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저런 고민스런 일들로 인해 악양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다음날, 한통의 편지가 왔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도 많은 결심이 필요했었고 그때에 내게 큰 용기를 주셨던 분에게서.. 마음이 가득담긴 장문의 편지를 읽으며 차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강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밤새 이리저리 뒤척이며 몹시도 가슴앓이를 했던 그 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끝내 다 읽지 못한 편지를 주섬주섬 가방에 쑤셔 넣고 섬진강을 보기위해, 그리고 전라도를 만나기위해 길을 나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3박 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다시 문화센터...^^ 섬진강을 가슴에 가득 가득 담고 왔다... 한동안 보지 않더라도 그립지 않을 만큼,
섬진강의 발원지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길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임실부근 옥정호라는 댐에 모여있는 짙푸른 섬진강물까지를 보았을뿐.
조만간 면허라는 것을 따게 되면 첫 여행지는 섬진강의 시작점을 찾아가보자고 그렇게 지금의 아쉬움을 희망으로 바꾸어두었다..
"이제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네요.. 이곳 악양에서 만난 분들, 그리고 사랑방을 통해 만난 분들, 모두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큰 자연안에서 사람살이의 일들쯤 무덤덤해질 수 있는 그런 제가 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습니다 ^^
즐거웠습니다. 진심으로!!
아, 그리고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있지만 장구를 끝꺼정 배우지 못한게 제일 아쉬워요... 그만두려고 맘먹을때 장구 생각이 어찌나 나던지.. 벚꽃이 우수수 떨어질때 화개 벚꽃나무 아래서 신나게 한판 뚜들기고 싶었는데.. 몰아의 경지를 채 맛도 보기전에 중단하게 되어 너무너무 아쉬워요ㅠㅠ 차사랑님!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 별님이랑 나무님 땡땡이 치지 못하게 열심히 갈켜주세요. 나중에 짬나면 두사람한테 특강받으러 오게요.. 별님, 호두나무님 가르쳐주셔야 해요~ ^^
이상 다시 길떠나는 찬비였습니다! 악양의 봄이 못내 그리우면 꼭 다시 들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악양이라! 뒤쪽으로 지리산의 연맥들이 이어져오다 멈추어 져 너른 들판을 열은 곳, 들녁의 앞으로 섬진강의 그 유려한 흐름이 있겠구나. 해정아, 난 우리나라에 흐르는 많은 강중에 왜 섬진강이란 이름을 들으면 가슴설레임이 일고 있는지 모르면서 막연히 좋단다. 어쩌면 너른 들녘이 있는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이 감수해야했던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영남과 호남이 같은 젖줄로 자라기에 다른 곳의 이질적인 문화와 기질들이 비로소 어울려 질 수 있는 곳이라고 보기때문인지, 또 아니면 김용택의 누이야!로 시작되는 섬진강에서 시인의 가슴에 깊이 든 흙냄새가 좋거나, 그도 아니면 평사리를 무대로 쓴 박경리의 토지에서 만석지기 최참판 손녀로 태어나, 태어날때부터 아래것일 수 밖에 없는 길상이와 부부가 된 서희의 열린생각에 매료되어서인지 모르지만 이름만 들어도 지금 걷고 있는 듯한 꿈같은 정경이 펼쳐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퍼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 핏 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며 / 해 저물면 저 무는 강변에 / 쌀밥같은 토끼풀꽃..... 김용택님의 글은 섬진강과 전라도 사람들과 숨쉬는 소리가 있다. 그의 시에선 그가 곧 섬진강이고 섬진강이 곧 그여서 때론 시인도 강이요, 강도 시인이다. 그러나 섬진강의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을것이다. ......." (편지 중)
낙동정맥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으시고 지금은 금강의 기록들을 담고 계신 선생님께서 "섬진강이야말로 다른 곳의 이질적인 문화와 기질들이 비로소 어울려 질 수 있는 곳"이라고 쓰신 이 문장을 읽으며 가슴이 멍먹하였습니다. 저 가까이에서 흐르고 있는 섬진강의 그러한 모습들을 이야기들을 눈으로만 보았을뿐 가슴으로 제대로 느끼고 받아들이지는 못한것 같아요.. 앞으로의 다가오는 시간들은 정말 자닮이 그러한 어우러짐이 있는 공간이 되어가길 빌겠습니다. 죄송한 마음 크지만 문화센터 식구분들 부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