 버스정류장 앞 가게에 있는 호빵통에서 꺼내 호호 불어먹던 그 맛. 요즘이야 호빵 안에 야채며 고기도 들어가지만 예전에는 오로지 단팥만이 그 안에 들어갈 자격을 갖고 있었다. 어릴 적 느꼈던 그 달착지근한 한입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요즘도 그렇지만 동네 슈퍼에서 다섯 개들이 봉지로 사와 밥솥에 넣어뒀다가 출출한 밤에 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예전에 비해 들어가는 단팥의 양이 많이 줄었다는 사실. 원가절감 때문일까?

그런데 호빵 생각을 하면 한 가지 엄청나게 헷갈리는 유사품이 있다. 찐빵이라는 것인데, 안흥찐빵이 대표이다. 호빵과 비슷하긴 하지만, '지식인'에 물어보니 엄연하게 다른 종류인 듯하다. 어릴 적에 호빵이 비교적 고가인 탓에 자주 사 먹지는 못하고 어머니께서 밀가루 반죽과 팥을 삶아 만들어 주시곤 했다. 때로는 그 안에 팥 대신 흙설탕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호빵과는 사뭇 다른 맛이다. 요즘도 출출한 저녁이면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군밤이라는 녀석도 참 좋은 겨울 간식이었다. 밤은 삶아 먹어도 맛있는데, 껍질이 검게 탄 군밤을 호호 불며 까먹어야 그래도 밤을 먹은 거 같다. 손바닥이 시커멓게 될 정도로 먹어야 겨우 배가 채워지는 '노력형' 야식이지만, 집이 시골이라서 다양한 간식 품목이 없었던 나에게는 별미였다. 더구나 밤은 당시 동네 산 어디를 가든 가을 내내 주울 수 있었던 것이라서 돈을 별도로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인 간식이었다.

아버지께서 쇠죽을 끓이기 위해 불을 대고 난 아궁이를 뒤적거려 남은 불에 밤을 자주 구웠는데, '뻥뻥' 밤이 터지면서 튄 불똥에 옷에 구멍도 많이 뚫렸다. 그래서 항상 두려움에 떨며 아궁이에서 멀리 떨어져 밤을 굽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필자는 아파트 밖에서 들리는 한마디 외침에 깜짝 놀랐다.















▲ 쫄깃쫄깃 찹쌀떡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입니다. 오죽하면 찰떡을 얼려만든 아이스크림이 있겠습니까.
ⓒ 이경운
"메밀묵 사려 찹쌀떡!"

아파트 단지에도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간식이 등장했구나 싶었다. 찹쌀떡 아저씨가 정말 통을 메고 다니며 밤 늦게까지 메밀묵과 찹쌀떡을 팔았는데, 요즘이야 그 재미있는 말투가 코미디 소재 정도로나 사용되지만 예전에는 겨울마다 골목에서 들리는 정겨운 소리였다. 생각해 보라. 추운 겨울밤 쫀득쫀득 입안에서 살살 녹는 찹쌀떡과 메밀묵의 오묘한 조화를. 올해도 그 아저씨, 꼭 우리 아파트 단지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 색깔이 예쁜 연시는 아들녀석에게 최고의 간식입니다. 시골집 광과 마루에서 시원하게 익던 연시가 그립습니다.
ⓒ 이경운
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시던 겨울 야식이 있었다. 차가운 마루 한구석에서 제 몸 붉게 물들이며 말랑말랑하게 익어가던 감. 추운 겨울밤 문풍지 사이로 밀려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입 크게 문 연시의 차가움이 잇몸을 따라 머릿속까지 전해질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요즘은 아들 녀석이 과일가게에 가면 꼭 연시를 사자고 조른다. 찬바람이 불고 나서 일주일 내내 녀석의 야식은 연시가 되었다.















▲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국물. 국물이 더 인기 있는 간식이랍니다.
ⓒ 이경운
어묵을 빼 놓고 겨울밤의 간식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어묵이야 거리를 오가며 아무 때나 먹어도 좋지만, 그래도 겨울밤에 찬바람이 불어줘야 국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법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취업준비하며 내려오던 길에서 먹는 어묵꼬치. 당시에는 돈이 별로 없어서 어묵은 하나만 먹고 국물만 두세 번씩 퍼먹곤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도 퇴근 후 저녁거리를 헤매다 보면 어묵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글을 쓰고 보니, 요일별로 하나씩만 골라서 먹어도 일주일을 거뜬하게 넘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 늦게 뭘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조금 걱정도 되긴 하는데, 글쎄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맛있는 겨울밤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여러분의 겨울밤 간식은 어떤 것이 있나요 미처 제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2005-11-22 11:29
ⓒ 2005 OhmyNews

2005-11-22 19: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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