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싫은 소리
도요새 2006-08-05 11:18:28 | 조회: 7174
* 싫은 소리 - 윤구병


점심을 먹고 잠시 또 음식 문제로 봉선씨에게 싫은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죽을 많이 끓여서 점심때 마저 먹어야 쉬어 버리지 않는데 금란씨와 봉선씨만 그 죽을 먹고 우리 밥그릇에는 새로 지은 밥을 퍼놓았다. 나도 죽을 달라고 해서 먹었다. 그래도 남아서 내가 밥통을 들여다 보고 마저 그릇을 퍼서 먹었다. 과식을 한 셈이다. 두부도 내놓은 것이 약간 쉬는 기운이 있고 국도 남기면 버릴판이다. 그런데 상에는 풋고추와 들깻잎에다 구운 갈치토막, 김치가 더 놓여있다. 싫은 소리가 될 줄 알면서도 한마디를 더 했다.
옛날에 시골에서 여름이면 식은 꽁보리밥에 된장과 풋고추만으로 점심과 저녁을 때운 까닭이 있다. 한창 바쁜 때에 어느 겨를에 굽고 끓이고 여러가지 반찬 마련에 신경 쓸 틈이 있겠는가. 음식이 쉬려는 기미가 보이거든 다른 반찬 내놓지 말고 그것으로 내놓아라. 그리고 많이 만들어서 음식을 쉬게 놓아두고 게다가 한 번 상에 올린 것을 다시 올리지 않고 식탁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다른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을 버려라,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것은 큰 죄악이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여름 내내 쉰 음식을 혼자 부엌에서 몰래 먹고 밥이 너무 쉬어 입에 대기 힘들면 찬물에 빨아서 먹는 모습도 보았는데 어렸을 적에는 궁상스럽게 여겼지만 지금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니 참 거룩하게 보인다. 앞으로는 반찬도 세가지 정도로 한정시키자...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밥을 먹고 남자들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내기' 처녀들이 이제 무얼 자꾸 내다버리는 버릇을 고쳤으면 좋겠다.


-----------------------------------------------------------------------------------------


* 새끼를 꼬면서 - 윤구병


요즈음 시골에는 새끼 꼬는 사람이 없다.
가마니 짤 일도 없고 삼태기니 멍석 짤 일도 없고
지붕에 이엉 얹을 일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밖에 이것저것 묶는 데는 비를 맞거나 땅 속에 묻어도 썩을 염려가 없는
가볍고 튼튼한 비닐 끈이 있다.
지퍼 달린 비닐포대,
멍석 열 개보다 더 넓으면서도 한 손으로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는 비닐깔개,
가볍고 튼튼한 비닐삼태기 ...

이맘때면 동네 사랑방에 호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손바닥이 닳도록 새끼를 꼬면서
밤늦게까지 정담을 나누던 마을 어른들은 이제 모두 환한 형광등 아래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연속극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다.

싸릿대에 꿴 곶감을 걸려고 새끼를 꼬았다.
새끼를 꼬려면 먼저 볏짚을 잘 골라야 한다.
콤바인으로 벤 짚은 기계 속에 들어가 한번 몸살을 앓아서 볏짚으로는 질이 좋지 않다.
다행히(?) 우리는 낫으로 볏짚을 벴다.
요 몇 년 사이에 낫으로 볏짚을 베는 사람이 우리 마을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200평 한 마지기 벼를 콤바인으로 베어
자동으로 탈곡까지 해서 포대에 담아주는 데 만오천 원에서 이만 원 내면 되는데,
하루 꼬박 장정이 낫으로 베도 200평을 베어 묶기 힘드는 고생을 누가 사서 하랴.
우리가 서툰 낫질로 벼를 베는 모습을 보고
볏단을 묶으러 나온 마을 어른들이 쯧쯧 혀를 찼다.
'논바닥이 질어서 콤바인으로 베기 힘들어서요.' 어쩌고 하면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낫으로 벼를 벤 덕에 새깨 꼬기 좋은 볏짚은 얻은 셈이다.

이렇게 낫으로 베었다 해서 모두 새끼 꼬기에 알맞은 볏짚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은 것으로 키가 큰 것, 대가 실한 것을 골라야 한다.
고르고 나서도 할 일이 많다.
벼가 달려 있던 모가지 부분을 한 움큼 쥐고
나머지 손의 손가락을 갈퀴처럼 벌리고 구부려
북데기를 거꾸로 벗겨내는 작업을 하다보면 손가락 마디가 볏짚에 쓸려 얼얼하다가
나중에는 피가 맺힌다.
농사꾼들 손이 갈퀴처럼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과 옹이가 박히는 까닭을 알겠다.

