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 카슨은 40년 전, 인간이 농약 같은 화학물질로 자연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은 많지만, 실제로 역사를 바꾼 책은 그리 많지 않다. 1962년 미국에서 나온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종의 기원>이나 <자본론>처럼 역사의 흐름을 바꾼 환경생태학의 고전이자 현재에도 유효한 교과서로 꼽힌다. 이 책은 세계를 대표하는 석학 100인이 뽑은 ‘20세기를 움직인 책 10권’ 중 4위로 선정되었고, 저자 카슨은 <타임>이 뽑은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혔다.
정식 출판 계약을 맺고 최근 번역된 <침묵의 봄>(김은령옮김, 에코리브로 펴냄)은, 역사의 물꼬를 튼 저작들이 그렇듯이 출간 당시에는 박해를 받았다. 미국 들판에 무차별하게 뿌려지는 유독성 화학물질의 광범위한 폐해를 고발한 이 책은, 언론과 학계, 정부 관리, 농약제조업체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의학 전문 평론가 윌리엄 B. 빌은 ‘카슨이 비과학적인 우화에 바탕해 책을 써서 소란을 피운다’고 공격했다. 농약제조회사는 더했다. ‘카슨의 잘못된 주장이 문명을 중세 암흑 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도 ‘카슨이 쓴 책은 그녀 자신이 저주하는 살충제보다 더 독하다’며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카슨은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카슨은 비밀핵실험, 화학회사의 연구 지원금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과학계, ‘대중성’을 폄하하는 학계의 권위주의, 여성학자를 깔보는 남성우월주의와 싸워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적은 자연을 착취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 중심주의와 광적인 과학기술 만능주의였다.
하지만 카슨과 <침묵의 봄>은 침묵하지 않았다. 카슨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은 카슨의 ‘경고’를 널리 홍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녀의 책은 1962년 가을 베스트 셀러로 떠올랐고, 이듬해 케네디 대통령 과학자문회의는 카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1969년, 미국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을 통과시켰으며, DDT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날(4월22일)이 제정된 것도 <침묵의 봄>때문이었다.
대지와 식물, 식물과 식물, 식물과 동물 사이에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친밀하고 필수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는 카슨의 발언은 40년이 지난 지금, 상식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카슨의 열정과 탐구, 그리고 인간의 무지와 오만에 대한 분노가 없었다면, 생명의 침묵(죽음)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카슨은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출처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7.1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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