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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농업을 생각하다
미루사과 2005-11-26 17:16:29 | 조회: 6266
모처럼 학교 동창들과 어울려 새벽녘까지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당연히 즐겁고 막힘없이 시원한 자리였는데, 그러나 간혹 이런 말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농민들 시위 땜에 못살겠다. 왜 하필 고속도로를 막고 X랄이냐?”
“가마니당 3만원 하는 중국쌀을 수입하는 대신에 16만원하는 국내 쌀값을 보조하니 납세자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빚은 지들이 지고서 정부에서 갚으라고 하니 에라 이 도둑놈아, 우선 네가 가진 자동차도 3천만원짜리잖아?”
평소 흥분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런 소리는 정말 뚜껑 열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뚜껑 열’려고 이런 땐 침착해야 합니다.
뻗쳐오르는 열을 누르고 한동안 그들에게 설명합니다.
왜 동창들 중 나 혼자 농부이고 친구들은 농업을 그저 하나의 산업으로만 보기 때문이지요.
그건 그들에겐 당연하고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난 먼저 농업이 “생명 산업”이고 “안보 산업”임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농업이 없고 쌀이 없으면 우리 모두 공멸함을 그야말로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우선 생명산업이라는 농업의 다기능성을 말합니다.
혹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했던 10년 전을 기억하십니까?
난 그때 직장에 있었는데요,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 소위 NTC (Non Trade Concerns)라는 단어 때문에 나라가 한바탕 들썩였습니다.
통상 담당자는 물론 언론 경제 사회단체 등등 모든 사람이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고 전혀 생각지 못한 개념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비교역적 기능’이란 농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동반 생산되는 식량 안보나 환경 보전등의 기능은 시장 가격으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교역이 되지 않는(non tradable) 농산물 생산국의 고유한 관심 사항(concerns)"이란 뜻이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으므로 당연히 UR협상에서 불리했고 당시 문민정부는 크게 곤혹했으므로 애꿎은 통상협상자의 목을 날렸지요.
요즘 유행하는 농촌 어메니티나 그린 투어리즘 같은 것이 여기에서 파생된 새로운 개념입니다.
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논이 없다면 장마철 쏟아지는 물을 어디에 담아두며 너희들 먹는 물은 어디에 보관하며 숨 쉴 때 쏟아내는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정화하겠는가 그 일을 하는 게 논이고 밭이며 과수원이다”
국토와 환경보호, 홍수 예방과 수자원 함양, 자연 경관 및 지역 문화 유지, 한계 자원에 대한 고용 유지 등을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농업은 솔직히 말하면 경영의 3요소 즉, 수익성, 안정성, 성장성이 타 산업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전세계의 모든 농업 정책은 식량증산을 목적으로 농지의 농외전용(農外 轉用)을 규제해 왔습니다.
만약 내 친구들 말대로 휴대폰과 자동차 선박을 팔아 남은 돈으로 식량을 전부 사 온다면 농지의 규제는 완전히 철폐될 것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농민은 살판납니다.
당연히 농지 값은 크게 오르고 도시의 땅값은 폭락하게 됩니다.
그동안 식량안보나 환경보전의 다기능성을 전체 국민이 공짜로 누려왔음이 이렇게 간단하게 증명됩니다.

