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오정동 청과시장에서 그대를 만났을 때
난 이십이년 세월을 건너온
미흔 넷의 지난 세월 거울속을 바라봅니다.
붉은 흙이 묻은 운동화를 신고
때에 절은 실장갑을 끼고 힘겹게 사과박스를 내리다가
문득 뒤꼭지가 간지러워 돌아본 그 자리에
아직도 그때처럼 생머리, 흰 얼굴의 그대가 서 있음을 알고
어색하게 웃은 내 입가에는
아니, 내 눈가에는 주름살이 서너개쯤 있었겠지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줄 과일을 사러 왔다가
이십년전 내 목소리, 내 웃음소리를 용케도 기억해 냈다던
그대는
여전히 목이 길었으나 역시
턱밑의 주름살을 감추지는 못했더이다.
그대와 함께 살았으면 했던 지난 시절 거울속에는
화염병을 던지고
노동판에서 등짐을 졌던 내 젊은 시절도 있고,
토슈를 신고 깡총거리며
누레예프라는 무용수를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던 그대의 젊은 시절도 있습니다.
흐릿해진 눈동자로 만난 마흔네살의 우리는
내 남루한 모습이 순간 부끄러워져 많이도 더듬거렸는데또 예전처럼 어루만져주는 그대의 한마디,
"기어이 꿈 이루고 사네"
순간 나의 어깨가 절로 넓어졌고 그대의 하얀 얼굴을 다시 쳐다봅니다.
세월의 두께는 그대의 목에 감긴 주름살과 내 이맛살로 켜켜이 앉았고
이제서야 무에 그리 안타까운게 많기도 하여
영문조차 없이 흐지부지 놓아 버린 서로의 끈을
새삼스레 손에 쥐고 만지작거려야 했는지요.
그대가 사는 땅에도 삶에의 투쟁이 있고
나 역시
그대를 잊은만큼의 자리에
그 만큼의 쓸쓸함과 끈적한 삶의 애착이 있습니다.
이젠,
그대와 나
이렇게 늙어갑니다.
편안하시길...
아직도 가냘퍼 애틋한 그대여.
정웁농부 미루사과
파도였나요-한 경애
*누레예프- 루돌프 누레예프, 50~60년대 세계 최고의 남자 무용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