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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메리카 방문기
작은돌 2006-05-29 13:53:00 | 조회: 6450





아메리카로 가는 길은 멀었다.
나는 미국을, 그들의 이름인 ‘아메리카’로 부르기로 한다.

일본의 북해도 상공을 지날 때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고원 지대의 설경은
먼 여행길에 덤으로 얻은 볼거리.
영화 ‘철도원’의 무대로 익숙한 북해도의 산정은 이 계절에도 여전히 ‘설국’이다.
















아메리카 남부 중심인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로 향한다.
끝간데 없이 펼쳐지는 남부의 대평원을 대하는 순간 시계(視界)가 막막해진다.
그래서일까 운전에 집중하라는 듯
평원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양 옆으로는
곧게 뻗은 전나무들이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다.
열병(閱兵)하듯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숲의 그늘이 짙고도 깊다.


흑인 노예와 대단위 농장들로 유명했던 아메리카 남부 중심을
관통하며 지나노라면 면적의 광대함에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런 곳을 왜 고만고만한 우리 산천에서 대하는 광야(廣野)가 아닌,
날 일(日)자 넣어 광야(曠野)로 불러야 하는지 실감한다.
사방이 지평선의 연속인 광야(曠野)에 서면 해는 길다.
그리고 머리 위에 불을 이고 있는 듯 햇살은 뜨겁다.
우리의 복날 더위에 비견될 만큼 몽고메리의 오월은 벌써부터 무덥고, 하루는 길다.
‘자글자글 끓는다’는 말이 수시로 입에서 새어나온다.
이런 햇살아래 일하다보면
누구나 저마다의 피부색을 잃고, 살갗이 그을린 채로 ‘흑색 인간’이 될 것만 같다.



















초목지대의 몽고메리에도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기업이 그곳 먼 타지에
지난 2세기 전의 청교도들처럼 앞장서 진출해 있다.
이곳 앨라배마주의 가장 큰 공장은 한국인에 의해 건설되었고,
수천의 흑인 근로자들이 그곳에서 근무한다.
농장을 떠나 공장에 입사한 이들은 본능적으로 농사일에 익숙한 손길과
생활 습성이 배어 있어 일손이 낯설고 서툰 형편이다.


한국은 한해 50만 대의 자동차를 미국 시장에서 판매한다.
시장 점유율은 7~8%대. 한국 기업의 약진이 눈에 띄고,
때문에 수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현지 생산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진출과 함께, 아니면 그 이전부터 그곳에 뿌리 내린 한국 식당들도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달러를 벌어 안을 살찌우며 세계 속에 코리아의 이미지를 심는 사람들.
이들의 프런티어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몽고메리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백차별운동을 전개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25세 때, 처음 목사로 부임해 설교한 이래 수년간 담임목사로 일했던 덱스터 교회가 있다.
다운타운 중심지에 작은 안내 표지판과 함께 우뚝 서 있는 작은 교회를 바라본다.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항거해 비폭력 불복종의 성전(聖戰)을 전개해 거둔 승리는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곳 몽고메리를 인간의 존엄을 상징하는 성전(聖殿)이 되도록 만들었다.
예수, 성 프란체스카, 헨리 데이빗 소로우, 마하트마 간디...
앞서 길을 간 비폭력 불복종 전사들의 이름을 되뇌이며
둥근 지구처럼 윤회하는 역사에 관해 생각한다.
세월따라 퇴색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역사의 질긴 생명에 관하여...











다음 방문지는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와 오하이오주의 톨리도.
위도 45도에 육박하는 북부 공업지역은 기온부터 다르고,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썸머 타임을 실시하는 탓에 저녁 9시가 되어도 황혼 빛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인 GM, 포드, 클라이슬러사의
본사가 위치해 있을 정도로 세계 자동차 시장의 메카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들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져 이곳 현지에 연구소와 생산공장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아메리카인의 자존심이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심장부가 공략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시장의 미래가 어떠할지,
그들의 입장에서 전망해보는 것은 참 부담스럽고 염려되는 일이다.
길거리에는 갖가지 브랜드와 모양의 자동차들이 물결을 이룬다.
차종이 워낙 다양해 이색적인 차를 찾아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부질없다.













땅이 드넓고 커서일까?
아메리카는 사람들이 크고, 집이 크고, 자동차가 크고, 먹을거리도 크다.
‘미국은 모든 게 다 크다’는 말을 실감한다.
땅덩이가 큰 탓인지 날씨마저도 변화무쌍하다.
소나기와 여우비가 흩뿌리는 사이로 쨍쨍한 햇살이 내리꽂힌다.
길가에서 만나는 대리석으로 지은 대학의 풍경은 유서 깊고 여유로워 보이며,
녹음에 둘러싸인 집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상, 아메리카의 드넓은 대지의 변방을
여행이 아닌 취재길에서 스치듯 접하며 느낀 감상을 담아 보았다.
드넓은 넓이만큼 아메리카는 가는 곳마다 그 맛과 빛깔이 빚어내는
스펙트럼 또한 다양할 것이니,
허튼 감상의 조각들을 겹겹이 덧대어 붙여놓아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그만큼 아메리카는 광대무변하고 변화무쌍하다.





거듭되는 해외 취재 일정 속에서 많은 한국인 현지 근로자를 대한다.
그들을 대하며 매번 느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세우고, ‘Native Culture’에 눈과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한다.
허리는 본래 유연할수록 좋은 게 아닌가.
현지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의 일상은 무척 바쁘다.
부지런한 것으로 치자면 어디서나 세계 일류급이다.
현지 문화에 대한 식견을 갖출 겨를도 없이 대개는 눈앞의 일에만 집중한다.
그 모습이 매번 안타깝다. 국제화 시대에는 그래서는 안 된다.
이국 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탐사와 기꺼운 동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스테이크를 즐기는데 집중하라.
된장찌개를 먹을 날은 두고두고 많지 않은가.”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란 고인 물처럼 정체(停滯)되어 있는 모습으로
절로 다져지는 게 아닐 터이니 말이다.



*배경 음악/Hasta Siempre - Soledad Bravo(체 게바라여 영원하라)

2006-05-29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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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경빈마마 2006-05-30 07:21:06

    작은 돌님 먼길 다녀오셨군요.
    이 참에 큰~~돌이 되신것은 아닌지...

    반갑습니다.
     

    • 하늘바람아비 2006-05-29 20:16:46

      좋은 사진 좋은글 !! 잘봤읍니다 !!^^*  

      • 노래하는별 2006-05-29 17:20:57

        작은돌님이 홍길동이 되셨네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오늘은 부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오네요 ㅎㅎㅎ
        힘겹게 바쁘게 업무차 다니시는데 부럽다 그럼 좀 그런가요
        다니시면서 이러저런 문화적인 역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식견도 부럽구요 뭐 여러가지루다가 부럽고 싶은데요 ㅎㅎ
        수고 많으시네요 ^^
         

        • 들꽃향기 2006-05-29 15:41:18

          작은돌님 잘 다녀오셨네요.
          무사히 잘 돌아 오셔서 감사합니다.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을것 같은 이야기
          봐도 봐도 계속 전개될것 같은 사진들...
          정말 잘 봤습니다.

          시차에 적응하느라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요.

          문화에 대한 식견을 갖출 겨를도 없이 사는 인생에서 벗어나야죠...

          또 많은 이야기 털어놔주세요.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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