2002년으로 기억되는데 중국마늘이 수입되면서 핸드폰과 자동차를 엄청나게 팔았다고 언론이 요란하게 짖었습니다.
정치인들 도시민들 참 좋아했지요.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 농민은 어찌됐던가요?
당시 국내 마늘 총생산량은 40만톤이었습니다.
kg당 가격이 2,500원이었으므로 총생산액은 1조원이었지요.
그러나 중국산 마늘이 겨우 3만톤 수입되자 kg당 1,500원이 되었고 당연히 총생산액은 6,000억원이 되었으므로 우리 마늘 농가는 가만히 앉아서 4,000억원을 날려버렸습니다.
농민이 도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바로 이런 부분이 공업부문에서 부담해야 할 보상의무 금액이 됩니다.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도는 28%정도이고 식품자급도는 열량 기준으로 5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이 수치는 전체 OECD국가 중 최하위인데요, 그러나 이마저도 포기하라고 합니다.
불과 몇 년전 걸프전이 발생하자 국제적인 에너지 위기가 왔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산업시설을 순번제로 유휴시키고 국민들은 차를 세워둔 채 걸어 다녔습니다.
그렇다면 삼면이 바다로 가로 막힌 우리나라가 최소한의 자급 식량도 없이 국제 통상마찰이 일어난다거나 식량 수출국(일명 케언즈그룹)의 곡물 가격이 폭등한다면 우린 꼼짝없이 그들의 식민지가 되어버릴 겁니다.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등이 EFTA(유럽 자유무역) 국가-즉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면서도 왜 최저한의 국내 식량산업만은 지키려 할까요?
자유무역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경제 대국 일본이 왜 국제적인 비판이 그토록 쏟아짐에도 자국의 식량산업을 보호하려 할까요?
식량자급 능력이 충분하고 농업 경쟁력이 우수한 미국은 왜 WTO 협상 이후 더 자국 농민을 보호 할까요?
바로 농업이 국가의 기간이며 안보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농촌 경제연구원에 근무하는 이 정환 박사의 “농업 구조의 전환, 그 시작과 끝”이라는 논문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국민 총생산액(GDP)에 대한 농업 총생산액의 비중이 40%에서 7%로 줄어드는데 걸린 기간을 조사했더니 네덜란드가 156년, 덴마크가 119년, 미국이 96년, 프랑스가 94년, 일본이 73년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불과 26년이 소요되었다.
또, 농업취업자 비중이 40%에서 16%로 줄어드는데 걸린 기간도 미국이 95년, 네델란드가 60년, 프랑스가 44년, 덴마크가 42년, 일본이 31년 걸렸는데 우리는 불과 14년이 소요되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나라의 산업 경제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농업부문의 적응 능력이나 산업간 조정 능력이 기본적으로 제약을 받았습니다.
선진국들보다 경제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으므로 농업 경영 규모의 확대랄지 농업경영자 세대교체, 농업기계화 등 이른바 구조조정이 원활치 않았고 더구나 정부의 정책은 더 늦으니 오늘날의 농업 위기가 있게 된 겁니다.
농민들의 부채 탕감 요구가 도덕적 해이라고 말하는 자 누구인가요?
그들에게 이런한 지표를 보여주고 당당하게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만 우리의 농업은 그나마 희망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들을 탈출시킨 사람은 선지자 모세였습니다.
그가 탈애굽 후 40년동안이나 황야에서 모진 고생을 하는 유대인을 놀라운 지도력으로 통솔할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이란 게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이 다시 하는 일이란 게 결국은 지상에 에덴동산을 세우는 일이 아닐런지요?
지금은 우리 농업과 농촌과 농민이 고통스러워 신음할지라도 장차 10년 후,
농업은 전업농 중심의 지속 가능한 생명 산업이 되고,
농민 소득이 도시 근로자 보다 5%정도 많으며,
농촌은 전 인구의 20%가 사는 도•농간의 삶의 공간이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농민 세상’을 만들어 줄 지도자를 그려 봅니다.
나는 오늘도 꿈을 꿉니다.

정신없이 자판을 두들기다 보니 엄청나게 긴 글, 고맙습니다.

정읍 농부 미루사과
2005-11-26 17: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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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6
  • 목사골 2005-11-28 22:36:27

    미루사과님 마음에 와 닿는 좋은글 잘 보았읍니다.
    위태로운 농업을 바로 새울 수 있을 진정한 지도자가
    참으로 필요한 시기 입니다.
     

    • 신바람 자연농 2005-11-28 21:25:26

      미루사과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농업을 희생시켜 대기업의 공산품을 많이 팔려다 주변 강대국에
      영원히 종속되고 국민의 건강과 국토의 환경에 많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섭니다.
      그럴수록 농업에 종사하시는 우리모두 희망을 가지시고 일제시대
      에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당신은 정말 애국자이십니다.
       

      • 노래하는별 2005-11-28 09:57:35

        요즘 너무들 마음고생이 많습니다 하기사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내시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 미소애플 2005-11-28 08:00:09

          이것이 우리들의 현주소요 특히 도시민도 더큰 부담을 같이고 살아가는 총없는 전쟁입니다
          저는 그래서 살길은 있는자들 돈주머니를 열게하는 방법은 맛으로 승부하는 길밖에 도리가 없다 찬단되어 이 농업을 하고 있답니다
          미루님 수고 하셨어요
           

          • 들꽃향기 2005-11-27 20:04:17

            미루사과님!!!
            몇번째 읽고 있습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될까 ....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죠~~
            정말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 하리 2005-11-27 17:46:48

              긴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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