북데기가 벗겨지고 심만 남은 볏짚으로 새끼를 꼰다.
알맞은 굵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면서
하나의 크기가 일 미터 남짓한 볏짚들을 알맞을 때 알맞은 곳에 끼워 넣어
하나의 긴 새끼줄로 이어지게 하는 데는 여간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잘못하면 새끼가 굵어졌다 가늘어 졌다 하여
땔감 묶는 데나 쓰일까 다른 데는 쓸모 없이 되기도 하고,
또 새로 끼워넣은 볏짚 자리가 약해서 조금만 힘을 써도 끊어지기 일쑤다.

어린 시절에 익힌 뒤로 마흔 해가 넘게 꼬아보지 않던 새끼를 꼬면서
머릿 속에 오가는 생각이 많다.
차라리 면소재지까지 걸어서 오가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들여서라도
비닐 끈을 사다가 아랫집 할아버지 처럼 간단하게 꿰어 걸었더라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짓이 밥값이나 제대로 되는 걸까
그러잖아도 제초제도 안 쓰겠다. 농약도 안 쓰겠다, 화학비료도 안 쓰겠다.
하다 못해 닭똥이나 돼지똥을 발효시켜 만든 유기질비료도
항생제가 든 사료를 먹인 것이라서 못 쓰겠다 하여
고생은 고생대로 해가면서 짓는 농사꼴이 말이 아니어서
동네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판에,
밭에 비닐을 깔지 않겠다는 고집은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비닐끈마저 쓰지 않겠다고 하여 새끼를 꼬는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저 사람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그 동안 저런 생각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면
그 학생들 무얼 배웠을까 의심하게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휩쓸리며 두 손을 비비고 있노라니
그래도 새끼줄은 한 뼘 한 뼘 길어져 간다.
그리고 처음에는 굵었다 가늘었다
마치 쇠무릎풀처럼 가관이던 새끼줄이 차츰차츰 고르게 꼬여간다.
그리고 처음에는 흩어지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제법 새끼줄 이어짓듯이 개똥철학도 새끼줄 갈피에 섞여서 한데 이어진다.

지금은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새끼꼬기는 농사일의 기본 가운데 하나였다.
이 기본이 서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발에 신는 짚신, 비 오는 날 몸에 걸치는 도롱이 ,
곡식을 넣어 말리고 때로는 방바닥에 장판 대신 까는 데 쓰이는 여러 가지 멍석,
곡식을 담아 보관하는 망태나 가마니,
지붕을 이거나 울바자를 두르는 데 쓰이는 새끼에서
아이를 낳고 나서 문간에 내거는 새끼줄이나
초상 났을 때 허리띠 대신 허리에 묶는 삼베 새끼에 이르기까지
새끼줄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처럼 농사일과 삶에 기본이 되는 새끼줄은 머다나 굵기와 길이가 달랐다.
그러나 저마다 다들 지푸라기 하나하나를 엮어서
한 줄기 줄로 잇는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사랑방에 한 데 모여 둥그렇게 호롱불을 가운데 두고 앉아
새끼를 꼬던 우리네 어른들은 그 사이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혹시나 서로 다른 개인들이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되는 방식도
새끼줄을 꼬아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지나 않았을까
쓰임새에 따라 가는 새끼, 가는 새끼, 굵은 새끼, 긴 새끼,
짧은 새끼를 꼬듯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 아이와 어른의 관계,
이웃과 이웃의 관계가 어떤 끈으로 어떻게 묶여 하나가 될지를 가늠하여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의 새끼줄을 꼬아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여 마을 공동체라는
평화롭고 수천년 지속 가능한 가능한 삶의 세계를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가 값싸다, 편리하다 하여
공장에서 기계로 꼰 비닐끈을 사다 쓰려고 길을 나서는 순간
혹시 우리는 이런 소중한 성찰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결과로 모든 인간 관계, 사회 관계,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관계를 기계화하는 것이나 아닐까

새끼를 다 꼬았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면소재지를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 새끼줄에 싸릿대에 꿴 곶감을 걸어 처마 밑에 매달았다.
곶감과 싸릿대와 새끼줄,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늦가을의 하늘빛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가져온 곳 - '잡초는 없다' (윤구병 지음, 보리 펴냄 )

---------------------------------------------------------------------------------------

