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세척한다는 것.
미루사과 2007-09-14 23:34:10 | 조회: 7239

지리한 가을 장마가 자그마치 14일간 계속되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나자 수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사과나무는 주렁주렁 달린 사과를 마구 떨어뜨러더군요.


료카 품종 하나에서만 약 30박스를 주워냈습니다.


얼마나 아까웠던지 아내는 허리굽혀 주울때마다 눈물 한방울씩을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나는 그 위를 리어카로 밟으며 지나갑니다.


과원 한구석을 굴삭기로 파고 낙과(落果)를 묻으며


이젠 끊은지 오래되어 그 맛의 기억도 가물가물한 담배가 지독하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저녁부터 감기 몸살이 시작됩니다.


얼마나 아프던지 몇번은 정신을 놓기도 했었나 봅니다.


아내는 그러찮아도 만사가 짜증나고 귀찮으련만,


밤사이 내 곁을 뜨지 못하고 겨드랑에 손을 넣었다가 물수건을 이마에 올렸다가 이리저리 애닳아 합니다.(쯧쯧~~ 서방이 뭔지...)



감기란 게,


약을 먹으면 일주일만에 낫고, 약을 안먹으면 칠일동안 아프다더니....


병원에 다니고,


먹었다 하면 병든 달구새끼 모양 꾸벅대게 만드는 약봉지를 여드레째 먹고 나자 몸이 살풋 가벼워집니다.


그 와중에 일꾼을 사고 적엽(適葉:나뭇잎 따기), 알돌리기, 반사필름 피복등을 일사천리로 끝내고 이젠 수확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콘테이너 박스 씻기를 합니다.


난 이 일이 세상에서 제일 즐겁습니다.





고압호스에서 뿜어져 나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속시원하고 후련하게 씻겨져 나가는 일년동안의 더러움이 화악하니 사라지는 게


너무너무 즐겁습니다.


연탄공장에 가면 검정이 절로 묻듯,


물줄기에 온몸이 흠뻑 젖어가며 하루 왼종일 콘테이너 박스를 청소합니다.



나는 나의 인생이 즐겁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좌절하거나 꺾이는 걸 두려워 합니다.


나는 나의 인생이 부유하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태하거나 생각없음이 두려워집니다.



나는 나의 인생에도 더럽혀진 오물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그리 부끄럽지 않습니다.


일년에 한번쯤 수확을 앞두고 저런 세찬 물줄기로 씻겨지듯, 내 더러운 마음의 오물을 세척합니다.


똑같은 실수의 오물이 내 정신과 육신을 다시 더럽히지 않기를 바라며...



정읍 농부 미루사과



2007-09-14 23:34:10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게시물 댓글과 답글 5
  • 숨결 2007-09-17 09:54:06

    힘내요. 미루님!
    점점 살아감이 우울해지네요.
    앞으로 자연적 재해는 더욱 심각한 수준까지 올라갈겁니다.

    어제 섬진강의 수위가 최고로 올라가 우리 악양은 물바다가 되었었습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이정도까지 되겠지 하면서 마을을 살피는데...

    취재가기로 약속한 분이 전화도 문자도 안받고 있는데
    아마 거기 피해가 막심한가봅니다.

    저는 이제 희망의 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고 지금보다 더욱 더 어려워 지겠지요.

    더 어려워질 것을 각오하고
    이제 운명을 거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그러면 더 힘이 생겨요. ㅠㅠ
     

    • 여포농장 2007-09-16 17:34:38

      사과도 지리한 비 앞에선 속수무책이네요
      포도는 튀밥처럼 팝콘처럼....
      비가 그치는듯 싶더니
      태풍이 올라오네요
      MBA라는 만생종 수확을 위해
      비속에서 아내는 봉투 작업을 하고 있는데
      포도알이 팝콘 같다며 전화가 왔네요.
      태풍 온다는 소리에 엇그제 밤늦도록
      바닥에 비닐을 깔고 했는데..... 마냥 황 된 건 아닌지..
      농사로 부를 축적하려는것은 아니지만
      가끔 수확을 하다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를때도 있습니다.
      자연이 정말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 좀 봐줘야 하는것 아니냐고 하늘에다 대고 삿대질도 해보고....
      쐬주한잔 털어넣고 잊으려고도 해보고...
      힘 내세요.
      그래도 하늘은 공평하다고도 하니까
      기다리다 보면 좋은날 오겠죠..
       

