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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대보름이면 잊을 수 없다.
강물처럼 2006-02-02 11:39:17 | 조회: 6266
대보름이면 잊을 수 없는 집.

남들은 강남으로 내려간다지만
우리는 서울 이북으로 올라왔다.

보기에도 살벌한
토치카 같은 검문초소와
쭈볏쭈볏한 탱크 저지물이 볼썽 사납지만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리는
우리의 새 주소
북으로 시원하게 뚫린 아스팔트 통일로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십 오년 전
숨 죽이며 월남해 왔던 길
이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덧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기분이 되고
더구나 개구리 울음마저 자지러들면
밤중에 겁도 없이
맨발로 술찌거기 얻으러 평천리로 가던
착각마저 든다.

그래 때로 나의 요즘 귀로는
반가운 귀향이 되고
우리의 새 주소는 본적지 같다
평안남도 평양시 유동
양각도를 건너다보는 대동강가
내가 해엄을 배우고
매생이를 타던 곳

남들은 강남으로 내려간다고 자랑이지만
우리는 서울 이북으로 올라오길 잘했다고 여긴다.
(매생이는 거룻배같은 작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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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명걸의 “새 주소”란 시이다. 작가의 평범한 일상사를 적고있다
내가 좋와한 시로써 가끔 떠올라 애송할 때면, 시의 내용이 늘 무언가 나와 함께할
동질성이 있었으면 싶어서 찿아 보지만 아쉽게도 나와 공감할 부분이 도대체 없다.

나는 강북에 살지만 진관동쪽이 아니요, 더구나 시인과는 생면부지이다.
나는 따뜻한 남쪽이 고향으로 어린 때는 대동강이 아닌 남해 바다에서 수영을 배웠고...

시인의 고향은 이북의 평양이요, 한국전쟁때 월남해 서울의 강남에 살다가는 그곳이
한창 개발되는 70년대에 그는, 그린밸트와 군사지역으로 개발이란 염두도 못낸채 꼭꼭
묶여있는 강북의 진관리로 옮겨살면서 이런 저런 자신의 한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어쩐지 이 시가 나는 좋다. 아니 “새 주소”라는 이 시가 좋다기보다는
내가 좋와하는 진관리는 이 시가 있어 더욱 좋다고 함이 더 옳은 말일 것 같다.

나는 시간이 나면 늘 진관동을 찿곤 했었다. 대화행 3호선 전철을 타고 구파발을 지나
지축역에서 내리면 지축리를 지나 진관리가 있어 함께한다.

어지럽게 난립된 비닐하우스와 공존하면서 문폐대신 블록집들이 번호표를 달고 줄 맞춰
가즈런히 들어서 있는 동네 지축리를 관통하면 일영 가는 길이 나오고, 그리고 북한산과
의정부를 가는 산길을 따라 무성한 소나무숲과 더불어 진관리가 있는 것이다.

일영가는 길은 제법 넓고 깨끗하게 포장된 새길이지만 진관리를 관통한 의정부길은
좁고 초라한 2차선의 낡은 길이요, 허름한 집들과 가게가 길가엔 띄엄띄엄 놓여있다.
허름한 동네에 비하여 좁은 도로는 북한산을 오르는 입구로써 년중 내내 뻬어난 경관을
찿는 사람들로 길거리는 항상 북적거리고 버스도 만원이다.

나의 이곳을 찿음은 산을 오르거나 유원지 나들이가 아닌 이곳에 내가 좋와하는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블록벽에 스레트지붕인 허름한 집에 작은 탁자가 서너개 놓인 식당이라기도 어색한 간이실비집으로 순대와 국밥이 주된 식단이다.

순대를 안주로 약하고 가는 기포가 솟는 쌀막걸리의 맑은 술맛을 나는 즐긴다.
식당에 앉아 바라본 북한산 영봉, 그너머 하늘이 너무도 맑고 푸르다.
깍아지른 듯한 위용의 만경대를 바라보며 시원한 눈맛을 벗하며, 오소리감투를 섞어
순대 한 접시 앞에 놓고 서울막걸리를 하얀 보세기에 채운다.


그래서 가끔 찿곤했던 이곳 진관리. 그 진관리가 드디어 규제가 풀리고
마침네 개발이 시작되었단다.

작년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서 미루다가 어느날 찿아간 진관리는 벌써 집들은
모두 헐려 있었고, 아직 채 헐리지 않는 몇 집도 텅빈 채 사방이 적막산하였다.

물론 내가 그리도 애용했던 단골 식당은 벌써 자취도 없이 사라진 채,
개발을 위해 늘어선 중장비들만이 나를 위협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전 세밑이었다. 벌써 터닦이도 끝나 하늘을 찌를 듯 아파트의 철골이 한창
솟고있는 그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진관리를 나는 찿아 나섰다.
정월 대보름이면 잊지 않고 준비하여 내놓은 손맛 좋은 그 뚱보아줌마의
아주까리 나물을 잊을 수 없어서이다.

정초때면 꼭 준비하여 차린 나물요리 특별 식단, 좋와한 나를 위해 듬뿍 내놓은 아주까리 나물을 없어지면 또 퍼놓기를 몇 차례요, 그러고 일어서려면 집에서 먹으라며 또 비닐봉지를 챙겨주는 맘좋은 아줌마를 지금 소식도 모른채 나는 피마줏잎 나물을 그리워하고 있다.

식당이 있었던 자리도 알 수 없는 개발이 한창인 진관리에 지금 나는 새로 포장된 넓은
대로변에 서서 백운대 인수봉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로 흰구름만 떠갈 뿐 까치설날인데
텃새 까치는 자취를 감춰 보이지 않고, 까마귀만 까악까악 먼 산자락에서 들려와
나의 마음은 더욱 쓸쓸하다.

기회가 되면 나는 꼭 지축이나 진관리에 살고 싶었는데...
그래서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인제는 이곳에서도 개발이란 이름으로 잘리고 파헤치며
굉음의 진동에 묻혀, 현실도 꿈도 모두 사라져 버린 채이다. 이제 나에게 남는 건 무얼꼬
(06 2. 여강)
2006-02-02 11: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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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3
  • 으아리 2006-02-03 15:47:29

    따뜻함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하리 2006-02-02 13:22:45

      지축쪽이 개발이 되고 있군요.

      악양에 내려와서 산것이 일년이 훌쩍 넘었는데
      북쪽? 소식을 들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저도 제작년 봄까지만 해도 지축쪽 가끔 지나쳤지요.
      친한 언니네 시댁 이라 이야기도 많이 듣고 북한산도 종종 갔고요.

      몇년전 일산, 파주에서 살던 시절에 밤이면 가끔 완전 군장한 군인들이
      불쑥 나오고 훈련한다고 도로를 땡크들이 줄지어 다니던 그동네도
      은근히 좋아했었지요. 겨울엔 너무 추워서 괴로웠던 기억도 나고요. ^^

      3호선 타고 지나가면 차창밖으로 보이던 눈덮힌 북한산 자락이
      참 그리워집니다.

      허름한 순대국밥집 추억은 없지만서두요..
       

      • 노래하는별 2006-02-02 13:15:05

        강물처럼님 글을 읽으면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속에 돌아볼 수 있는 잔잔한 일상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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