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지나는 길
시카고 공항 면세점에서
아들 선물하려고 사온 팽이가
휘감아 돌리는 가냘픈 실의 힘으로 뱅뱅뱅 잘도 돈다
흔들리나 쓰러지지 않고 이내 중심을 잡고 돈다
곡예하듯 외줄타기를 잘도 하고
볼펜 끝에도 사뿐히 올라타서 뱅글뱅글 돌아간다
삼각뿔 모양으로 솟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처럼
꼭짓점을 하늘 삼아 그냥 꼿꼿이 서 있는 게 아니다
발은 바닥을 딛고 서 있으나
몸통은 언제나 이리저리 흔들흔들
중심은 미세한 떨림으로 비켜나 있다 비어 있다
그래, 저 놈은 저리로 숨을 쉬는구나
그러니 지치지도 않고 뱅글뱅글 잘도 돌아가는구나
밖으로 밀어내는 원심력이
안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서로 팽팽하게 밀고 당기며 그 힘으로 도는 거였구나!
미세한 틈만큼 유연하게 허리 돌려가며
뱅뱅뱅, 팽이는 잘도 돌아간다
흔들리지 않고 살아 있는 목숨이 어디 있다던가
꽃은 흔들리며 붉게 물들고
나무는 흔들리며 그늘 빛을 살찌우고
감포 감은사지 쌍둥이 석탑도 노을빛에 흔들리며
천년 세월 이겨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산다는 일은 흔들리는 것
흔들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얘기
중심은 아니되 산정(山頂) 닮은
내 마음 속 무수한 고원(高原) 만들어
숨이 지나는 그 길 따라 하냥 기어오르다가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데워진 자리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 깊은 곳 이리저리 뛰노는 양떼를 치러
초목 우거진 고원 가로질러
다시 유목(遊牧)의 길 떠나는 것
중심이 비어 있는 팽이는 잘도 돌아간다
탑돌이 하듯 비어 놓은 중심 따라
내 몸도 이리저리 흔들흔들 돌고 돈다.
-허튼 자작시
물 밖의 몇 나라 취재길에 오릅니다.
먼길, 돌고돌아 잘 댕겨올랍니다. 수고들 많이 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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