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여기 정읍은
모든게 맘에 들수는 없겠지만, 제대로 된 서점이 없음이 가장 아쉽습니다.
물론 인터넷으로 못살 책이 없겠으나 인터넷으로 사기엔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하여 어떤책을 살지 정하지 못하였을 때, 혹은 시간이 널널할 때면 전주의 아주 큰 서점을 이용합니다.
20년이 넘게 다니는 곳인데 엊그제도 오후를 내내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이것 저것 책을 뒤지다 썩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찾았지요.
책이란 게 많이 쌓이다 보면 분류하는 방법도 노하우가 생깁니다.
난 문헌정보학(도서관학)을 공부했음에도 듀이 10종 분류에 따르지 않고
서재의 가장 구석진 곳에는 전집이나 text등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을 꽂고,
그 안쪽의 오른편은 흔한 소설류를 정리 합니다.(가장 많이 빌려가고,빌려주기에 편하므로)
그 반대쪽은 사회과학이나 고서적류,
그리고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한가운데는,
보존가치는 있으나 두세번 읽기는 좀 지루한 책을 정리 하지요.
이번에 산 책은 특이하게 만화책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보존 가치가 썩 뛰어난 책이란겁니다.
젊은 만화가 "박 건웅"이 쓰고 그린 "꽃"이란 만화인데요, 4년이 걸려 완성했다는 이 책은
형식과 내용, 그림과 완성도 모두백점을 주어도 무방한 책인 듯 합니다.
판화 기법으로 그려진 이 만화책에는 대화나 지문이 단 한자도 없습니다.
하여 오랜 공력을 들였음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그림들을 두세번씩 들여다 보고서야 책장을 넘기고 뜻을 이해 할 수 있지요.
아마도 독자들의 상상력을 최대 공약수로 높이기 위한 장치인 듯 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파에 사소한 도움을 협조하지 않아 징용에 끌려가는 아버지와 전쟁에 내몰리는 아들,
그리고 심지어 아름다운 딸은 위안부로 전락하는 모습을 과장없이 담담하게,
그러나 힘있는 판화적 기법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여러 곡절을 지나와 남북 분단기의 치열한 이념투쟁이 그려지면
미전향 장기수와 여성 빨치산의 일생과 사랑을 후반부에 담아냅니다.
이 부분은 책을 미쳐 잡기전 민중해방이 끝난 이 시대라면 이데올로기의 진부함을 혹 걱정하는 독자들을 사뭇 안심시킵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사명감있는 극 전개의 무게를 잃지 않으려 함이 책을 더 알차게 만들거든요.
해방전부터 전쟁 끝무렵까지를 관통하며 치밀한 구성으로 서술한 방대한 이야기를 젊은 작가는 훌륭하게 소화해 냈지요.
이 겨울 끝,
두세번쯤 읽으면 한결 의미있는 봄이 될 듯 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서재에 보존용 도서로 손색이 없겠습니다.
정읍 농부 미루사과
거리에서-김 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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