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머님은 우스갯 소리를 아주 잘하시는데요,
요즘 하나뿐인 당신의 아들이 농사짓는 통에
예전처럼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생활을 하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나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변치 못한 아들녀석은 허구헌 날 농사에만 푹 빠져
당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마흔을 넘긴지 언젠데 사는 모습이 영 시원치 않으시겠지요.
이번 명절,
아들은 나 혼자이고 여동생 셋이 제각기 온 가족을 데리고 왔으므로 며칠동안 우리집은 모처럼 북적거리고 즐거웠습니다.
보름달 환한 밤,
매제들과 술이 거나해지고 특히 중학교 동창인 큰매제와 옛날 이야기에 빠져들어 나중엔 공부 얘기도 나오더군요.
공부라면 별로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슬쩍 어깨도 으쓱해지고
혹은 내 동창이라는 게 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그저 그런 학생이었던 매제는
지금 갑부 소리를 들을 만큼 나름 성공한 중년이 되어 있음에 은근히 날 놀리기도 합니다.
그러건 말거나 난 워낙에 기분 좋았으므로 허허거리며 연신 독한 인삼주를 날름거렸지요.
그 모습이 어머님의 비위를 건드렸나?
식어버린 홍어탕을 바꿔주시며
"아범 이런 말 아는가?"
난 취했으므로
"@.@ "
"공부를 잘허먼 나라의 아들이고, 공부도 잘허고 돈도 잘벌면 장모의 아들이라네.
근디 공부도 못하고 돈도 못 벌면 그게 내 아들이라고 하더군."
"아~~네에~~! @.@"
"난 아범이 장모의 아들이 되면 서운혔겄지만 그려도 나라의 아들은 될 중 알었제,
근디 함께 늙어가는 아범이 이제 봉께 내아들이더라고..."
그날은 우리 모두 어머님의 재담을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명절이 지나고 요즘 전 나흘째 풀을 깎느라 손이 덜덜덜 떨려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합니다.
그리고 추석용 사과는 삼분의 일른 팔았고 삼분의 일은 떨어져서 버렸고 삼분의 일은 썩어서 버렸습니다.
망할 눔의 비 땜시, 19일동안 단 이틀빼고 쉬임없이 내린 그 눔의 비 땜시...
아니,
환경 농업한답시고 홀몬제와 농약을 않쳐서....
낙과 방지제를 뿌렸으면 떨어지지 않았을테고,
탄저병이나 부패병, 갈반병, 역병 등 대한민국의 병이란 병은 죄다 걸렸고
여기에 복숭아 순나방과 심식나방 흡수나방, 잎말이 나방 등, 온갖 벌레란 벌레는 죄 달려들어
일년동안 잘 키워낸 그 고운 사과를 갉아먹을 때,
화학농약 한번만 뿌렸으면 아마 수천만원은 족히 나왔으련만....
딸아이의 학원비를 챙기는 아내를 바라보며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난 신경질이 밀려와 식탁에서 물러나버렸습니다.
그러고보니 고개도 제대로 못들 처지가 된 무능한 가장이 되어 있군요.
자식들에게 여유있게 용돈을 줘 본적도, 아내에게 넉넉한 생활비를 줘 본적도, 어머님은 연금탓에 나보다 더 잘 버시므로 패스...
근데 난 왜 기도 죽지 않았고 아직은 아이들도 내 카리스마에 눌려있다고 생각하는걸까,
아니 착각하는걸까
난 곰곰히 생각하다가 '농부이기 때문에'라고 혼자 위무합니다.
올곧은 육신의 노동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농부이기 때문에'
그나마 이거라도 있어야 내 평생이 쓸쓸하지 않을 듯 하여....
정읍농부 미루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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