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洋之皮(천양지피)는 不如一狐之液(불여일호지액)이라,
대저 사람이 사는 일에 때론 큰 고통을 넘을 때가 있습니다.
어줍잖은 문자를 쓰게 되었는데요, 천마리의 양가죽보다 한마리 여우 겨드랑이 털이 더 낫다 라는 뜻의 이 글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들 부모라는 사람들이 자식을 키움에 대부분 그렇습니다.
내 아이는 틀림없이 여우 겨드랑이 털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과 자기 확신으로 아이를 구석으로 몰고 있지는 않은지...
내게도 자식이 있습니다.
그것도 딸 하나, 여자 하나, 공주 하나, 이렇게 셋씩이나...
난 이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로 공부도 잘하고 이쁘고 착하고 기타등등인줄 알고 있었는데요,
둘째가 중학생이 된지 겨우 한달만에 전학을 가게 됐습니다.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을 받아 도저히 다닐 수 없다더군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딸아이가 밉던지...
그래도 내 새끼니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훨씬 더 시골로 옮겼고 겨우 일주일쯤 되었지요.
그리고 비오는 며칠 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소리를 듣고 발효실 창고에서 토착미생물 발효액의 온도를 조절하는데, 전화가 옵니다.
"아빠, 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학교까지 겨우 십분 걸리는 거리의 버스를 타긴 탔지만 중간에 내려 길을 잃었답니다.
부랴부랴 찾아 나섰더니 평소 다니던 교회에서 홀딱 젖은 모습으로 오돌오돌 떨고 있습니다.
난,
'아!! 이 아이가 아직도 상처에 신음하고 있구나' 직감하였고
아내는 계속 울기만 하는데 결국 담임선생님과 상의하여 큰도시에 있는 신경정신과에 갔습니다.
너무도 심한 상처가 한참 예민한 아이를 할퀴고 있는 중이라더이다.
약을 지어 먹이고 그날 밤, 아내와 두런거리는 딸아이를 지켜보기만 했지요.
둘째 누리
오늘 낮, 반가운 손님이 멀리 예천에서 왔습니다.
최 효열 박사, 사과 농가에겐 아주 유명하신 분이어서 몇몇 지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이번에도 전화가 옵니다.
"딸아이가 학교 옥상에서 자살하려 하는 걸 다행이 선생님 한분이 발견했습니다."
밥이고 뭐고 숟가락을 던지고 비상깜박이를 켜고 학교에 갔더니 상담실에 아이가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아내는 하얘진 얼굴로 정신조차 못차리고, 소리도 없이 쏟아지기만 하는 아이의 눈물...
가만 들여다 본 아이의 눈은 이미 초점도 없고 삶의 의욕도 없어 보입니다.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난 술을 마십니다.
많이 울어도 봅니다.
결국 아내는 아이와 함께 교회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분간은 아내도 아이도 그리고 늦둥이 막내딸도 못볼 듯 합니다.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
헛헛해진 마음으로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냉장고에서 도수 높은 술을 꺼내며 어두운 거실을 보니 왈칵 서러움 같은 거...혹은 두려움 같은 것도 몰려옵니다.
아이가 건강해지길...
마음의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길...
상채기 다 나아 이젠 딱지조차 없는 곱고 순결한 영혼이 다시 되어주길,
난 기도합니다.
그땐 이 귀염둥이 막내가 이렇게 벌서는 모습도 함께 볼 수 있겠지요.
늦둥이 예니
큰딸 미루
정읍 농부 미루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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