      • 미소애플 2007-09-15 22:26:56

        미루님
        농업은 이상하셔 많이 공부했다고 잘되는것이 아니고
        경험에의해서 얻어지는 지식과 경제학이 우선이니 말입니다
        본인도 요즘 허리가 이상이와 어느 신문과 인터뷰 하는데
        앞으로 소망을 물어 보길래 속히 농장을 매매 하는것 이라 했더니 어안히 벙벙한 가봐요 왜야고 물어보길레 너무 힘이 들어서 라고 했더니 웃고 말더군요
        미루님 남은 사과가 많찬아요 힘내세요 추석이후 한번 만나
        회포를 풀어 보자구요 화이팅
         

        • 연지도사 2007-09-15 21:03:21

          오늘밤 그리고 내일밤은 밤이 몹시 길어 질듯 합니다.
          태풍이 농사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는군요.
          그간 건안 하신지요.
           

          • 차(茶)사랑 2007-09-15 20:39:13

            청소도 끝내고 인자 따서 담을일만 남아잇내요..
            미루사과님 태풍이 올라온다는디 괘안심니까????

            우린 아무래도 밤 다 덜어삐릴것 같심니다.
             

            번호 제 목 닉네임 첨부 날짜 조회
            공지 후원자 전용 카카오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습니다. - 2024-08-23 124335
            공지 8월 20일 후원자님들 자닮농장 방문, 뜻깊은 자리였습니다.(사진있음) (54) 2024-05-27 583408
            공지 후원자 분들과 매월 말 줌(ZOOM)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 2024-05-23 487855
            공지 자닮농장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실시간 공개되고 있습니다. (13) 2023-05-19 1824367
            5951 도시 소비자들의 농촌 웰빙 체험 (4) 2007-12-08 7446
            5950 금순이 차가 이렇게 ㅎㅎㅎ (7) 2007-12-07 7342
            5949 학문의신(神) 스기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천만궁 (2) - 2007-12-07 7495
            5948 김치 한포기면 반찬이 필요없네요. ^^* (1) - 2007-12-05 7040
            5947 곶감작업을 끝냈슴니다. (4) - 2007-12-05 7234
            5946 "사진" 이화가 통속에 빠젔는데....퀴즈..... (6) 2007-12-05 7130
            5945 우포늪... (1) - 2007-12-04 8929
            5944 서울, 수원찍고 하동으로... (6) - 2007-12-03 7047
            5943 감의 효능 (1) - 2007-12-03 7092
            5942 천연농약전문강좌 20기 사진입니다. (4) - 2007-12-01 6737
            5941 맛있는 달력입니다 (3) 2007-12-01 6610
            5940 쥐 잡으러 가입시다. - 2007-11-29 13468
            5939 Green Green Grass of Home - Tom Jones - 2007-11-29 6917
            5938 Sanfrancisco - Scott McKenzie - 2007-11-29 7098
            5937 쎄가나구로 대봉감을 깍앗심니다.. (3) 2007-11-28 7400
            5936 천연농약전문강좌 19기가 울산광역시에서.... (3) - 2007-11-28 6868
            5935 까마중 약차 만드는 방법 (2) - 2007-11-28 9486
            5934 다산초당에서 (1) - 2007-11-27 6939
            5933 지리산 편지-11월넷째주;인간의 열정과 욕구중에서 (1) - 2007-11-27 8429
            5932 쳐다만 봐도 아까운 빨간 감자 (4) - 2007-11-27 729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