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행의 연속이 계속되는 동료가 있는데요,
몇달전부터 이래저래 맘고생이 심하더니 며칠전엔 오랫동안 류마치스 지병을 앓아오시던 모친께서 황망히 세상을 등지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대체로 죽음이란 게 아무리 예견된 그것일지라도 늘 어둡고 쓸쓸한 사람의 일입니다.
학창시절 한때 열심으로 빠져들었던 경전 중 마음에 담았던 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의 영웅호걸 북망산이 무덤이요, 부귀무장 쓸데없다.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앞의 등불이라..."
- 경허선사 참선곡(參禪曲)
매일 붙어다니며 모임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더불어 이틀동안을 빈소에 있었는데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차암~~!!
다른이의 제아무리 큰 고통보다 내손가락의 티눈이 더 아프다더니 친구의 무너지는 아픔을 다독여보겠다고 빈소를 지키긴 했지만 그날 밤...
정읍지방엔 아주 거센 돌풍이 곳곳을 할퀴었습니다.
상가의 간판이 떨어지고 지붕이 날아가고 어수룩한 조립주택이 파손되는 생뚱맞고 느닷없는 바람이 온 밤내 윙윙 불었지요.
난 장례식장의 덜컹거리는 창틀을 바라보며 상주의 아픔보다 숙기를 코앞에 두고 떨어져 나갈 내 사과에 가슴을 졸이고 또 졸였습니다.
내 친구와 그의 형제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밤을 꼬박 새고 허기진 배를 채울 겨를도 없이 아내와 함께 과원으로 달려갔던 그곳엔...
수확을 불과 이십여일 남겨놓고 속절없이 떨어진 사과들로 처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내는 맥이 풀리는지 그냥 자리에 주저앉고 난 공연히 떨어진 사과를 발끝으로 툭툭 찼습니다.
머릿속엔 다시 경허선사의 참선록이 뱅뱅 맴돌고 맴도는데...
"쓸데없는 탐심진심(貪心眞心)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분별(許多分別) 날마다 분요(粉搖)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할꼬.
지각없는 부나비가 저죽을 줄 모르고 불빛을 탐하노니
여간계행(如干戒行) 소분복덕(小分福德) 도무지 허사로세.
오호라 통재로다."
고백하자면,
실은 보기엔 처참할만큼 많은 양이 떨어진 듯 보여도,
워낙에 토양관리가 잘되어 있고 건강한 사과나무여서 아주 많은 숫자의 사과가 달려 있답니다.
하여 저 정도의 낙과는 그닥 큰 타격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나 아닌 다른이는 어미를 잃은 슬픔에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건만,
겨우 내눈의 들보에는 저 떨어진 사과가 아까웠던 겁니다.
하물면 그 힘듦을 겪는 다른이가 맨날 붙어다니는 연천농장일 터,
난 순간 내 스스로를 책망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에구~~ 이 가련하고 가이없는 중생이여...!!'
때아닌 돌풍에 난 또 하나를 깨닫습니다.
늘 이렇게 살리란 가르침을 주시는 장자께서 말씀하신 붕새가 되고 싶어하는 참새가 바로 나로구나.
천양지피(千羊之皮)는 불여일호지액(不如一狐之腋)이로다.
(천마리의 양가죽보다 한마리 여우 겨드랑이 털이 낫다)
언제나 이 꿈을 이루어 볼까나...쯧쯧...!!
정읍농부 미루사과 <---여길누르면 홈페이지로
ps; 혹 문장이 어려우시다면 나름 미루사과가 풀이한 뜻올시다.
도시몽중(都是夢中): 세상만사가 모두 꿈만 같다.
탐심진심(貪心眞心): 치심과 더불어 불교의 삼독심-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욕심.
여간계행(如干戒行): 여간한만큼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선인.
소분복덕(小分福德): 도의 경지에 올라 거리낌없이 행동하여도 어긋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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