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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라산
진달래산천 2005-12-20 04:58:34 | 조회: 6045






영실 방향으로 한라산을 올랐다. 시작부터 묘한 놈을 만났다.
철지난 네잎클로버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 뭘까?




몇일간 많은 눈이 내렸다. 초겨울에 이런 눈도 드물다고 한다.
1100도로를 겨우 지나 차를 세워두고 걷기 시작했다.

영실 입구 휴게소에서 아이젠과 스패치 없인 오를 수 없다고 친절히 한마디 한다.
가격을 물어보니....음, 뭐 내 생명이 달린 문제니 그를 탓 할 수는 없다.
그냥 오르다 못가면 안가면 되지..하면서, 무시하고 그냥 갔다.




매일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그 얼마며, 스스로 정리하는 사람은 또 얼마인가.
그럴진대 나 여기서 묻힌들 무에 그리 아쉽겠는가




지리산에 마고할미가 있다면 한라산엔 설문대할망이 있다.
그 할망의 자식들인 오백나한들의 전설이 서린 능선.







상고대
안개, 서리, 눈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작품이다.
그중에 서리가 얼어붙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상고대 무리가 최고다.




제주도의 화산활동은 적어도 120만 년 전에 시작하여 약 2만5천년 전까지 4단계에 걸쳐 용암을 분출했다.
화산활동이 휴식을 취한 것은 모두 3차례로, 그 기간은 약 10만년 동안이다.
말하자면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 여인은 최소 2만5천년을 저렇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는 까마귀를 태양의 상징이라 보았던 것이다.
저놈도 그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는 중.







흔히 제주의 三多는 돌, 바람, 여자를 말한다.
이 셋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제주의 자연, 노동, 문화, 역사와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다.




제주 자연의 진수는 초원과 오름과 바다의 삼중주다.
그기에다 눈, 비, 바람, 안개, 구름, 태양이 부리는 조화를 만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니 제주에서 억세게 비 온다고 모질게 바람 분다고 탓하지마라.
그것조차 품에 안아야 겨우 제주는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에 하늘길 마루금이 있다면
한라엔 오름길‘둥근 금’이 있다.

오름의 곡선이 드러내는 부드러움과 완곡함을 나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성복시인은 ‘쏟아져내리며, 아득히 흘러가는’
'물 묻은 글자처럼 번지는 존재의 슬픔’ 이라 했다.




시인에게 오름은 여인의 이미지로 새겨진다.
'구비진 능선은 한껏 가랑이를 벌린 여인'으로,
'붕긋한 배와 처진 가슴을 드러내놓고 잠자는 중년여인'으로,
'부푼 배와 젖가슴 사이로 끼어드는 검은 나무 행렬'로 비춰지고 있다.




오름이 여성성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름다움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있기 때문이며 그 희생을 전제로 하는 산고의 고통 없이는
자연이든 예술이든 탄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비록 고통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아름다움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있다는 점이다.
환상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환상이 깨지는 순간의 고통 또한 아름다울 수 있으니,
고통과 아름다움은 환상의 배를 찢고 나온 일란성 쌍둥이라 할 만하다."

<이성복 사진에세이 '오름오르다' 中>




지리에 어느 봄날을 진달래와 철쭉으로 물들이는 세석평전이 있다면
한라엔 선작지왓이 있다.
1740m 높이의 거대한 윗세오름 부근 선작지왓을 붉게 채색하는
지리와 같은 봄날은 가히 죽음이다.
표현할 길 없어 죽음이다.




인생이란 끝없는 오르내림이고 막연한 기다림이고 바보같은 사랑이다.
제주의 눈 바람 구름 하늘 앞에서 난 윤대녕의 사랑에 관한 짧은 글을 떠올린다.


“사랑은 비와 같아서
하늘이 알아서 퍼부어 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2005-12-20 04: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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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10
  • 들꽃향기 2005-12-20 21:13:48

    와~~ 정말 멋지당 멋져~~
    넘 멋있습니다.
     

    • 나무신장 2005-12-20 20:22:12

      너무 멋져요.  

      • 진달래산천 2005-12-20 19:26:41

        따옴표 부분은 당근 인용이죠.  

        • 으아리 2005-12-20 12:46:21

          음악도 멋지고 글 또한 대단합니다.
          근데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어디까지가 진달래산천님 글인지 헷갈리네요^^
           

          • 방글님 2005-12-20 12:20:33

            오호라~ 너무나 멋집니다.. 예전에 갔던 한라산 생각이 나네요^^ 그때는 경치구경이고 뭐시고..추워서 죽을뻔 했다는 생각뿐 ㅋㅋ  

            • 하리 2005-12-20 10:16:57

              와........

              끝내줍니다................ 허거덩~~~

              캄사합니다. 진달래산천님 ^^
               

              • 강물처럼 2005-12-20 09:54:20

                진경에 좋은 글
                잘 일고 갑니다_()_
                 

                • 오솔길 2005-12-20 09:08:50

                  사진이 예술입니다.  

                  • 참다래 2005-12-20 08:53:25

                    감탄이 절로나네요..
                    눈덮인 한라산 귀경 함해야 할낀데...
                     

                    • 노래하는별 2005-12-20 08:46:49

                      멋지네요
                      제주도를 몇번을 갔어도 이런 느낌으로는 바라보지 못했네요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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