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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외갓집에 가고 싶다
정풀 2005-12-03 17:04:14 | 조회: 6257
외갓집은 참 멀었다. 서울에서 지도로도 이미 천리길을 넘어서는 남녘 마을이었다. 몇 년에 한 번쯤 어머니를 따라 나서던 유년에는, 가는 내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구만리 장천을 헤매거나, 천길 낭떠러지가 도사리고 있는 지구별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심정에 사로잡혀 잔뜩 겁을 먹곤 했다.

그러나 길고 고된 여로의 끝에 다다른 외갓집은 늘, 설화 속에나 등장하는 상서로운 외딴 섬의 풍광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지독한 멀미와 막막한 지루함으로 점철된 고행 길을 보상받고도 남을만한 값어치 있는 시간여행이었다.

어머니를 닮은 외할머니, 외할머니를 닮아 있는 외할아버지, 어머니처럼 생긴 외삼촌과 이모들, 형제나 자매같이 낯익은 외사촌들, 외갓집 마당을 닮은 논과 밭, 외갓집 기둥을 닮은 뒷마당 대나무, 외갓집 반찬거리를 닮은 뒷산과 앞들의 야생초들, 외갓집 초가지붕을 닮은 뒷산 양지바른 곳 조상님의 무덤들, 외갓집에서만 맡을 수 있는 수상하게 맛있는 여러 가지 냄새들, 그리고 분명히 남인데도 친척인 양 반갑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던 마을 사람들.

차라리 그토록 다가가기 힘든 먼 곳에 떨어져 있었기에 더욱더 간절히 '그곳에 가고싶'어했던 유년의 이상향이 바로 외갓집이었다.

지금 농촌에는 빈집이 많다. 정부 조사로는 2만5천여 동에 이른다고 한다. 이농, 폐농으로 폐가나 흉가로 전락해가고 있다. 빈집의 문제는 그 집으로 끝나지 않는다. 빈집이 많아지니 마을도 점점 비어간다. 집이 하나둘 비어갈수록 마을에 사는 인간의 무게나, 마을이 딛고 선 그 땅의 무게조차 따라서 가벼워져 간다.

농촌이 비어가는 동안 도시는 힘겹게 터져나간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과, 지나치게 많은 집들로 도시는 숨이 막히고 시민들은 도시를 벗어나보려 아우성을 치며 산다.

이럴 때, 농촌의 버려진 빈집을 도시민들의 쉼터나 삶터로 개조해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농촌도 좋고 도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고향을 잊거나 잃어버린 채 도시의 삶에 지쳐 있는 도시민들을, 어머니와 찾아가던 유년의 외갓집같은 시골집에서 쉬거나 살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정년퇴직자 100만 명을 귀농시켜 농촌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려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의 외갓집은 모두 빈집이 되고 만다. 그 누구도, 다시는, 외갓집을 찾아가지 못하게 된다.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2005-12-03 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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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3
  • 하리 2005-12-04 12:11:46

    정년퇴직자를 귀농.. 좋은데요.

    한때 그런쪽에 관심이 있었는뎅.

    연세드신 분들이 시골에서 건강을 찾고.. 하시면 좋지요.
     

    • 정풀 2005-12-04 11:02:15

      그 외갓집은,
      경남 사천 곤명면 송림리입니다.
       

      • 풀벌레 2005-12-04 08:42:19

        외갓집..
        우리 아들 녀석들도 외갓집이라하면..
        자다가도 가고 싶어 합니다
        초자연적인 놀이..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자란 맛있는 먹거리..
        외갓집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정겨운 곳이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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