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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돌풍에 벙찐 아침
미루사과 2009-10-22 00:01:31 | 조회: 9320

요즘 불행의 연속이 계속되는 동료가 있는데요,


몇달전부터 이래저래 맘고생이 심하더니 며칠전엔 오랫동안 류마치스 지병을 앓아오시던 모친께서 황망히 세상을 등지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대체로 죽음이란 게 아무리 예견된 그것일지라도 늘 어둡고 쓸쓸한 사람의 일입니다.


학창시절 한때 열심으로 빠져들었던 경전 중 마음에 담았던 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의 영웅호걸 북망산이 무덤이요, 부귀무장 쓸데없다.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앞의 등불이라..."


- 경허선사 참선곡(參禪曲)


매일 붙어다니며 모임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더불어 이틀동안을 빈소에 있었는데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차암~~!!


다른이의 제아무리 큰 고통보다 내손가락의 티눈이 더 아프다더니 친구의 무너지는 아픔을 다독여보겠다고 빈소를 지키긴 했지만 그날 밤...



정읍지방엔 아주 거센 돌풍이 곳곳을 할퀴었습니다.


상가의 간판이 떨어지고 지붕이 날아가고 어수룩한 조립주택이 파손되는 생뚱맞고 느닷없는 바람이 온 밤내 윙윙 불었지요.


난 장례식장의 덜컹거리는 창틀을 바라보며 상주의 아픔보다 숙기를 코앞에 두고 떨어져 나갈 내 사과에 가슴을 졸이고 또 졸였습니다.


내 친구와 그의 형제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밤을 꼬박 새고 허기진 배를 채울 겨를도 없이 아내와 함께 과원으로 달려갔던 그곳엔...





수확을 불과 이십여일 남겨놓고 속절없이 떨어진 사과들로 처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내는 맥이 풀리는지 그냥 자리에 주저앉고 난 공연히 떨어진 사과를 발끝으로 툭툭 찼습니다.


머릿속엔 다시 경허선사의 참선록이 뱅뱅 맴돌고 맴도는데...


"쓸데없는 탐심진심(貪心眞心)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분별(許多分別) 날마다 분요(粉搖)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할꼬.


지각없는 부나비가 저죽을 줄 모르고 불빛을 탐하노니


여간계행(如干戒行) 소분복덕(小分福德) 도무지 허사로세.


오호라 통재로다."



고백하자면,


실은 보기엔 처참할만큼 많은 양이 떨어진 듯 보여도,


워낙에 토양관리가 잘되어 있고 건강한 사과나무여서 아주 많은 숫자의 사과가 달려 있답니다.


하여 저 정도의 낙과는 그닥 큰 타격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나 아닌 다른이는 어미를 잃은 슬픔에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건만,


겨우 내눈의 들보에는 저 떨어진 사과가 아까웠던 겁니다.


하물면 그 힘듦을 겪는 다른이가 맨날 붙어다니는 연천농장일 터,


난 순간 내 스스로를 책망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에구~~ 이 가련하고 가이없는 중생이여...!!'



때아닌 돌풍에 난 또 하나를 깨닫습니다.


늘 이렇게 살리란 가르침을 주시는 장자께서 말씀하신 붕새가 되고 싶어하는 참새가 바로 나로구나.


천양지피(千羊之皮)는 불여일호지액(不如一狐之腋)이로다.


(천마리의 양가죽보다 한마리 여우 겨드랑이 털이 낫다)


언제나 이 꿈을 이루어 볼까나...쯧쯧...!!



정읍농부 미루사과 <---여길누르면 홈페이지로



ps; 혹 문장이 어려우시다면 나름 미루사과가 풀이한 뜻올시다.


도시몽중(都是夢中): 세상만사가 모두 꿈만 같다.


탐심진심(貪心眞心): 치심과 더불어 불교의 삼독심-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욕심.


여간계행(如干戒行): 여간한만큼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선인.


소분복덕(小分福德): 도의 경지에 올라 거리낌없이 행동하여도 어긋남이 없다.




2009-10-22 0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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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하리 2009-10-25 23:12:46

    무지 맛있게 생긴 사과들이 저리 많이 떨어지다니...
    아쉽네요.

    그래도 많이 남아있다니 다행이구요.

    판매에 대박 나셔서 다 메꿔지길 기원드립니다.
     

    • 노래하는별 2009-10-22 19:59:44

      에고~
      그래도 미루님 글을 보니 많은 피해가 아닌듯하여
      다행이네요.
      미루님 글에서 요즘의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미루님! 화이팅입니다!!
       

      • 시원 2009-10-22 09:23:35

        떨어진 사과들을 보니 제 마음이다 아픔니다
        사과를 키우기까지의 정성과 노력이 눈에 보이게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입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선 정말이지 바람앞에 촛불같네요
         

        • 숨결 2009-10-22 07:58:27

          미루님!
          다행입니다. 남은 것도 일반농가 배는 될듯싶습니다^^
          떨어진 사과도 탐스럽게 입맛을 돋웁니다.

          소분복덕(小分福德), 저는 이 말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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