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외갓집에 가고 싶다
정풀 2005-12-03 17:04:14 | 조회: 6233
외갓집은 참 멀었다. 서울에서 지도로도 이미 천리길을 넘어서는 남녘 마을이었다. 몇 년에 한 번쯤 어머니를 따라 나서던 유년에는, 가는 내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구만리 장천을 헤매거나, 천길 낭떠러지가 도사리고 있는 지구별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심정에 사로잡혀 잔뜩 겁을 먹곤 했다.

그러나 길고 고된 여로의 끝에 다다른 외갓집은 늘, 설화 속에나 등장하는 상서로운 외딴 섬의 풍광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지독한 멀미와 막막한 지루함으로 점철된 고행 길을 보상받고도 남을만한 값어치 있는 시간여행이었다.

어머니를 닮은 외할머니, 외할머니를 닮아 있는 외할아버지, 어머니처럼 생긴 외삼촌과 이모들, 형제나 자매같이 낯익은 외사촌들, 외갓집 마당을 닮은 논과 밭, 외갓집 기둥을 닮은 뒷마당 대나무, 외갓집 반찬거리를 닮은 뒷산과 앞들의 야생초들, 외갓집 초가지붕을 닮은 뒷산 양지바른 곳 조상님의 무덤들, 외갓집에서만 맡을 수 있는 수상하게 맛있는 여러 가지 냄새들, 그리고 분명히 남인데도 친척인 양 반갑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던 마을 사람들.

차라리 그토록 다가가기 힘든 먼 곳에 떨어져 있었기에 더욱더 간절히 '그곳에 가고싶'어했던 유년의 이상향이 바로 외갓집이었다.

지금 농촌에는 빈집이 많다. 정부 조사로는 2만5천여 동에 이른다고 한다. 이농, 폐농으로 폐가나 흉가로 전락해가고 있다. 빈집의 문제는 그 집으로 끝나지 않는다. 빈집이 많아지니 마을도 점점 비어간다. 집이 하나둘 비어갈수록 마을에 사는 인간의 무게나, 마을이 딛고 선 그 땅의 무게조차 따라서 가벼워져 간다.

농촌이 비어가는 동안 도시는 힘겹게 터져나간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과, 지나치게 많은 집들로 도시는 숨이 막히고 시민들은 도시를 벗어나보려 아우성을 치며 산다.

이럴 때, 농촌의 버려진 빈집을 도시민들의 쉼터나 삶터로 개조해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농촌도 좋고 도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고향을 잊거나 잃어버린 채 도시의 삶에 지쳐 있는 도시민들을, 어머니와 찾아가던 유년의 외갓집같은 시골집에서 쉬거나 살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정년퇴직자 100만 명을 귀농시켜 농촌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려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의 외갓집은 모두 빈집이 되고 만다. 그 누구도, 다시는, 외갓집을 찾아가지 못하게 된다.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2005-12-03 17:04:14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게시물 댓글과 답글 3
  • 하리 2005-12-04 12:11:46

    정년퇴직자를 귀농.. 좋은데요.

    한때 그런쪽에 관심이 있었는뎅.

    연세드신 분들이 시골에서 건강을 찾고.. 하시면 좋지요.
     

    • 정풀 2005-12-04 11:02:15

      그 외갓집은,
      경남 사천 곤명면 송림리입니다.
       

      • 풀벌레 2005-12-04 08:42:19

        외갓집..
        우리 아들 녀석들도 외갓집이라하면..
        자다가도 가고 싶어 합니다
        초자연적인 놀이..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자란 맛있는 먹거리..
        외갓집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정겨운 곳이 어디에...
         

        번호 제 목 닉네임 첨부 날짜 조회
        공지 후원자 전용 카카오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습니다. - 2024-08-23 124535
        공지 8월 20일 후원자님들 자닮농장 방문, 뜻깊은 자리였습니다.(사진있음) (54) 2024-05-27 584475
        공지 후원자 분들과 매월 말 줌(ZOOM)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 2024-05-23 488833
        공지 자닮농장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실시간 공개되고 있습니다. (13) 2023-05-19 1825502
        3889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7) - 2006-01-16 6822
        3888 이런 부침개는 어떠세요? ㅎㅎㅎ (11) - 2006-01-16 6615
        3887 농작물선정등 컨설팅요청 (3) - 2006-01-16 6643
        3886 샛별농원에서 행운의 500번째 회원님을 찿습니다... (10) - 2006-01-15 7153
        3885 돈주고도 살수엄는 하나뿐인 달력... (9) - 2006-01-14 6763
        3884 쇠똥구리처럼 살고 싶습니다. (5) 2006-01-13 6477
        3883 별님의 애인을 공개합니다.^^ (8) - 2006-01-13 6656
        3882 봄내음 (12) - 2006-01-13 6206
        3881 [오늘의 운세] 2006년 1월 12일 (음력 12월 13일 辛丑) (2) - 2006-01-12 6324
        3880 귤껍질차를 함 만들어 묵어볼라고 그라는디요... (10) - 2006-01-12 6422
        3879 친구야 친구/ 박상규 (3) - 2006-01-12 6546
        3878 이 처자를... (9) - 2006-01-12 6336
        3877 당신은 누구시길래... - 2006-01-12 5799
        3876 하리님과 통화후 (6) 2006-01-11 6332
        3875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4) - 2006-01-11 6733
        3874 짐 진 맨발로... (1) - 2006-01-11 6460
        3873 [오늘의 운세] 2006년 1월 11일 (음력 12월 12일 庚子) (7) - 2006-01-11 6259
        3872 하리님만 보세여-정토법당 '법륜스님'의 주례사 (14) - 2006-01-11 7175
        3871 자연을닮은사람들 1월 정기산행 공지 (7) - 2006-01-11 7109
        3870 할말이 없으면 침묵을 배워라.. (7) - 2006-01-10 6250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