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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당대 최고 미인과 함께 해던 크리스마스 연극
파르 티잔 2005-12-24 11:47:11 | 조회: 6455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추억이 하나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특별하게 놀이가 없었던 시골마을에서 동네 교회에서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연극은 꽤 인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극은 대부분 아기예수가 태어나는 날의 상황을 연극으로 만드는데 내가 그 연극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교회에 다니지도 않던 내가 연극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이랬다.

당시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친구 녀석이 자꾸 교회에 가자고 하여 딱 하루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그날 크리스마스 연극의 배역을 정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여관주인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는 바로 그 여관 주인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관 주인의 부인이 있다는 것이다. 부인 배역을 맡은 아이는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모두들 부러워한 이유는 바로 그 아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역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 역시 교회에 나가지도 않는데 모세나 동방 박사 역을 맡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 날부터 학교가 파하면 교회로 달려 가서 한 달 동안이나 연습했다. 특별하게 대사도 많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연극인 데다 첫 장면이 바로 나부터 시작해서 긴장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당시 최고 미인과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나의 첫 대사는 "여보"였다. 막이 오르고 여관주인이 중앙에 앉아 있으면 내가 달려가서 '여봉'하고 최대한 간지럽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었다.

20년 전 당시 상황에서 동갑내기 여자아이에게 '여봉~~'하면서 간지럽게 대사를 하는 것은 파격적인 대사였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연습을 한 대사도 바로 그 대사다. 사실 지금 기억나는 유일한 대사도 바로 그 여보 소리였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시골마을의 크리스마스…. 흰 눈이 펑펑 내렸고 오후 7시가 되면 연극은 막을 올리게 되었다.

연극 의상은 아랍인들의 전통 의상인 머리에 두르는 헤자브를 해야 하는데 헤자브를 할 것이 없어서 집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보자기를 둘러썼는데 나일론 보자기가 미끌미끌해서인지 일반 끈은 자꾸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 바로 고무줄이었다. 탄탄하게 검정 고무줄로 고리처럼 만들어서 머리에 단단히 조여 맸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고 잠시 장내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막이 오르고 내가 뛰어가서 다소곳이 앉아있는 당대 우리학교 최고 미인에게 '여보옹…'이라는 대사를 해야 한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헤자브의 끝이 발이 밟혔다. 그 순간 머리를 죄고 있던 고무줄이 총알처럼 관중석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시 헤자브를 할 수도 없어 헤자브로 사용했던 보자기를 관중석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달려가서 '여봉~~' 외쳤다.

내가 너무 느글거리는 소리로 여보 소리를 외쳐서 그런지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됐어, 역시 난 연극을 잘해"라고 속으로 흡족해했다.

연극이 끝나고 왜 그렇게 웃었냐고 물었더니 매년 동일하게 진행되는 연극에서 내가 헤자브로 사용하던 보자기를 던져버리고 달려가는 모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 대사로 웃긴 것이 아니라 보자기를 던진 것 때문에 웃겼다는 것 때문에 실망이었지만 결과는 웃겼으니 내 역할은 제대로 한 것이었다.

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렸고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면 보냈던 크리스마스 이브는 유일하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날이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날의 긴장하고 있던 어린 나의 모습과 처음 여보 소리를 하면서 느꼈던 묘한 흥분과 부끄러움이 생각난다.

그때 나랑 함께 연극에서 부인으로 나왔던 동창은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지금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제 나에게는 평생 여보 소리를 해야 하는 곁님이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곁님과 함께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봐야겠다.

그런데 그 검정 고무줄을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여러분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2005-12-24 1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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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3
  • 하리 2005-12-26 09:07:47

    간만에 서정적인 글한편 올리셨구마요.

    여왕마마님과 함께 멋진 크리스마스 되셨나요. ^^
     

    • 산중 2005-12-25 16:09:17

      곁임과 함께 즐겁고 행복산 성탄절 보내십시요.  

      • 정도령복숭아 2005-12-24 20:42:29

        아하~
        고무줄 찾으러 가시나요^^
        곁님이 함께하니 좋으시겠네요
        즐거운 성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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