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
산이든 뭐든, 가서 보면 뭔가 흥이랄지 감동이랄지 하는 걸 느껴야 하는데
난 도무지 산을 보면 그냥 산이더라구요.
지난 가을,
숨결님과 들꽃님, 으아리님 오솔길님등이 내장산 등반을 한다고 하기에 사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동갑내기 친구라는,
농업 대선배이자 농촌운동한다고 그야말로 쎄가 빠지는 조 영상이를 모른체 할 수는 없어서 난생 처음 산을 하루종일 따라 다녔습니다.
근데요,
이게 또 다닐만 하더라구요.
하여 요샌 시간만 나면 주변의 산을 뒤지고 다닙니다.
김밥 한줄과 사과 두어알 베낭에 넣고 가다가 쉬다가,사진찍다가 먹다가, 봉우리에 오르다 그마저 싫으면 그냥 내려오고...
대한이가 소한이네 집에 놀러왔다 얼어죽었다는 오늘(小寒),
입암산에 올랐습니다.
이곳 입암산엔 충무공께서 정읍의 초대 현감으로 계시던 시절 산성을 쌓아 놓기도 했던 곳입니다.
유난히도 그악스럽게 눈보라가 휘몰아쳐 산성주변만 둘러보다 그냥 내려왔는데요,
시내의 어느곳에서 소주한잔 하다보니 충무공을 그려낸 소설 '칼의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여 서재에서 칼의 노래를 꺼내 정말 가슴을 때렸던 문장을 찾아냈습니다.
전란속의 통제사 이 순신의 절박함이 통째로 묻어나는 명문 중의 명문입니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온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는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어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이 글을 옮겨 적으며 또 몇장의 사진도 생각이 납니다.
얼마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던 60대 중반의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안나 푸르나를 등반하며 촬영한 사진이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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