* 화장실 수건 - 도요새

일상의 빨래감 중에 화장실에서 나오는 수건은 정말 많다.
아무리 여러번 쓰고 냄새가 날 때쯤에 빨래통에 집어 넣는다 해도 특히
습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엔 그 빈도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드는 물이랑 세제, 전기 사용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5년전에 식탁용 하얀색 면 냅킨 몇개 묶음을 사다가
화장실용 수건으로 사용해 보았다.
다른 식구들에게 이런저런 얘긴 안하고 그냥
항상 하얀 나만의 수건을 가는 옷걸이에 걸어서 평상시엔 햇빛 잘드는
방안 어느 곳이나 마루 화장실 가까운 데 걸어놓고 화장실 들어갈 때마다
그 옷걸이채 가지고 들어가서 사용하거나 물로 씻고 나와서 밖에 걸려있는
'수건'에 닦는다.

처음 살때는 몇개 샀지만 평상시에는 거의 하나 가지고 계속 사용하게 된다.
얆아서 가끔 물로만 몇번 빨거나 빨래비누로 빨아도 햇빛으로 일광 소독이
되기 때문에 여름이어도 절대 냄새 나는 법이 없고 일반 수건보다 부피도 작고
가볍고 훨씬 잘 마른다.
그리고 따로 세탁할 필요없이 그때그때 물기가 많다 싶으면 그냥 한번 꾹
짜주거나 사용하고 바로 화장실에 놓아둔 빨래비누로 한번 쓱 문질러서 빨아서 옷걸이에 걸어 가지고 나오면 땡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크고 수분이 잘 건조 되지 않는 형태로 짠 수건을 습기 많은
그것도 여름에 항상 화장실에 걸어놓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렇게 항상 수건을 갖고 들어가거나 나와서 수건에 닦는 것이
불편하지 않나 싶지만 실제로 5년 동안 사용해본 저로서는
습관이 되면 밥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되고
내 수건을 잊고 샤워를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일반 수건을
쓸 때 느끼는 기분은 '너무 사치한다. 별로 쓰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전에는 몰랐는데 일반 수건은 너무 푹신푹신 무겁고 감촉이 거칠다는 것을
나의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래도 내 개인 수건을 쓰니가 공동으로 쓸때보다 훨씬
좋은거 같습니다.
2006-08-05 11:18:28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게시물 댓글과 답글 1
  • 노래하는별 2006-08-07 15:45:48

    지혜가 담긴 글들입니다
    이렇게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 될 수있을거 같은데요 ^^
     

    번호 제 목 닉네임 첨부 날짜 조회
    공지 후원자 전용 카카오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습니다. - 2024-08-23 124444
    공지 8월 20일 후원자님들 자닮농장 방문, 뜻깊은 자리였습니다.(사진있음) (54) 2024-05-27 584005
    공지 후원자 분들과 매월 말 줌(ZOOM)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 2024-05-23 488385
    공지 자닮농장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실시간 공개되고 있습니다. (13) 2023-05-19 1825006
    4829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자농삼팜에서 "무농약재배인증"을 받았습니다. (8) - 2006-10-05 6896
    4828 풍성한 추석 맞으시기를... (2) - 2006-10-05 10489
    4827 가을.... (4) - 2006-10-04 9787
    4826 산다는 건 - 2006-10-04 5692
    4825 행복한 사람만들기 (7) - 2006-10-04 6090
    4824 별님 어디가요?? - 2006-10-03 9641
    4823 얼음 이라는 과일입니다. (7) 2006-10-03 6503
    4822 동천 나눔을 하렵니다......^^* (2) - 2006-10-03 6688
    4821 벌꿀과 항상제 - 2006-10-03 5740
    4820 제주도 방언 (4) - 2006-10-03 6117
    4819 제주도 방언 좀... (5) 2006-10-03 6928
    4818 문득 그리워지는 가을날.. (1) - 2006-10-02 7476
    4817 마음먹기 따라... - 2006-10-02 6115
    4816 이가을에 함께 하고픈 사랑 (2) - 2006-10-01 7335
    4815 이런 아름다움이 가을속에.... (4) - 2006-10-01 6858
    4814 밭 마늘 (2) - 2006-09-30 6432
    4813 있는 그대로의사랑 (2) - 2006-09-29 7379
    4812 걱정 없습니다. (2) - 2006-09-28 6921
    4811 우리의 만남 감동 그 자체였지요...^^ (1) - 2006-09-29 6858
    4810 감나무 조심... - 2006-09-28 7306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